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ㆍ대미 관계 주도권 쥐어…北, 중국 앞세워 유엔서 북핵 해결
2차 북미정상회담 시기ㆍ장소ㆍ의제 북한에 힘 실려…트럼프 ‘구애’ 나설 판
북한, 남북관계에 ‘시큰둥’… 北 “5ㆍ24 조치 풀라” 메시지, 文정부 고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호텔 북경반점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진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연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새해 초 전격적인 중국 방문이 한반도를 넘어 국제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결속은 당장 두 나라와 대결 양상을 보이는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과 미ㆍ중 간 관세전쟁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동시에 북한의 대남관계의 비중을 약화시키면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주간한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북한이 중국을 지렛대로 자국의 경제난을 해소하고, 미국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북ㆍ중 밀월관계’를 선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런 밀월관계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 카드’를 활용해 미중 관세전쟁의 불리한 국면을 만회하려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중국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하고, 러시아의 지원으로 미국의 군사적 대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우리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돼 남북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미치는 ‘나비효과’를 짚어봤다.

김정은 신년사 ‘북ㆍ중 밀월’의 승부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대외에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북한의 경제 현실이 심각한 상황에 따른 것이고, 한편으론 미국의 대북 제재ㆍ압박에 대한 승부수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을 의식해 남북관계에 자주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2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간에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은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을 조급하게 만들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9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ㆍ중 관계가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 있어 성공적이었다”며 미국을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미국을 상대하는데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거나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측면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벽두부터 중국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 핵심은 북한의 시급한 과제인 식량난 해결과 대북 제재의 빌미가 되고 있는 북핵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기 위해서다.

<주간한국>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직후 이를 분석한 ‘김전은 신년사-북ㆍ중 밀월 내막’ 제하의 기사(제2760호, 2019년 1월 7일자)를 통해 북한과 중국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미국에 공동 대응할 것으로 전망했다.

본지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인 강요와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부분 중 ‘새로운 길’이 중국과 손잡고 미국에 맞서는 것이고, 북핵 문제를 미국이 아닌 유엔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역시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내부 경제가 흔들리는 등 심각한 상황에 처하자 북한 카드를 활용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측면을 조명했다.

본지는 북한이 보유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미국도 오로지 핵폐기를 요구하는 상황에선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을 배제하고 유엔으로 북핵 이슈를 가져가려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북한이 바라는 대로 유엔에서 북핵 문제가 논의되도록 하는데 앞장선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년사의 ‘다자협상’은 중국이 앞장서 북핵 문제를 유엔에서 해결하는 방안이다.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 양국 매체는 시 주석이 북핵 문제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두 정상이)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국제 및 지역문제 특히 조선(한)반도 정세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 조종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하여 심도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북쪽이 비핵화 문제에 대해 “(중국과) 공동으로 연구 조종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반도의 평화와 안정, 반도의 비핵화 및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 실현을 위해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중국이 앞장서 북핵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고 실제 유엔에서 다뤄지면 북핵 해결의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의 전략은 수포로 돌아간다. 당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2020년 대선에 북핵 카드를 재선용으로 활용하려던 계획도 불가능하게 된다.

시 주석이 “조선측이 주장하는 원칙적인 문제들은 응당한 요구이며,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항이 마땅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대하여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한 것이나 시 주석이 “방북 계획을 통보했다”는 보도는 미국을 긴장시킬 만하다.

최근 미국이 북핵과 관련해 대북 제재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협상에 무게를 두는 것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내재된 북ㆍ중 밀월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이 김 위원장을 초청하고 이례적인 환대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북한에 가장 시급한 식량 문제는 중국이 통 크게 해결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2월 전까지 북한에 필요한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다수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는데 조.ㆍ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그 문제는 해결한 것으로 안다”고 전해왔다.

2차 북미정상회담 주도권 北으로…文정부 대북 관계 난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최대 현안인 경제문제와 북핵 해법의 돌파구를 모색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위축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던 트럼프 정부는 충격을 받을 전망이다.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핵에 관해 ‘빈손’으로 돌아와 국내외 비판에 시달렸던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 결과 북미정상회담의 판이 바뀌게 됐다. 2차 정상회담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북한으로 옮겨진 것이다. 중국을 통해 가장 시급한 식량난을 해결하고 안정적 경제 지원까지 보장받은 북한은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에 더 이상 매달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급해진 쪽은 미국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선 미국이 북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얼마전까지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2차 정상회담이 1-2월 중에 열리고, 트럼프 정부가 회담장소를 물색 중에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즉, 2차 정상회담의 시기ㆍ장소ㆍ의제 등을 북한이 결정하고, 미국은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하고 조만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공표한 것은 북한에 대한 ‘구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정부도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다. 북한이 중국을 통해 현안의 상당 부분을 해결한 만큼 한국에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손을 내밀 이유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 전 세계가 대북 제재에 동참해 위기에 몰리자 남한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남북교류에도 문을 활짝 열면서 우리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의식해 대북 지원에 주저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3월과 5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식량 등 경제 문제를 해결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도 마찬가지다. 올 2월 전까지 식량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사자 발생 등 위기 상황에 놓일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문재인정부가 미국을 의식해 행동에 나서지 못하자 중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가장 바라고, 고위급 회담 등에 나선 주된 이유가 ‘경제’인데 남한이 답을 주지 못하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김 위원장의 중국행은 심하게는 남한과의 결별까지 갈 수 있는 냉정한 결단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언급한 것은 이를 가능하게 하도록 문재인 정부가 남북교류를 가로막고 있는 5ㆍ24 조치를 풀라는 우회적인 메시지다.

청와대는 지난해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학수고대(?)했는가 하면, 지난해 12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하고 “김 위원장을 환영하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여권이 기대하는 김 위원장의 답방은 이번 방중으로 한동안 멀어지게 됐다. 남한을 통해 얻으려 했던 시급한 경제적 지원을 중국을 통해 충분하게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5ㆍ24조치 해제 등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동에 나설 경우 대화에 응하겠지만 방중 이후 남북관계를 서두를 필요성이 크게 사그라들었다. 출범 전부터 남북관계에 전력해온 문재인정부 입장에선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과 최초로 공식적인 교역을 한 이래 여전히 북한과 무역을 하고 있는 장백산 해외동포지원사업단 이사장은 “북한 주민의 굶주림은 김정은의 방중으로 상당 부분 해소돼 남한의 비중이 떨어졌지만, 유엔제재와 5ㆍ24조치를 감안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주민 지원과 ‘물물교환’ 형태의 남북교류는 가능하다”면서 “정부가 나서면 안되고 민간이, 가능하면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해외동포가 하는 게 최적”이라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