전남 장흥은 매생이의 본고장이다. 찬바람이 불면 뜨겁고 향긋한 매생이국이 생각날 때다. 매생이를 한 입 떠 물면 달달한 맛 뒤에는 남도의 깊은 향이 그 안에 배어 있다.

예전에는 장흥과 완도 일대 김양식장에서 대나무 발에 흔하게 걸려 올라오는 게 매생이였다. 촌부들은 김 대신 매생이가 걸리면 그해 김 농사를 망친다며 애물단지처럼 여겼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밑반찬이나 국으로 끓여 먹던 시절이었다.

장흥에서 매생이를 본격적으로 양식한 것은 30여 년 전 일이다. 장흥에서도 갬바우벌로 불리던 최남단 대덕면 내저리가 매생이 양식의 원조마을이다.

푸른 매생이밭 펼쳐진 내저리

대덕면 내저리 일대는 푸른 매생이밭이 40헥타르 가량 펼쳐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매생이를 ‘염생이’나 ‘매산이’로도 부른다. 인근 고금도 뿐 아니라 넙도, 초완도 등으로 둘러싸인 갬바우 일대는 큰 바람이 없고 바다도 잔잔해 예전부터 양식하기에 좋았다. 한 줄로 늘어선 장대 10개를 ‘한 때’라 하는데 풍년일 경우 한 때에서 450g 짜리 매생이 500여개가 나온다.

주민들은 매년 서리가 내릴 때 쯤 바닷가 자갈밭에서 매생이 씨를 받은 뒤, 갯벌 말뚝에 씨가 매달린 대나무 발을 넓게 펼쳐 둔다. 겨우내 바닷물이 들고 빠지며 햇볕도 쬐고 바다속에서 숙성해야 맛 좋은 매생이가 나온다. 줄 보다 적당히 굵고 늘어지는 대나무는 바다의 양분을 머금기에 좋다. 매생이는 겨울 동안 세 차례 채취가 가능하다.

가느다란 대나무 발에 차분하게 붙은 매생이는 명주실 같다. 한 손으로 잡고 쭉 훑어 내면 다른 한 손에 치렁치렁 부드러운 매생이가 매달린다. 바닷물이 깊을 때는 갑판에 허벅지를 의지한 채 온몸을 구부려 따 내고 간조 때는 바다로 뛰어들어 팔을 후리며 밭을 매듯 매생이를 채취한다. 주민들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매생이와 함께 매년 그렇게 겨울을 보낸다.

끓여도 연기 없는 매생이국

수확한 매생이는 포구에서 뻘 등 이물질을 씻어내는 과정을 거친 뒤 곧바로 작업장에서 주먹 크기의 덩어리로 변신한다. 마을 아줌마들이 척척 물에 씻어 헹궈내면 헝클어진 가닥은 여성의 맵시 있는 뒷머리 모양으로 형태를 바꾼다. 이곳 주민들은 이것을 한 ‘재기’라고 부르는데 한 재기는 400~450g 정도로 3~4인분 분량이다.

서울 등지에서 매생이국이 웰빙 별미로 통하지만 장흥에 가면 매생이국을 내놓는 식당을 찾는 것은 오히려 쉽지 않다. “그걸 뭐땜시 돈 주고 식당에서 사 먹으라우? 집에서 그냥 끓여먹으면 되재.” 시장통의 아줌마들 얘기다.

장흥읍내 몇몇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데 메뉴판에 별도로 매생이국이 적혀 있지는 않다. 끓여달라고 해야 밥상 위에 오른다. 매생이는 칼국수, 전으로 먹기도 하는데 국으로 먹어야 제 맛을 낸다. 매생이국은 끓여도 연기가 나지 않아 서둘러 먹다 입천장이 데기도 한다.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매생이는 겨울에는 4~5일 동안 상온에 두고 먹을 수 있으며 그 이후로는 냉동 보관한다. 서울에서 봄에 맛 보는 매생이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냉동보관된 것들이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장흥행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광주에서 장흥까지 1시간 단위로 시외버스가 다닌다. 대덕읍이나 내저리로 가려면 공용터미널에서 군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구입할 곳=탐진강변의 장흥읍 토요시장은 매주 토요일만 열리는 풍물시장으로 매생이 외에도 키조개, 석화 등 장흥의 먹을 것들이 죄다 모인다. 내저리에서 가까운 대덕읍 5일장 역시 규모는 작아도 갓 수확한 매생이를 판다.

▲둘러볼 곳=장흥 남포마을은 소등섬 너머 새해 해돋이가 멋스럽다. 내저리에서는 차로 10분 거리의 마량항은 나무데크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회타운의 자연산회 가격이 저렴하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