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농산물 수입량 비현실적” / “미국이 관세카드 너무 일찍 꺼내” / 美, 금융 카드 남아있어

지난 13일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내놨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중국은 미국의 발표처럼 500억 달러의 농산물을 사들이겠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시장 상황이 보장될 때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급격히 늘어난 수입량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중국이 소비할 수 있는 농산물의 양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덧붙인다. 워싱턴에서는 중국에 관세카드를 너무 일찍 꺼낸 것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미중 1차 합의는 중국의 침체된 경기 상황과 미국의 재선 레이스가 맞물린 임시방편책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서로 말 다른 美-中

미국과 중국은 과거 13번의 만남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원격으로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 서명 절차는 내년 1월 중으로 예정돼 있다. 합의문을 언제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아직 없다. 합의 내용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향후 2년 간 매년 1000억 달러 수준의 미국 제품을 수입한다고 밝혔다. 그중 농업 제품이 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내놨다.

중국은 수입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도 금액도 발표하지 않았다. 중국은 대폭적인 관세 인하 혹은 철폐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관세 인하 폭을 보고 농산물 수입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대중 외교관 출신의 중국연구기관 관계자는 “미·중이 아무리 합의를 해도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조건이 붙게 되면 2차 합의까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중국이 지금의 합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행하고 미국이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따라 2차 합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내용. 표 = 주간한국

관세 ‘패’ 빨리 보여줬지만…

미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단기간에 트럼프가 요구하는 500억 달러의 농산품을 수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데버라 엘름스 아시아 무역센터 이사는 “500억 달러는 미친 규모(crazy amount)”라며 중국 내 급격한 미 농산품 수입량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크 졸리 CCB 인터내셔널 증권 글로벌 전략가도 1차 합의를 두고 “현실보다는 정치 상황에 관한 것”이라며 “중국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는 양을 수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규모는 86억 달러 수준이었다. 농산물 수입이 가장 많았던 2012년에도 260억 달러에 그쳤다.

중국이 정확한 액수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약속한 대로 살 수 없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2단계 협상 진전에 따라 추가적인 대중 관세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민주당과 대중강경파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협상 카드인 관세를 쉽게 내줬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전가림 교수는 “협상 초기에 관세 부과를 유예하거나 감면했기에 다음 합의안을 도출할 때 관세 카드가 제한적이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외교관 출신의 중국 전문가는 “그럼에도 1단계 합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다면 차기 협상에서 중국이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갈등 봉합 수준에 그쳐

중국도 이번 합의안은 양국 간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6개 부서의 차관이 합동 기자회견으로 1차 합의문을 밝혔다. 장관급이 13차례나 협의한 것과는 격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대중외교관 출신의 전문가는 “2차 합의가 이뤄져야 구체적으로 명문화되거나 법제화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 내부에서도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분위기”라며 “지적재산권이라든지 기업들의 기술이전 요구나 보안 문제 등은 관련 제도를 바꾸거나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문제기에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2차 협상이 양국의 진검승부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2차 합의가 중요해진 만큼 미국은 최대한 협상 국면을 활용하고자 한다. 전 교수는 “미국이 2차 협상에서 투자, 환율 문제 등 금융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법제화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의 의도대로 중국을 끌고 가려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말하는 빅딜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관세를 완전히 철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美, ‘금융’ 카드로 옥죌까

미국은 지속적으로 중국에 금융 부문을 꼬집으며 압박하고 있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도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등 중국에 강력한 ‘금융 카드’를 내고 있다. 금융 관련 조항에 중국이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에 이번 합의문이 도출됐을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중외교관 출신의 전문가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관세보다 더 강력한 것이 금융 카드”라며 “금융시장 개방이나 환율 조작 금지 등 1차 합의를 훨씬 웃도는 구체적인 금융 조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공격을 국내 보조금이나 감세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방어해왔다. 전 교수는 “중국이 환율을 조정하면서 관세 공격을 막아내려 한다면 미국에게 금융 시장 개방이라는 꼬투리를 내주게 되는 격”이라며 “중국으로선 2차 협상이 더 난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3월에 있을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와 홍콩 사태도 변수다. 중국은 양회에서 경제분야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홍콩 수출액도 미국의 행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선 2차 협상을 위한 ‘무역전쟁 수’가 꽤 남아 있는 셈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