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스포츠평론가가 진단한 체육계 폭력 문제

최근 불거진 체육계 폭력 및 성폭력 폭로 사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체육계 시민단체들은 함께 지난 17일 성명서를 내고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체육회 회장에 대한 징계를 강력히 촉구했다. 스포츠 평론가인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을 만나 한국 체육계에 고질병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폭력 관행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체육계의 독점권력과 변하지 않는 주류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스포츠평론가 및 스포츠문화연구소 최동호 소장이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스포츠계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진단이 나오고 있다.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구조, 엘리트스포츠의 병폐 등의 진단이 나오는데, 하나만 꼽자면 엘리트 스포츠에 기반을 둔 ‘한국 체육계의 독점적인 권력구조’ 때문이다. 한국 체육계 권력은 주류가 독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 메달리스트 교수들의 영향력이 엄청나다. 이들이 정당화됐던 것은 국위선양이다. 국민들은 그것을 바랐고 국가도 지원했다. 체육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선수를 때려서라도 성적만 내면 된다는 식의 생각도 정당화됐다. 이 방식이 1980년대까지는 통했지만, 권위주의 독재정부 시대가 끝난 이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에 주류 사회에 대한 인적 교체가 있었다. 시민사회도 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인권’이 전면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바뀔 때도 체육권력의 주류는 바뀌지 않았다. 진보정권에서도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스포츠는 역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최고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국민감동’을 명분으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프로파간다적 행태가 지워지지 않았다. 한 예로 2008년 이명박 정권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때 야구대표팀이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고 박태환 선수가 최초로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자, 국정수행 지지율이 올라갔다. 스포츠에서 성과를 내니 정치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진보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스포츠에서 가치, 공정성, 인권 등의 개념은 여태까지 중요시되는 가치가 아니었다. 국위선양이 이런 가치를 가렸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스포츠계의 전수조사를 통해 스포츠 비리가 전면적으로 부상했다. 당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고 인권센터 등을 만들었는데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시스템을 보완해서 인권센터를 만들어놔도 의식은 그대로인 사람들이 센터장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여론에 밀려서 흉내만 냈을 뿐 실질적으로 작동된 것이 없었다. 조재범 코치가 2011년 승부조작 혐의를 받았음에도 국가대표 코치로 복직된 것을 보라. 문체부가 여러 개선안을 내놨다. 하지만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조직과 제도를 내놓지 않아도 지금의 것만 제대로 가동하면 된다.

인권의식 부족한 사람들이 체육계 좌지우지

-국내 체육계에는 아무개 라인이니 뭐니 하면서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줄서기 행태가 만연해 있는데.

“내부에서 흑과 백을 바꿀 정도의 힘이 있다.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의 힘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꿀 수도 있다. 소치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선수 A씨가 성폭행을 당했는데 조직적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이렇게 유야무야 사라졌던 일이 있다. 전명규 체제에 편입되면 기회가 더 돌아가고 아닌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전명규 체제의 기득권이 계속 유지돼 왔다. 사람들이 ‘전명규, 전명규’ 하니까 그 사람만 자리에서 물러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독점 권력을 쥔 사람이 있다면 그 아래로 권력 구조가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그 사람만의 영향만은 아니다. 독점적인 권력구조의 문제다. 현재 김보름 선수와 노선영 선수의 폭로전이 번지는 것도 이전에 있었던 전명규 체제의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독점권력은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 정신이 완전히 훼손됐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3등을 정해놓고 밀어주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빙상계의 독점 권력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두렵고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겠는가.”

-대한체육회가 관련 쇄신안을 발표했는데, 각종 혐의에 대한 검찰 고발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지금껏 자체적인 내부조사가 우선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체육회가 기본적으로 무능하다. 전임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문제를 덮으려고 했다. 여러 사건들이 터졌지만 입시비리와 승부조작, 선수 폭행 건만 해도 언론 공개 전까지 양상은 비슷했다. 민원 접수 등도 이뤄지면 은폐가 시도된다. 언론에 공개되면 내부적으로 징계를 내리지만 곧 경감된다. 시간이 지나가면 현장에 복귀하는 등의 패턴이 반복됐다. 누구누구 라인이며 종목별로 어떤 실세가 있는지, 체육계가 얼마나 거대한 이익공유 집단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기형적 구조다. 이기흥 회장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발생하면 단체장이 즉시 대 국민 사과를 하고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압력을 받으니 한참 지난 후에야 움직였다. 항상 그래왔다.”

-가해자들이 징계를 받고 나서 혹은 징계 중에도 주요 자리에 돌아오는 일이 빈번하다. 피해자들에게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주는 일인데,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 이유와 근절 대책은.

“스포츠에서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인적 청산’밖에 없다. 체육권력을 바꿔야 한다.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법과 제도, 시스템이 완비돼도 사람이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인권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고, 공정성을 뒤로하는 자가 법과 제도를 운영한들 제대로 되겠는가. 스포츠재심청구위원회에 안건이 올라오면 경감 처리되는 일이 빈번하다.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문체부도 4가지 정도의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영구제명, 전수조사,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고 전담팀을 둬 선수촌 환경도 개선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대책도 나왔다. 이제 나올 수 있는 개선방안은 다 나왔다고 본다. 더 이상의 이론적인 개선방안은 없다. 지금 제시된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되면 충분히 재발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체육인들의 자성과 인식 변화가 절실

-체육계 인사 시스템을 개편하는 방법은 뭔가?

