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 성적표 든 기업, 사업 재편 '분주'

여러 차례 각종 지표로 경고음을 확인한 한국 경제가 현실에서도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경제의 중심축인 대기업 중 상당수가 어닝쇼크에 직면했다. 물론 시장 예상치를 웃돈 기업들이 있으나, 이 역시 당초 기대가 낮았던 데 따른 기업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 까닭에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가고 있다.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를 심도 있게 돌아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암울한 실적 발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최근 올해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대기업 39곳의 실제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의 38.5%인 15곳 실적이 컨센서스(전망치 평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전망치를 상회하긴 했지만, 이들의 경우 글로벌 수요공급 상태가 안좋은 곳으로 평가됐던 곳이다.

재벌닷컴이 올해 1~3분기 누적 연결실적을 공시한 매출액 10조원 이상 비금융 상장사 13개사의 영업실적을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집계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매출액은 총 506조970억원으로 전년 동기(520조2560억원) 대비 2.7% 감소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실적부진’ 공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3분기 실적이 눈에 띄었다. 매출액은 26조9689억원, 영업이익은 378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경우는 전 분기 1조2380억원보다 69.4% 급감한 수치다. '세타2 GDi' 엔진 등에 대한 품질 비용 6000억원이 반영됐지만, 시장 전망치 평균(5333억원)을 29%가량 밑돌았다.

현대제철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과 비교해 66% 감소한 341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 추정 영업이익은 1468억원 수준이었다. 현대제철은 “철광석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자동차강판·조선용 후판 등 주요 제품에 대한 가격 반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 같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원료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주요 수요산업인 건설 산업 침체가 겹친 데 따른 여파다. 판재류 부문에서 철광석 가격이 연초 대비 20% 이상 증가한 데다, 건설 업황 둔화로 철근·형강 판매가 감소하고 단가도 하락하면서 매출액과 이익이 줄었다. 현대차와 현대제철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돌파해 나간다는 의지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7조700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인 7조1085억원보다 8.8%가량 높았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4726억원으로 시장 기대치 4297억원의 약 10%를 넘겼다.

당초 이들 기업의 시장 예상치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부진에 따른 단가 하락을 반영해 낮게 책정됐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작년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17조5749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여기서 약 10조원여 빠진 것이다. SK하이닉스도 작년 (6조4724억원)과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 실적이 예상치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발표됐으나 일회성 요인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4분기에는 다시 영업이익이 3분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반도체 업황 개선이 이제는 시작된 듯하다”면서 “2020년 1분기 저점을 확인한 이후 성장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LG전자는 미소를 머금었다. 역대 3분기 중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6055억원)의 15%를 뛰어 넘은 781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LG전자가 거둔 성과 중 최대치다. 북미, 유럽, 아시아 등 해외 전 지역의 성장세에 힘입어 호실적을 거뒀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LG전자는 “내년에 TV 시장 자체가 장미빛 전망은 아니다”라며 “OLED TV가 가진 프리미엄 가치를 내세워 수익성과 매출을 증가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사업 재편 적극적

이런 상황에 기업들은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값싼 제조 기지였던 중국은 이젠 더 싼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경쟁자로 부상하고, 인공지능·전기차 등 제조업 패러다임 변화가 생기면서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원가 절감에 나섰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물량 공세에 맞서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원가절감을 택해야 했다. 이를 통해 저가 스마트폰 수요가 많은 중국,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의 약진을 노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내년에 출시될 스마트폰 모델의 ODM(제조자 개발 생산)도입 규모를 두고 내부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ODM을 도입해 300만대를 맡겼고, 올해 3000~4000만대로 확대하며, 내년부터는 60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갤럭시 M시리즈 및 저사양 A시리즈 등 저가형 모델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도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ODM 비중이 작년 3%에서 올해 8%까지 확대되고, 내년에는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ODM은 제조자 개발 생산(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하청업체가 유명 브랜드 기업의 주문을 받아 상품 개발부터 디자인, 부품 조달, 생산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대행하는 생산 방식이다. 즉 삼성전자가 가격대만 정해주면 중국 업체가 설계 부품 조달, 조립까지 알아서 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장기적으로 자동차 비중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미래의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50%, 하늘은 나는 자동차 30%, 로보틱스가 20%를 차지하는 사업구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10월까지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협업·투자를 활발히 해오고 있다. 총 34건, 투자 금액은 26억달러가 넘는다. 그룹이 연합체계를 구축한 부문은 자율주행 및 AI(인공지능)부터 무인항공, 차세대 배터리 등까지 다양하다. 통신과 ICT, 완성차 산업을 아우르는 전 산업부문에서 기술흡수 및 사업기회 확보에 나섰다.

SK그룹도 배터리에 힘을 주고 있다.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휘발유와 디젤 등 화석연료의 수요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 계열 화학사인 SKC는 지난 8월 주력인 화학 부문을 떼어내 SKC PIC(가칭)를 만든 뒤 이 회사 지분 49%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SKC는 대신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 업체인 KCFT를 인수할 예정이다. 다른 계열사인 SK종합화학도 신규 수익 사업을 찾기 위해 지난 15일 프랑스 석유화학 업체 아르케마의 고기능성 폴리머 사업을 3억3500만유로(약 4400억원)에 인수했다.

LG그룹도 비주력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고 있다. 지난 9월 구광모 LG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해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LG전자는 수(水)처리 자회사인 하이엔텍과 엘지히타치워터솔루션의 지분 전량을 2280억원에 매각했다. LG화학도 LCD(액정표시장치)용 편광판과 유리기판 사업부 처리를 고심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적자의 늪에 빠진 LCD 공장의 일부를 폐쇄하고 생산직 직원의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투자 부진

정부도 위기감을 드러냈다. ‘한국 경제는 견조한 재정 등 긍정적 요소를 갖췄다’던 홍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글로벌 경제성장률이나 교역 증가율을 따져볼 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내외 위험요인과 우리경제 구조적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내년 확장적 재정 운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 실적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왔다.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6개월 연속 기준치인 100이하고, 올해 들어 4월을 제외하면 소비자심리지수는 14개월 연속 하락세다. 홍 부총리 역시 이 지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IMF외환위기 정도의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증권사들은 4분기부터는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 전망한다. 반도체 재고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반도체 업황 반등 신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는 올 4분기 코스피 상장사의 80% 이상이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코스피 상장사 172곳 중 142곳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늘고 적자를 기록했던 20곳 중 17곳은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만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반도체 독주가 재현되는 것일 뿐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반도체를 뺀 28개 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4조6901억원)보다 10.4%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 실적이 개선된 자동차도 전 분기 대비로는 영업이익이 44.3% 급감했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이 올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면서도 “설비투자는 반도체 사이클에 좌우되며 그 이외의 산업의 경우 생산능력 감소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뒤로 갈수록 경기 둔화 우려와 글로벌 정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기에 통화정책과 함께 산업별 맞춤 투자 심리 제고 전략이 필요성을 강조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대내외 경기 하방리스크에 대응해 통화정책과 성장 중심의 재정정책 기조가 요구되고, 산업별 맞춤 투자 심리 제고를 위해 정책에 대한 기업 의견을 다각도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주현웅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