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공기업 경영평가'

기업경영의 기본은 신상필벌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부채가 늘고 이익이 감소해도 공공기관장들은 꼬박꼬박 성과급을 챙긴다. 비판여론이 거세지만 이런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물론 공기업 내지 준정부기관 평가에서 실적만을 놓고 따질 수는 없다. 수행하는 업무의 공공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영실적과 성과급이 정반대로 가는 건 심하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마땅한 변명거리가 있다. ‘정부지침’이란 것이다. 성과급의 근거가 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세부 기준 등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의 배경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회는 이제야 관련 지침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성과급 잔치가 올해로 끝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적자에 자본잠식인데도 성과급 ‘펑펑’

경영이 악화해도 성과급 잔치를 벌인 공기업들의 사례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관련 실태를 자세히 뜯어보면 그 정도가 무척 심각하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은 기재부 지정 공기업 35곳의 지난해 성과에 따른 올해 임원 성과급 지급 현황 등을 종합했다. 그 결과 다수 공기업이 실적부진을 겪고도 성과급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 중 부채와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전부 증가한 곳은 3곳에 불과했으나, 임원 성과급을 받은 곳은 33곳에 달했다.

10곳 중 8곳 가량의 공기업이 부진한 성과를 거둔 셈인데, 열에 아홉에 해당하는 임원들이 성과급을 타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들 기관의 작년 부채규모는 전년 대비 9조2170억원 증가, 당기순이익은 3조3760억원 감소했다. 성과급을 수령한 임원들은 총 158명으로 규모는 78억원 수준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실적부진뿐만 아니라 자본잠식을 겪고도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챙긴 사례도 있다.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부채가 전년 대비 5조3320억원 증가하면서, 부채비율이 160.57%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2조6159억원 감소해 1조1745억원 적자를 봤다. 그럼에도 한전은 정부가 올해 시행한 경영평가에 따라 기관장이 4096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상임감사는 7164억원을 탔고, 4명의 상임이사들은 총 2억1444억원가량의 성과급을 지급받았다.

이런 사례가 흔하다. 한국석유공사는 작년 뿐 아니라 최근 5년간 연평균 1조8000억대의 손해를 지속해서 기록했는데도,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기관장에게 성과급이 지급됐다. 철도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1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도 임원들에게 각각 5400만원과 8900만원의 성과급이 나왔다. 한국남동발전도 부채가 1584억원 늘고 당기순이익이 1460억원 감소했으나, 기관장 포함 4명의 임원이 2억5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심하다. 유성엽 대안정치연대 대표도 공기업 성과급 관련 자료를 조사했는데, LH는 지속되는 실적부진을 보이고도 4년 연속 기관장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이곳은 2018년 결산 기준 부채가 130조원, 부채비율이 283%에 달하는 대표적 부실 공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기관장이 1억1000만원의 성과급을 수령했다. 그 외 상임감사와 3명의 상임이사 등도 약 3억9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챙겼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한국광물자원공사다. 이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부채는 전년 대비 4899억원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2755억원 감소했다. 작년 한 해에만 당기순이익 686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경영평가 C등급(보통)을 받아 수천여 만원의 성과급이 집행됐다. 기관장이 2400만원가량 수령했고, 상임감사가 3410만원 정도 받았다. 그 외 3명의 상임이사들이 총 4240만원 수준의 상여급을 받아갔다.

이런 실태에 대해 유성엽 의원은 “수천억의 손해를 보고도 경영을 잘했다고 수천만원 성과급을 지급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공공기관들 뿐”이라며 “해마다 반복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안일한 조치로 국민의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경호 의원은 “현 정부 들어 사회적 가치라는 미명하에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한 공기업 경영평가

공기업들이 숱한 비판여론에도 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지침이 빌미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공기업 성과급은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따라 지급된다. 다만 평가 기준이 실적보단 공공성에 가중치를 두고 있다. 이는 문재인정부가 지난 2017년 12월 경영평가 제도를 개정한 데 따른 결과다. 개정안에 따르면 안전, 윤리경영, 일자리, 상생협력 등 사회적 가치 관련 평가배점이 기존보다 50% 이상 대폭 확대됐다.

