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전경.

흑해의 가옥들은 비탈진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검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의 집들, 모스크들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흑해 일대를 채색한다. 터키사람들에게 흑해는 ‘손님을 좋아하는 바다’라는 정겨운 의미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흑해가 검푸른 빛을 띠는 것은 단절의 이유가 크다. 사방이 육지로 싸인 내해이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일종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지리상의 단절은 지중해 연안의 화려한 도시들과는 다른 풋풋한 개성을 잉태했다.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흑해까지는 버스로 16시간 가량 걸린다. 버스에 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멀고 낯선 길이다. 흑해 일대는 기원전부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무역로였다. 고대 로마,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수많은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흑해와 붉은지붕 가옥들.

중앙아시아의 관문, 트라브존

‘흑해의 문화’를 대변하는 도시는 트라브존이다. 트라브존은 옛 소련 땅이었던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과는 지척거리인 도시다. 이스탄불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의 성격이 짙었다면 트라브존은 터키와 러시아 문화권을 잇는 교차로의 의미를 지녔다. 흑해를 사이에 두고 조지아로 향하는 배가 떠나고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으로 향하는 버스들도 수시로 출발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조지아,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터키땅에 넘어와 둥지를 틀었다. 실제로 흑해의 골목에서 햇살과 차를 즐기는 러시아인의 정취는 방문자들의 모양새가 아니다. 트라브존 보즈테페 언덕 위의 전경은 흑해 연안 도시의 편견을 아름다움으로 빠르게 전이시킨다. 비탈길에 가득 늘어선 붉은 지붕과 모스크들 사이로 검푸른 흑해는 끝없이 이어진다. 트라브존에서는 수직 암벽 아래 비잔틴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쉬멜라 수도원도 방문해 볼 일이다. 수도사들이 은둔했던 수도원에는 1000년 세월의 프레스코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쉬멜라 수도원.

바다향 깃든 노천카페의 ‘홍차 한잔’

흑해 인근의 리제는 홍차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흑해에서 맛보는 ‘차이’는 맛이 깊으면서도 은은하다. 거리에는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노천 테이블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추운 날에도 두꺼운 옷을 걸쳐 입고 차를 마시며 ‘오전의 여유’를 만끽한다. 흑해의 골목에서 낯선 이들은 구릿빛 동양인들이다. 서너명만 지나쳐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눈빛은 이물감이 아니다. 신비로움과 호의다. 뒷골목 청춘들에게 담뱃불을 빌려도, 은근슬쩍 노천바 의자에 잠시 걸터앉아도 양손을 살짝 들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이곳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을 실로 짜듯 엮어 만든 장신구인 ‘하스’를 만드는 풍경이다. 터키 사람들은 유달리 금을 좋아한다. 특히 흑해 일대에는 ‘하스’를 팔찌처럼 차고 다니는게 오래전부터 성했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금 대신 은으로 된 ‘하스’를 팔기도 한다. 흑해에서는 우준 호수나 ‘터키의 알프스’로 불리는 아이데르 등을 둘러보면 좋다. 바다와 더불어 흑해지역의 자연과 울창한 숲을 음미할 수 있다.

글^사진=서 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 메모>

▲가는 길=터키 흑해의 관문 도시는 트라브존이다. 한국에서는 이스탄불을 경유해야 하며 이스탄불에서 트라브존까지는 하루 3~4편의 비행기가 있다. ▲음식^숙소=흑해는 해산물로 유명하다. 꼭 맛봐야할 생선이 ‘하므시’(큰 멸치)로 이곳에서는 하므시 튀김으로 먹는다. 번화가에도 생선가게가 버젓이 들어서 있다. ▲기타 정보=흑해의 날씨는 겨울에도 평균 5도로 온화한 편이며 평균 10~20도를 유지한다. 트라브존은 축구로 익숙한 곳으로 FC서울의 기네슈 전 감독은 트라브존에서는 축구 영웅의 칭호를 받고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