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산수유.

3월, 남도에는 꽃향기가 아득하다. 계절이 바뀌고 강 바람이 가벼워지면 꽃은 은밀하고 농후해진다. 겨우내 얼었던 섬진강이 봄바람에 일렁이면 구례 일대에는 산수유의 정겨운 향연이 시작된다.

지리산 자락, 노란 꽃 돌담길

산동이란 지명은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 100가구가 넘는 화전민들이 마을을 이뤘으나 지금은 30여 가구만 산수유에 기대 살고 있다. 외지인들은 산수유 핀 좁은 골목을 꽃처럼 수줍게 거닐기도 하고 계곡을 따라 호젓한 봄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이곳에 이른 오전에 방문하면 노란 터널을 홀로 거니는 여유를 독차지할 수 있다. 마을 길, 어깨를 맞대고 산책할 만한 좁고 이끼 낀 고샅에는 ‘사랑의 돌담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도 붙어 있다. 산책을 끝낸 뒤 주민들이 파는 따뜻한 산수유차 한잔 마시면 몸은 봄날처럼 노곤해진다. 산수유는 봄날 세 번이나 몸을 열어 꽃이 핀다.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면 20여 개의 노란 꽃잎이 돋아나고 꽃잎이 다시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드러난다. 엄지 손톱만한 산수유 꽃은 한 그루에 수만 송이의 꽃이 빼곡하게 매달린다.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는 산수유 꽃은 ‘불변’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 연인들의 선물로도 인기가 높다.

섬진강.

추억의 5일 장터와 한옥 고택

산수유 열매는 한약재 재료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마을 주민들은 이 돈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내 산수유나무는 ‘대학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상위마을 언덕위 정자인 산유정에 오르면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위마을 아래 반곡마을 대평교는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곳으로 상동면 곳곳에 봄의 흔적이 묻어 있다. 봄날 구례 나들이때는 구례읍내 5일장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매 끝자리 3,8일에 서는 장터에는 은은한 약재와 산나물 향기가 코를 감싼다. 구례 5일장은 예부터 지리산에서 나는 약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산수유부터 당귀, 더덕, 칡, 생지황 등 약초들이 한 가득이다. 여기에 봄이 무르익으면 지리산 일대에서 나는 고사리, 쑥, 냉이 등이 할머니들의 담소와 함께 곁들여진다. 토지면의 운조루, 곡전재 등 옛 한옥들은 봄날 휴식을 선사한다. 조선 후기 양반 고택의 멋을 잘 살려낸 운조루와 높은 돌담과 대나무숲이 인상적인 곡전재는 하룻밤 묵어가기에도 좋다.

<여행 메모>

▲가는 길= 논산~천안 고속도로를 거쳐 익산, 남원 나들목을 경유한 뒤 19번 국도에 진입한다. 산동면 지리산 온천랜드를 지나면 상위마을이 나온다. 구례읍 터미널에서 상위마을행 버스가 다닌다. ▲음식=섬진강 간전교 지나 동방천 앞 다슬기 전문점들은 토종 된장국과 다슬기 수제비가 별미다. 산동면에서는 ‘백제회관’의 산채정식이 먹을 만하다. ▲기타정보=지리산 자락의 화엄사는 백제 성왕때 창건된 1500년 세월의 고찰이다. 경내에는 국보 4점, 보물 5점 등의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화엄사를 거쳐 노고단까지 산행 코스도 인기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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