자연히 실적 등을 반영한 ‘일반 경영관리’ 항목의 배점은 31점에서 25점으로 줄었다. 결과적으로 실적이 악화해도 안전과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 지표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전 등이 5조원 이상의 부채를 늘리는 등 심각한 실적부진을 겪고도, 책임을 지기보다 성과급을 집행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번에 B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호실적을 거둔 곳과 부진을 겪은 곳의 희비가 엇갈리는 기현상도 발생한다. 예컨대 한전KPS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전년보다 254억원 늘려 1613억원 이익을 봤다. 하지만 경영평가에선 D등급을 받았다. 이에 임원 5명이 성과급 54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한국가스기술공사는 당기순이익과 부채가 모두 개선된 몇 안 되는 곳임에도, 자본잠식 광물자원공사와 같은 C등급을 받았다. 이에 기관장 포함 4명의 임원 성과급 총액이 LH의 절반 수준인 1억9000억원에 불과했다.

비단 성과급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개정된 경영평가로 인한 문제가 적지 않다. 각 공기업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무리한 경영을 이어가는 사례도 있어서다. 2조8631억원의 부채를 늘리고, 7122억원의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LH는 올해 하반기에 역대 최대 규모인 320명 채용에 나섰다. 한국석유공사도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2000%가 넘지만 신규채용 규모를 54명까지 확대했다. 이곳은 매년 2~4명을 뽑아왔다.

탈원전 기조 등으로 수익성이 유난히 나빠진 발전 공기업들은 더욱 심각하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전과 한수원 등 발전 6개사의 경영 상태를 확인한 결과, 이들 기관들은 지난해에 직원을 2년 전보다 2494명 더 채용했다. 연봉이 1억원을 넘기는 직원도 55명 늘리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기는커녕 방만 경영을 지속했다. 이에 6개 발전공기업의 총 인건비 지출액은 2016년 3조5265억원에서 2018년 3조6493억원으로 총 1228억원 증가했다.

정량화가 사실상 불가한 공공성이 경영평가의 주요잣대가 돼버린 탓에 여론상 공감을 못 얻는 결과도 적지 않다. ‘안전 및 환경’에 관한 배점이 대폭 늘어났지만, 한국서부발전이 C등급을 받아 4명의 임원이 1억6700억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이곳은 김용균씨 사망사고로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었던 곳이다. 실적만 봐도 부채가 2256억원 증가하고, 당기순이익이 1377억원 줄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 등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 이 같은 성과급이 나왔다.

‘살찐 고양이법’ 대두…경영평가 폐지 주장도

공공기관들의 방만 경영과 성과급 잔치에 대한 비판이 올해로 끝을 맺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이제야 변화의 조짐이 살짝 엿보이기 시작해서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공기관장 연봉 상한선 도입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또한 “경영실적과 경영평가 등급이 다른 게 고민”이라며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생각해 보겠다”고도 부연했다.

기재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공공 기관장의 기본연봉은 매년 정무직 공무원 중 차관의 연봉과 연계해 책정된다. 기본연봉이 차관의 연봉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차관의 연봉과 동액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공공 기관장들이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수령하면서, 정부부처의 차관은 물론 장관의 연봉을 뛰어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에 홍 부총리의 발언이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의 도입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살찐 고양이법은 국회의원이나 공공기관장 등의 성과급을 포함한 연봉상한제를 뜻한다. 국회에선 아직이지만 일부 지역의회에서는 조례를 통해 시행 중이다. 지난 5월 부산시의회가 처음으로 공포했고, 뒤이어 경기도의회(7월), 울산시의회(9월), 경남도의회(10월), 전북도의회(11월) 순으로 통과됐다. 국회에선 3년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공기관장을 대상으로 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일각에선 공공기관 경영평가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은 민간기업처럼 외부감사를 받고 있는 데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 등까지 받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정부로부터 경영평가까지 받는 것은 다소 불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해외의 경우 정부로부터 특정 과제를 부여받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는 데에 주력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는 16곳이 D등급을 받았다. 각각 ▲그랜드코리아레저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우체국물류지원단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자력환경공단 ▲장학재단 ▲환경공단 ▲아시아문화원 ▲영화진흥위원회 ▲기상산업기술원 ▲세라믹기술원 ▲재정정보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등이다. 이들 중 절대·상대평가 모두 최하를 기록한 한국마사회, 석탄공사, 영화진흥위원회만이 성과급을 못 받았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