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넓은 중재자” 태도 바꾼 北··· / 한미간 조율 방안 만들고 北 설득해야

남북미 정상 간 대화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연합
지난 1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은 4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 하노이회담 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문제의 돌파구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찾겠다는 의도다. 한미회담 이후 청와대는 ‘톱-다운 대화의 중요성’과 ‘남북대화를 지지한다’는 미국 측의 공감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 의사를 확인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 정부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다”며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대화 기조 선상에서 대남?대미 비난공세를 최대한 자제하던 분위기에서 돌연 들고나온 비판적 발언이다. 한편 청와대는 북측에 4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이에 따라 대북특사 파견 여부도 관심사다. 대북특사 파견이 비핵화 과정에서 중요한 키가 될 수 있을까.

‘엇갈린’ 한미정상회담 평가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은 3차 북핵외교안보특위 회의에서 ‘한미정상회담 평가와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황교안 대표는 한미정상회담은 사실상 노딜(No Deal)회담이었다며 “북핵폐기와 대북제재에 대해 단 하나도 실질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핵폐기를 요구하는 것을 바란다”며 균열 없는 한미공조 토대 위에 핵폐기를 위한 확실한 ‘비핵화로드맵 제시’를 주장했다. 또한 진전된 합의가 없는 웨폰(Weapon)딜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과정에서 한국의 “무기 구매를 환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핵특위 자문위원인 김정봉 전 국정원차장은 “한미가 같은 회담을 두고 발표가 다른 것은 북핵문제를 다루는 한미공조의 심각한 균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비핵화 개념을 각각 다르게 표현했다는 점, 미국 발표문에는 톱-다운의 반대개념인 바틈-업 방식의 긴밀한 조율이 더 중요하다고 한 점이 근거”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명시했으며, 정상 간의 대화보다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톱-다운 대화의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남북대화에서 정상 간의 회담이 중요하다는 공감을 얻었기에 남북대화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는 해석이다. ‘톱-다운’이냐 ‘버텀(bottom)-업(up)’이냐를 떠나서 남북대화 추진의 동력을 얻은 셈이다. 실제 미국은 우리 정부에게 북미대화의 가교 역할을 해주길 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회담 직후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특사, 남북미 대화 이끌까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의 형편이 되는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된 결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비핵화 과정에서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다.

그 열쇠로 대북특사 파견이 실제로 이뤄질지 관심이다. 잠시 중단된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고위급 군사회담 실무자였던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남북의 경제공동체를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로드맵 등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없다면 제재완화도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남북미 대화가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본부장도 “남북협력은 유엔제재로 힘들다는 것을 설명하면 북한도 이해할 것”이라며 “비핵화와 관련해서 전향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사파견이 합의된다면 북한이 취할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면서도 “특사 파견 이전에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정도의 진전된 비핵화 조치가 있다면 수많은 제재 중 일부를 해제하는 등 단계별로 상응조치 목록을 가져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위한 대화 테이블로 이끌 수 있다.

한미 간 조율된 안으로 설득에 나서야

문재인 대통령은 특사파견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에 물밑에서 대북대화를 위한 긴밀한 협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특사가 파견된다 해도 미국이 공감하지 못한 굿이너프(Good Enough Deal) 딜(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을 북한에 요구하기도 어렵다. 결국 비핵화 최종상태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 북미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이 된다.

문 센터장은 “최종적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 즉 일정표에 서로가 합의하고 후속조치로서 영변 플러스 알파 핵시설을 폐기하는 부분을 합의한다면 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간에 조율된 안으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북한이 비핵화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정 본부장은 “트럼프 임기 내에 북한도 미국과 빅딜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미국 행정부가 들어서면 협상이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속도전식으로 비핵화를 완료할 생각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남겨둔 협상의 여지를 파고들 수 있어’

따라서 대북특사 파견으로 북미 간의 대화 촉진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핵폐기를 위한 빅딜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현실에서 북미간 실무접촉을 마련하고, 비핵화의 목표와 일정표에 대한 상응한 조치를 합의하는 수준의 실무협상이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성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남북대화의 효과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북한의 실무대표와 우리 측의 한반도평화교섭본부 간에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무협상의 활성화는 양측 간 수긍할만한 부분으로 설득할 여지가 생긴다. 정 본부장은 “기존의 톱-다운 방식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실무협상대표를 통해 정상 간 사전 의견 조율이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대북특사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완전한 비핵화 합의안을 도출해내진 못했다. 대북특사 파견만으로 북미 모두 수긍할만한 합의안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다만 북미대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도 핵-경제병진노선이 아닌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대화의지를 거두지 않았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뜻 파악해야

수십년 간 북한의 협상전략을 연구해온 전문가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 발언에 대해 “북한이 과거 70년간 보여온 협상태도”라며 “전략적으로 태세전환을 하면서 벼랑끝전술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수법”이라고 분석했다. 핵심은 김정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북한의 의도가 과거와 같은지, 진심으로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사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의 주변엔 핵심 엘리트층이 약 2000여 명이 있는데 이들을 설득할 시간도 필요하다. 김정은이 이 사실을 트럼프에게 말했을 것”이라며 “비핵화를 하긴 할테지만 대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굿보이, 믿는다’ 등의 말을 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그는 “그래서 트럼프가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며 “이것을 받아들이는 관점도 두 가지다. 과거와 다르게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보인 것인지, 김정은의 시간벌기용 기만작전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제네바합의 등 과거 협상에서 전격적인 태세전환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고 뜻을 관철시켰다.

극심한 대북제재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유리한 국면에서 차기 핵협상을 하고자 하는 북한의 국면전환용 작전으로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북한은 의도된 벼랑끝전술에서 국면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대화를 제시하는 것도 전형적인 북한의 협상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에 보인 북한의 발언과 태도가 비핵화의 진정성이 담긴 것인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대북특사 파견을 비롯한 실무협상 등의 남북대화 추진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서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