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신뢰’ 회복… ‘남북관계’냐 ‘한미동맹’이냐, 선택의 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연합)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0∼11일 정상회담을 한다. 두 정상의 회담은 2월 말 2차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된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도 ‘불신’의 골이 깊어 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정상회담은 꽉 막힌 대북관계를 풀기 위한 자리다. 일각에선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화가 잔뜩 난 북한을 설득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ㆍ미 정상이 북한에 제시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데다 2차 북미회담 결렬에 따른 불신이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국제 정보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풀기 어려운 두 가지 ‘큰 숙제’를 받아 올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대북관계 해법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중 선택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한미정상회담의 숨겨진 이면을 추적했다.

딜레마1 - ‘신뢰’ 깨져, 북한 관심 끌 ‘재원’ 통할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훼손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을 깰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북핵을 차기 대선의 최대 카드로 활용하려던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2차 북미회담에 참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탓에 회담이 결렬되면서 ‘불신(不信)’이라는 역풍을 떠안게 됐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이 약속한 대북 지원이 지켜지지 않은데 있다. 미국의 주장과 많은 보도는 북한이 회담 의제에 이의를 달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 중도에 막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AP 통신과 로이터 통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밝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의제와 다른 요구를 하고 북한이 이행하기 어려운 주장을 편 게 회담 결렬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본지는 제2768호(3월 11일 자) ‘2차 북미회담 결렬 진짜’ 제목의 기사에서 2차 회담이 무산된 배경을 미국의 ‘트릭’과 일본의 ‘딴지’ 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 2차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지난 1월 18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위급회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뒤 백악관은 2차 북미정상회담 2월 말에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6일 새해 국정연설서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미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차 북미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일 뿐, 북한은 화답하지 않았다. 급기야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월 6일 평양을 방문해 2박 3일간 머물며 북측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2차 북미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북한은 ‘핵군축’은 양보할 수 있지만 ‘비핵화(핵폐기)’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내 문제(러시아스캔들, 지지율 하락 등)를 넘기고 내년 대선의 ‘빅카드’로 활용하려는 비핵화 전략이 벽에 부딪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새로운 제안’에는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제재 완화, 대북 지원 등 파격적인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북한은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답(答)을 주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은 한국을 담보로 불신을 상쇄시키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며 2차 북미회담에 대한 협조 방안을 논의했고,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면 (한국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소식통은 “문 대통령의 말을 믿고 김정은 위원장이 23일 2차 북미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5일 오후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참모진과 함께 하노이로 향했다. 다만 강경파인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에어포스원에 탑승하지 않았다. 본지는 미국과 국제 정보관계자 등의 견해를 토대로 볼턴이 25일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했다. 다음날인 26일, 일본 언론은 아베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미국과 국제기구 등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대북 지원 중단 입장은 25일 결론난 셈이다. 이에 앞서 아베 일본 총리는 2월 20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의 조기 해결을 위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입장을 북한 측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실제 일본인 납치 문제가 느닷없이 2차 북미회담에서 거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회담 첫날인 2월 27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일대일 회담과 만찬에서 두 차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거론되지 깜짝 놀랐고, 회담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 전해졌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정적이다”면서 “북미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가 나왔다면 ‘회담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북한은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담 의제에 일본인 납치문제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회담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을 한데는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속사정’과 관련해 대북 소식통과 국제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미국이 2차 북미회담을 위해 제시한 ‘새로운 제안’에 대북 제재 완화 외에 대북 지원에 관한 부분도 있고, 이것을 일본의 대북 자금 지원으로 대신하려 했다는 말이 돌았다. 즉, 미국이 대북 지원을 일본 재원으로 하려 했고, 그 대가로 일본의 요청(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2차 회담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본이 대북 지원 동결을 발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회담 조건으로 북한에 줄 선물이 사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한 사실을 26일 볼턴 보좌관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으로 추정됐다. 2차 북미회담은 시작 전부터 ‘파행’이 예고된 셈이었다.

APㆍ로이터 통신 등이 밝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의제를 벗어나 북한이 수용화기 어려운 제안을 한 것은 처음부터 회담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2차 북미회담은 파행으로 막을 내렸고, 양국은 불신의 골만 깊어진 채 대립하고 있다.

2차 북미회담 결렬은 남북관계도 틀어지게 했다. 북한은 대놓고 문재인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를 비난했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남측은 중재자(arbiter)가 아니다”며 미국에 따라 움직이는 플레이어(player)라고 지적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관계 소식통 등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정부는 3차 북미회담을 포함해 대북 루트를 새롭게 열기 위해 한국 정부에 모종의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북한이 관심을 보일만한 카드를 제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특히 지난 2차 북미회담에 북한이 나선 것이 대북 지원(재원)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미국이 제시할 카드가 ‘재원(자금)’과 관련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미정상회담 의제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재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김 차장은 2017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미국 등 여러 국가나 국가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한 경제통이자 국제 변호사로 북핵 문제를 포함한 안보 분야와는 거리가 있다.

관건은 미국이 제안할 협상카드가 북한이 관심을 보일 재원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미국과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제대로 추진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가장 신뢰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매우 큰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표를 보고(믿고) 하노이로 출발했는데 회담에서 미국의 속셈에 분개했는데 문 대통령이 미국에 동조 내지 심부름꾼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에 관심을 끌만한 제안(북한판 마셜플랜)을 해도 신뢰가 깨진 상황에선 남북 간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과의 신뢰 회복이 문 대통령의 첫 딜레마이자 풀어야 할 과제다.

딜레마2 - ‘남북관계’냐 ‘한미동맹’이냐 선택의 기로

미국 등 국제 정보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곤혹스러운 숙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시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른 것으로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중 어느 한쪽을 선택 내지 우선시해야 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2차 북미정회담 결렬 후 북한의 파격적인 행보와 관련있다. 북한 내부에선 2차 북미회담 후 그들의 현안과 미래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크게 봐서 노동당 내 민족주의파와 실용주의파 간의 대립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민족주의파는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으로 어렵더라도 같은 민족인 남한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고, 실용주의파는 당장 경제난을 해결하고 주민을 먹여살리려면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이를 외면하는 남한보다 중국과 함께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며 “심지어 북한이 종족상 남한보다 중국 동북지역과 가깝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지난달 10일 북한이 5년 만에 치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실용주의파 사람들이 많이 당선됐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2차 북미회담 후 북한의 발걸음은 러시아와 중국으로 향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해외 방문 의전을 책임지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3월 하순 비밀리에 러시아를 다녀간 것이 확인되면서 조만간 북o러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진 후 9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다.

미국 등 국제 정보관계자들은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 밝힌 ‘새로운 길’을 중국.러시아와 열어가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2차 북미회담 결렬 후 미국과 한국 정부에 실망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경제난 등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중국-러시아가 연대할 경우 미국의 동북아 전략, 즉 중국을 포위하면서 북.중.러 3국에 대응하는 미국-일본-한국-대만 연대 고리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은 일본.한국.대만의 연대에서 나아가 중국과 대립하는 베트남, 인도까지 연대 고리에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한국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모두 중요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러시와의 관계를 강화함에 따라 미국 또한 중국을 포위하는 동북아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과는 별도로 대중국 전략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동북아 전략에 동참하는 순간 북한과는 멀어지고 대결구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선택’의 시험대에 올릴 수도 있다. 일각에선 한국을 동북아 전략의 연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이 '에너지'라는 한국에 결정타가 될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럴 경우 문 대통령은 정말 곤혹스런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박종진 대기자



박종진 대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