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 재조명해 ‘기업시민’ 시대를 열다
포스코미술관, 3월 29일∼5월 28일

우암 송시열 '대자첩', 종이에 먹, 175x680cm(각 90x80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포스코가 창립 51주년을 기념해 공아트스페이스와 함께 ‘人, 사람의 길을 가다’ 특별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회화, 서예, 도자 등에 담긴 ‘선비 사상을’ 토대로 포스코의 새로운 경영이념인 ‘기업시민’ 정신을 재해석함으로써 ‘With POSCO’의 비전을 실천하는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3월 28일 포스코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의 핵심어는 ‘선비’다. 선비의 사상은 바른 자세와 원칙을 중시하고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한다는 점이 포스코의 기업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이번 특별전의 작품을 모은 공아트스페이스 공창호 회장은 개막 축사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는 올바른 삶의 기준이자 표상이었다”며 “선비가 실천하고자 한 올바른 신념들을 ‘선비정신’이라 하는데 그 정수는 ‘의(義)’, ‘렴(廉)’, ‘애(愛)’로 현대인과 기업에도 귀감이 될 덕목”이라고 전시의 의의를 전했다. 포스코 한성희 부사장은 “포스코가 지향하는 기업시민(企業市民) 정신을 조선시대 선비사회와 재조명함으로써 그 가치와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미래 백년기업을 향한 재도약의 원년을 기념하는 본 특별전을 통해 선비정신을 ‘법고(法古)’하고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신(創新) ‘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7년 포스코미술관과 함께 ‘왕의 정원’전으로 조선 왕실의 문화적 품격과 아름다움의 진수를 전한 바 있는 공아트스페이스는 이번 특별전의 ‘선비(정신)’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3월 28일 오후 '人, 사람의 길을 가다' 특별전에서 공아트스페이스 공창호 회장이 개막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박종진 대기자)
‘人, 사람의 길을 가다’ 특별전의 키워드는 ‘선비’다. 선비는 한자로 유(儒=사람人+구할 需), 즉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비는 의리와 원칙을 소중히 여겼으며 개인보다 공동체를, 이익보다는 가치를 추구했다. 올바른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항상 투명한 자세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삶속에서 ‘의(義)’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모두에게 이로운 세상과 공익을 위해 개인적 욕심을 버린 무사심(無私心)의 태도에서 ‘렴(廉)’의 사상을 만나볼 수 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타자를 존중함으로써 개인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점에서 진정한 ‘애(愛)’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사상을 포스코의 기업시민 정신과 연결해 재조명하는 특별전은 ‘의(義)’, ‘렴(廉)’, ‘애(愛)’를 주제로 한 3가지 파트로 구성했다. 전시에는 ‘선비사상’을 함의하는 조선 시대 예술품 80여 점이 선보인다.

조선 선비들은 문(文), 사(史), 철(哲)을 기본(필수)적으로 공부했고 시(詩), 서(書), 화(畵)를 교양으로 갖췄다. 특별전의 작품들은 서예와 회화, 도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서예(書)와 관련해 “글씨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른 마음’이 갖춰져야 ‘바른 글씨’를 쓸 수 있다. 조선 선비들에게 서예는 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특별전에 나온 서예 작품들은 선비의 ‘바른 마음’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외부 전시로는 처음 소개되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작품 ‘富貴易得 名節難保’(부귀는 얻기 쉬우나 명예와 절개는 지키기 어렵다)가 대표적이다.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朱熹, 130∼1200)의 문집 <주자대전(朱子大全)> 54권에 나오는 여덟 글자로, 1680년대 후반,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이 정치적 모함을 받고 수세에 몰렸을 때 목숨 걸고 스승의 변론에 앞장섰던 제자 농계 이수언(聾溪 李秀彦, 1636∼1697)에게 써 준 것이다. 한글자의 크기가 89×90cm, 전체길이가 7m에 달하는 초대형 글씨다.