“체육회 회장이 선거로 뽑힌다. 선거권을 가진 체육인들의 자성과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체육 개혁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면 그들의 표 행사도 변화돼야 한다. 그래야 추후에 있을 선거에서 회장이 제대로 임명될 것이다. 각종 위원회나 자문기구 등은 체육회 내부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 체육계 외부의 전문가, 즉 인권센터나 외부단체 인사를 선임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체육계 전반에 인권에 대한 의식을 전파시켜야 한다. 체육계 내부 인사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스포츠계 내부와 외부가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나 시대의식, 국민정서 등을 체육계 내외부에서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끔 개방성을 확보해야 한다. 스포츠 전문 분야 외에는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상시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독점권력에 대해 견제도 할 수 있고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다. 독점권력 혹은 한 사람이 자기의 입맛대로 인사를 행사하면 시스템이 완비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쇼트트랙, 유도계의 피해 선수들이 오히려 부각되고 가해자는 언론에 덜 노출된다. 개선 방향은?

“내부 고발의 문제는 스포츠계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다. 내부 고발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보호에 관한 포괄적인 법률이 제정되면 스포츠계도 따라갈 수 있다.”

-대한체육회가 폭력 및 성폭력 사안의 조사와 처리를 시민사회단체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의뢰하고, 인권 전문가를 필수적으로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외부기관의 참여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는가.

“외부기관이 참여한다면 어느 정도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사건 조사와 규명을 위한 기준을 끌어올린 것이니까.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외부기관의 의견 제시를 조직에서 얼마나 수용할까 하는 점이다. 대책과 기준은 마련했는데, 내부 책임자의 의지에 따라 조사 내용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조사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권력자의 위계에 따라 이런 방안들이 겉치레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 민간에 위탁하는 제도 자체보다 민간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느냐를 지켜봐야 한다.”

-체육회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엘리트 체육 및 합숙 문화로 보고, 합숙 훈련의 전면적 쇄신책을 내놨다. 성적 지상주의도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나.

“지엽적인 대책으로 본다. 실제로 성적에 매달리지 않는 풍토를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은 화두만 던져놓은 것이다.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겠다고는 했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없다. 실제로 그럴 수밖에 없다. 체육계의 근간을 뒤바꿔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책 방안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검토하며 제도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목표는 당연히 성공이고 우승이다. 미래에 대한 부담이 있기에 열심히 운동할 수밖에 없다. 운동으로 성공한 선수는 극소수다.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선수들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은퇴하면 코치나 감독 자리도 대부분 성공한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소수의 선수 출신만 멋지고 긍정적 이미지로 언론에 노출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문화와 정서적인 교육을 경험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나중에 은퇴 후에도 그들을 위해 더 나은 조치가 될 것이다. 요즘의 스포츠 스타는 사회에 잘 노출된다. 작은 사건이 불거져도 엄청난 질타를 받기도 한다. 지금은 소셜미디어(SNS)의 발달로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본연의 모습이 더 노출된다. 그러다가 구설수에 오르거나 인성 문제가 불거지면 스타여도 존중받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스포츠 선수들도 인성과 품성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또래의 경험과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보호 위한 장치 만들어야

-드러난 사건 말고도 제보되지 않거나 은폐된 사건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원활한 고발을 위한 제도와 조건은?

“고발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명확한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체육계 내부의 시민의식도 제고돼야 한다. 체육계의 시민의식이란 부조리에 대한 반성이다. 신체적 퍼포먼스에 가려져 인권침해나 부정을 보고도 정직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내부고발을 하면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부조리에 대해 정당하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용기와 양심, 공정성 등은 스포츠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다. 대외적으로 이런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것을 가르치는 점이 부족하다. 원활한 내부고발을 위한 시스템도 완비돼야 한다. 사건이 명백히 드러나면 가해자는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고발한 선수에겐 심리상담사를 붙여 적극적인 신변보호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체육계 전반의 변화를 위한 기폭제가 될까.

“이번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름대로 ‘심석희 투쟁’이라 본다. 그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나섰다. 정말 힘들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섰다. 이제 심석희 선수는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이제 체육계와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까지 체육계 개혁을 언급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터지면 선수 출신 등 체육계에서 함께 나서는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젊은빙상인연대 등의 모임도 만들어졌고, 다른 종목에서도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열쇠는 체육계 주류의 변화다. 주류가 쥐고 있는 독점권력이 분산돼야 스포츠의 시대정신이 바뀐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성적 지상주의에서 스포츠 가치로 바뀐다는 이야기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갈 일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다.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기득권의 반격이 나올 것이다. 엘리트스포츠를 유지해야 한다며 ‘한국 스포츠 위기론’을 내놓을 것이다. 엘리트스포츠로 돌아가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순이다. 스포츠는 사람이 한다. 그래서 스포츠 인권과 공정성의 가치가 중요하다. 변화 후엔 자연스레 선수 저변이 확대되고 스포츠 문화도 개선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원래의 성적도 되찾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스포츠의 가치가 재정립된다면 스포츠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