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비핵화 새 방법론’ 거론 없어/ 한-미 방위비 분담 인상 놓고 샅바싸움도

지난 22일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제9차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 제스처를 보인 뒤 이뤄진 한미 정상 간 첫 만남이다. 문 대통령이 자처한 ‘중재자’ 역할이 얼마나 통할 것인지 주목받은 까닭이다. 23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이 주장한 체제 안전보장과 관련한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양국 정상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골자로 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정신 유효 ▲북한에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입장 확인 등을 재확인했다.

한미동맹은 ‘린치핀(linchpin)’

양 정상은 북한에 ‘대화’와 ‘평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했다. 특히 70년 가까이 지속된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우기라도 하듯 양 정상은 한미동맹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특히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린치핀(linchpin)’이라고 평가하며 굳건한 동맹체제를 과시했다. 린치핀이란 외교적으로 꼭 필요한 동반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을 린치핀에 비유해오며 미일동맹에 줄곧 사용해왔지만 오바마 행정부 이후 한미동맹을 동북아의 ‘린치핀’으로 비유하며 물샐틈없는 한미 공조를 다져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한미동맹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린치핀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3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답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

한미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단연 ‘비핵화’ 의제였다. 양 정상이 북한에 대화와 평화 메시지를 줄기차게 던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비핵화 새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북한이 전부터 요구하던 제재완화와 체제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이어지지 않아 비핵화 의제가 큰 틀에서 총론만 확인한 한계를 보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정상회담이 30분이고 통역을 빼고 이야기한 시간만 따지면 15분 정도인데 그 안에 핵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을 합의하기란 어렵다”며 “정상회담 후 실무논의를 안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물밑에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무력 사용하지 않을 것” 적극적인 대화 메시지 전달

북한이 비핵화 의제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체제 안전과 보장이다. 북한은 과거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카다피 정권의 길을 밟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체제안전보장’은 비핵화를 풀 수 있는 첫 단추로 꼽힌다. 양 정상은 북한의 체제붕괴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무력 행사를 하지 않고 비핵화 시 밝은 미래를 제공한다는 기존의 공약을 재확인하며 사실상 ‘무력 불가침’ 원칙을 합의했다. 김일성 정권부터 미국에 요구하던 ‘상호 불가침 조약’을 구두합의 수준에서 한미 양국이 합의한 것이다. 김 전 차관은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항구적인 평화체제와 완전한 비핵화로 가겠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 더 중요하다”며 “그것에 기초해 한미 양국이 북한에 일관된 메시지를 준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력 불사용’과 더불어 적극적인 평화 메시지가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대화를 통해 비핵화 진전을 이루겠다는 뜻과 더불어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놨다.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공개한 ‘DMZ국제평화지대’ 조성을 통해 북한의 안전 보장을 실효적으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장치로 평가받는다. 다만 구체적인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DMZ국제평화지대’가 이른 시일 내에 현실화되기란 쉽지 않다.

비핵화 ‘새로운 방법’ 구체적 논의 없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열쇠는 북미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는 ‘비핵화 방법론을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다. 리비아 모델(선 핵폐기 후 보상)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의 경질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재차 리비아 모델을 비판하며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비핵화 국면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김정은 위원장과 또 만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적절한 시점에 그럴 것“이라고 말하면서 줄곧 북한에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 재개를 낙관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의 정상 간 담판을 선호하지만 결국 비핵화 세부 로드맵 조율은 실무협상에서 최종 조율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기지에 '한미동맹 상징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한미동맹 상징조형물'은 '함께하는 내일,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한미 장병이 협력해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탑을 비롯해 4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연합

북한의 ‘무반응’... 대화로 이어질까

이번 회담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경질된 후 이뤄진 첫 정상회담이다. 볼턴 전 보좌관을 향해 ‘흡혈귀’, ‘인간쓰레기’라고 맹비난해온 북한이 얼마나 대화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관심이 쏠렸다. 북한은 9차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무반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전매체인 ‘메아리’는 우리 정부에 대해 “황당한 소리, 외세굴종적”이라는 반응을 내놨지만 북한 공식 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서는 한미회담과 관련한 메시지를 일절 내놓지 않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무반응이 결과물을 수반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선 대남 비난 메시지를 하지 않는 것은 긍정적이나 지금 미국과의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비난 성명을 내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정책에서 정통 ‘매파’로 통하는 볼턴 보좌관이 경질되면서 북한도 한숨 돌린 상황에서 트럼프와 대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3차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하며 평양 초청 의사를 밝힌 비공개 친서를 보낸 것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 모멘텀이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미 북미 간에는 실무라인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한미정상회담이 북미의 대화 흐름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미국과의 실무라인이 가동되고 있고, 이번 한미회담 결과로 어떠한 대응책이 나온다 해도 북한의 관심도는 떨어질 것”이라며 “한미정상회담과는 상관없이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에 기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미 북미 정상은 세 차례나 만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상대의 패를 다 아는 상황에서(한미정상회담에 의한) 변수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차관도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 연내에 정상회담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 내 정치적 수요에 의해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전략으로 북미 회담을 앞당길 여지는 있다”고 분석했다.


견고한 한미동맹 뒤엔 방위비 분담금·무기구입 압박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불거진 한미 관계 이상기류에 대한 우려는 양 정상이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역내 평화 및 안보에 여전히 ‘린치핀(핵심축)’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히며 일단락된 모양새다. 실제 동맹국의 대미투자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각종 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굳건한 한미동맹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추가로 미국의 LNG 가스를 수입하기로 결정했고,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미국의 자율운행 기업과 합작 투자를 하기로 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도 한미 양국은 밀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한미 간 해법을 찾아야 할 산적한 과제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건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한 사실도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강조하며 미국산 무기 구매의 증가, 분담금의 꾸준한 증대 등을 들며 한미동맹에 기여한 한국의 노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인상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에 이어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방위비 인상 압박을 다시금 요구했다. 실제 한미 협상 대표단은 내년도 방위비 협상에 돌입하며 한미 간 분담금 눈치 싸움이 본격화 됐다.

우리 정부의 방위비 인상에 대한 방어 수단은 ‘미국산 무기구매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산 무기구매의 지난 10년 간 현황을 밝혔고 앞으로 3년 간 미국산 무기를 어떻게 수입할 것인지 공개하며 방위비 분담금 문제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향후 우리 정부의 미국산 무기 구매 규모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인지 주목된다.

신 센터장은 “무기 구매와 관련한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지소미아와 관련된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힘을 쓴 것으로 본다”며 “방위비 분담은 새로운 라운드로 돌입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일반적인 계산으로 보면 무기를 구매했으니 방위비를 좀 깎아달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무기 구매비용이 방위비와 비례해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라며 “한국이 방위비 협상에서 조금은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여지는 없지 않다”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