추사 김정희dml ‘황정견의 시’ 8폭병풍도에 대해 설명하는 서수용 고문헌연구소 소장.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의 과천시절 만년의 호방하고 활달한 필의가 담긴 ‘황정견의 시’ 8폭병풍도 눈길을 끈다.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스승이자 친구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와 나란히 송대(宋代)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8폭 병풍은 황정견의 행서체를 바탕으로, 당나라 서법대가 저수량의 서체와 한나라 예서체의 필의까지 융합해 방경고졸(方勁古拙)의 추사체로 완성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휘호 ‘謀事在人成事在天’(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도 전시장을 빛낸다. 이 작품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한 달 전쯤 감옥에서 쓴 것으로, 안 의사의 천명살이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에서 비롯됐는데 이 유묵은 그같은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현세를 도덕시대로 만들어 누리는 것이 곧 내세에서 희망을 누리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보았다.

안중근 '모사재인성사재천', 종이에 먹, 136.3x34cm
조선시대 선비 정신을 담은 회화는 산수화(山水畵)와 사군자(四君子)가 주를 이룬다. 산수화는 산수에 은거하거나 유람하는 모습인데, 은거할 때는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키워내며 유람은 부귀영화를 뜬 구름처럼 여기며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의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는 깊은 산속 곧게 솟은 소나무 아래 단정한 가옥이 자리잡고 있고, 선비는 대청마루를 다 열어놓고 앉아 글을 적고 있다. 멀리 펼쳐지는 원산은 부벽준을 사용해 기운생동한 산세를 보여주고, 산세 사이 힘차게 계곡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제발의 내용과 어우러져 은일(隱逸)한 삶을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현재 심사정 '산수인물도', 종이에 수묵담채, 94x50cm
추사 김정희의 ‘시우란(示佑蘭)’은 제주에서 유배시절 그린 대표적인 난초 그림으로, 서자 상우에게 전한 것이다. 추사는 아들에게 화면 중앙에 난초를 쳐 보이고 오른쪽에 화제(?題)를 썼다. 작품의 첫 문장 ‘寫蘭 亦當自不欺心如’(난초를 그릴 때는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은 선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전한다.

추사 김정희 '시우란', 종이에 수묵, 23x85cm
공아트스페이스 공상구 대표는 “그림만으로도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전문가는 알 수 있다”며 “ ‘작은 기예도 반드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비로소 시작의 기본을 얻게 된다’는 글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공아트스페이스 공상구 대표가 작품설명을 하고 있고, 포스코 한성희 부사장(오른쪽)이 경청하는 모습.
문인 홍용한(洪龍漢, 1734~1809)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全身像) 등 초상화는 기품과 세밀한 작업이 선비의 모습을 오롯이 전한다.

홍용한 초상, 비단에 수묵채색, 124x59cm
이번 특별전에서 형식의 독특함과 역사성에서 특히 주목받는 작품이 있다.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의 ‘예와강루(曳瓦江樓)’이다. 이 그림에서 서양인들 사이에 자리한 조선복색의 인물이 눈에 띄는데 미소를 띠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과는 달리 홀로 술을 들이키는 모습이다. 화면의 창문 아래 쓰여져 있는 예와강루(曳瓦江樓)는 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흐르는 네바강으로 러시아에서 조선인과 러시아인이 함께 있는 기록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민영환(閔泳煥, 1861년~ 1905년)의 러시아 방문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심전 안중식 '예와강루', 종이에 채색, 36.5x27cm
민영환은 1896년 5월 26일에 거행되는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조선 왕의 특명전권공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그해 6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이에 항거, 자결해 선비의 기개와 의연함을 보여줬다.

특별전의 ‘도자’는 사군자와 연결된다. 선비들은 매화.난초 국화. 대나무를 도자에 담아 늘 보기를 원했다. 특히 백자는 선비의 깨끗한 마음과 상통하고, 수수하고 질박한 형태는 선비의 넉넉한 마음을 닮았다. 그중 18세기초 작품으로 보이는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두드러진다. ‘백자 달항아리’로 불리는 작품은 전체적으로 순백의 빛깔을 머금고 있으며,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넉넉한 맛을 느끼게 한다.

백자대호, 18세기 전반, 高 46.5cm 口徑 22cm 底徑 16.5cm
특별전은 5월 28일까지 이어지며 4월 1일과 5월 1일,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박종진 대기자



박종진 대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