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공무집행방해,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구속됐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6월 27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석방돼 구치소를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국회 앞 집회에서 차단벽을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김명환 위원장이 구속 6일 만에 조건부로 석방됐다. 총파업 결의 등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던 민주노총의 투쟁 기조나 방향에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구속적부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6월 27일 보증금 납입 조건부 석방 결정을 했다. 석방 조건으로는 보증금 1억원과 주거제한, 출석의무, 여행허가가 붙었다. 주거제한이란 주소지를 이전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여행허가 역시 해외여행 전에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가 구속이 적법한지 다시 심리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로 구속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법관이 직권으로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적부심의 결정에 따라 석방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 출석 요구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가 아니면 동일한 혐의로 재구속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법원의 석방 결정에 따라 이날 오후 6시 45분께 구속되어 있던 남부구치소에서 나왔다. 김 위원장은 “검찰과 경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민주노총이 비판하는 걸 가로막으려 하는지 확인했다"며 "무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것”이라며 “아직까지 남부구치소에는 민주노총 간부 3명이 구속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소외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집회가) 다음주에 있다”며 “이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날까지 민주노총은 끊임없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한 뒤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는 ‘국회 앞에서 불법 집회를 벌인 혐의를 인정하는지’ ‘7월 18일 총파업을 그대로 진행할 것인지’ ‘투쟁 기조에 변화는 없는지’ 등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위원장은 오후 9시쯤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향후 투쟁 방향성을 정하는 집행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직접 주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7월 예고된 파업 일정 등을 집행부와 조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8일 서울 강서구에 소재한 KBS 스포츠월드 제2체육관에서 열리는 전국 단위사업장 비상대표자대회에 참석한다. 김 위원장이 석방되면서 김 위원장 공석 때 급하게 세워진 세부 투쟁 계획 일부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주노총 측의 향후 대정부 투쟁의 정도와 방향이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전 조직원을 동원해 투쟁하겠다”던 강경입장을 내세웠지만 석방이 된 만큼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기엔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그간 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대화 참여론자인 김 위원장의 역할로 일자리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 의제별 대화 기구에는 참여해왔다. 역대 단 한 번도 없었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경찰·법원 자진출두 역시 김 위원장의 유화적인 대정부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대화파’였다.

반면 민주노총의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가 위축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노총 소속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7일 사상 첫 연대파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오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국공립 초·중·고등학교의 돌봄교실·급식실 노동자들,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고용노동부 등 중앙행정기관의 청소미화·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 지방자치단체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는다. 이번 파업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에서 조직됐다. 환경미화원처럼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민간위탁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3단계 가이드라인’에 의해 사실상 정규직 전환 길이 가로막혔다. 전환을 위해서는 위탁업체의 사용자까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전환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김 위원장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공용물건손상·일반교통방해·공동건조물침입죄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21일과 올해 3월27일, 4월2~3일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국회 앞 민주노총의 집회를 주최하고 조합원들이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장비를 파손하고 경찰 차단벽을 넘어 국회 경내에 진입하도록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지난달 24일 김경자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노동 탄압 규탄과 민주노총 대응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25일 전국동시다발 경의대회,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앞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28일 전국단위노동대표자회의, 오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에 이어 다음달 18일부터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