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총선 5개월 앞으로..."사회적 신뢰에 눈길 돌려야"
  • ”사회적 신뢰에 눈길 돌려야”
  • | 2019-11-15 17:29:22
내년 총선 5개월 앞으로…화두는
80년대 산업화ㆍ90년대 민주화 거쳐 공정ㆍ자유민주주의 대두…”사회적 신뢰에 눈길 돌려야”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치권에서 `사회 혁신’에 대한 담론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 시대의 화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정한 사회, 불평등 해소, 한반도 평화, 자유민주주의 복원 등이 강조되고 있다.

일단 이번 총선을 포함해 한국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산업화,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가치가 최고이던 시대는 갔고, 경제적 가치가 추앙받던 때도 지났다”며 “개인의 의욕, 자율성을 높여 사회 전체의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의제 설정이 중요한 때”라고 풀이했다.

물론 산업화, 민주화를 거쳤음에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소수 대기업 독점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처럼 스타트업이 대형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은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외집회에 국회의원들이 몰려다니는 건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교수는 “갈등을 제도화하는 창구가 의회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우리의 의회민주주의는 실패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은 산업화, 민주화 이후 제대로 된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해 왔다. 타국에서 유행하는 의제를 필터링없이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마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OWS)’ 시위를 들 수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2011년 미국의 경제수도인 뉴욕에서 발생해 SNS를 통해 세계 각지로 퍼졌다. 시위대는 1%의 거부들이 부의 50%를 차지한다며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국 정치인들은 시위에 참여하거나 인터뷰에서 시위를 거론하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공감을 얻는 듯 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부의 집중 이슈와 함께 기득권의 부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회 전반적인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 교수는 “공정은 과정의 공정과 분배의 공정으로 나뉜다”며 “둘 다 너무 이상적이며 펀더멘털한 가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전세계적으로 퍼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듬해 상반기를 넘기지 못했다.

한국에서 빛을 발하는 `공정’

2019년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화두가 빛을 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반환점인 지난 1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정을 다시 한번 언급하며 “혁신, 포용, 공정, 평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총선기획단도 “공정과 혁신, 미래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공정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공정을 카드로 내세우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의 신당추진기획단은 성명서에서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 이후의 세대는 국민들의 힘을 활용하여 과실만을 취한 그들에게 분노하고 있다”며 “분노에 찬 요구가 바로 공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정세대가 산업화세대·민주화세대의 성과를 전체 국민들에게 돌려 드리며 우리 사회를 보다 역동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런 기류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대적 패러다임은 구호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재열 교수는 “공정은 10년에서 20년 동안 (변화 양상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이 주도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불평등 해소 역시 자주 등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시정.도정 운영에서 두드러진다. 박 시장은 청년의 구직 및 내집마련 출발선이 불평등하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수당을 확대 운영하고 청년월세지원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또 2020년부터 3년간 매년 신혼부부 2만5000쌍의 주거를 지원한다고도 했다. 박 시장은 1일 서울시의회 시정연설에서 "힘든 과정을 거쳐 어렵게 편성한 예산인 만큼 한 푼도 새지 않고 알차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논란을 의식한 언급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청년수당에서 더 나아가 한 가구당 월 60만원을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했다. 청년수당의 경우 지난해부터 연간 최대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 제도가 운영 중이다. 2015년 성남시장 시절 시작한 제도를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 시행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서울시와 경기도가 청년수당 경쟁이 붙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지사는 조국 사태 이후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오늘날 대한민국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라며 “‘규칙 어겨서 이익 볼 수 없고 규칙 지켜서 손해 보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염원이 됐다”고 했다. 이어 “내년에는 사회가 공정하면 개인의 실질적인 삶 또한 바뀐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평화’는 1990년대를 관통했던 의제다. 통상적으로 남북화해 분위기는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지지율 상승과 연결됐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9월부터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9월 중순 평양 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지율 60%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지율은 점차 하락했다. ‘한반도 평화’ 카드가 시대를 대변하는 어젠다가 되기에는 역부족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과 12일, 이틀 연속 ‘평화’를 언급했다. 지난 11일에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혁신, 포용, 공정, 평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다”고 했다. 12일에는 부산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아세안의) 굳건한 지지가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재열 교수는 “평화는 우리가 의도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국제적 흐름 속에서 어느 정도 수동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평화가 정치적 어젠다가 되기엔 모호한 개념이란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평화를 중재하는 것은 한국에게 과다한 역할”이라며 “우리는 핵우산이 없고 저쪽은 핵 카드가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보수우파의 대통합을 주장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가치를 받드는 모든 분들과 정치적 통합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10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대한민국이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달 15일 국민대 강연에서도 황 대표는 "국정이 아주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제도의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가 관건

이 교수는 “인품이 눈에 안 보이듯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인다”며 “한국사회는 비가시적인 가치로 사회적 품격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즉 ‘질 높은 사회(social quality)’를 새로운 어젠다로 삼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선 제도의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말하는 ‘공정’은 매우 포괄적이며 이상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제도의 공정성은 각 개인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부터 공통의 규칙을 적용받는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와 관피아형 부패, 연고주의, 밀실거래가 존재하지만 점차 그 농도가 옅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이 공정한 사회로 전환하고 있음에도 공통의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 집단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7점으로 180개국 중 45위다.

`사회적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이 교수는 지구촌 사회에서 신뢰가 높은 나라가 상대적으로 잘 살고 있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나라는 불평등이 심하다는 경험칙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인간적 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나라들이 신뢰가 높은데, 이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인류는 신뢰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신뢰 이슈는 1990년대 레이거니즘과 대처이즘의 핵심인 `경쟁’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 경쟁에 기반했던 1990년대에 사회문제가 여전히 팽배했다. 결국 이기심만으로 인류가 사회적 난제들을 풀어갈 수 없음을 알기 시작하면서 `신뢰’에 기반한 사회자본을 늘려가자는 화두가 등장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패자가 승복하지 않도록 만들어, 결국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며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국가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고 사람의 품격을 보듯 국가의 품격을 매기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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