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용의 해양책략… ⑮ ‘위기를 기회로’ 네덜란드 빔 코크 총리의 바세나르 책략
기사입력 2020-03-31 10:24:12
북해 유전 횡재이후 ‘노동없는 복지’에 빠져… ‘노사 대타협’으로 물류·해운항만 최고 경쟁력
  • 네덜란드.
세계사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세기별로 이름을 달리했다. 16세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의한 대항해 시대였고, 이 두 나라에 의한 <토르데시조약>에 의해 세계 해상패권은 양분되었다. 해상패권의 주목적은 신항로 개척, 향신료 및 식민지 확보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제1세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해양패권시대다. 중계무역으로 세계 해상무역의 절반 이상을 독점했다. 중계무역을 가능케 한 힘은 해운업과 조선업이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인 동인도회사의 운영을 통해 향신료와 커피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동남아는 물론 미주대륙의 맨해튼과 뉴욕을 식민지로 두었다. 네덜란드는 제2세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영국이 제1세대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2세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네덜란드를 누르고, 자본주의 경제와 삼각무역으로 해상패권을 장악하였다. 영국은 제3세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20세기는 19세기 말부터 해양력을 키운 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제패한 미국의 해양패권 시대였다. 미국은 제4세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의 정치경제적 개혁은 인류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네덜란드는 긴축정책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을 확보했고, 1950년대 말에는 실업구제법, 노인연금법 등의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임금억제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을 일으켰다. 결국 임금억제정책이 철폐됐는데, 이때부터 임금은 물가상승률과 연계하여 오르게 됐다. 이러한 ‘물가와 임금 연동제’는 훗날 ‘네덜란드 병’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네덜란드는 1957년 예상치 않게 북쪽 해역에서 천연가스 유전개발에 성공했는데, 이 유전은 세계 3대 규모에 해당한다. 천연자원 하나 없이 협소한 국토에서 해상무역에만 의존해 나라살림을 꾸려야 했던 네덜란드에게는 로또복권 당첨 같은 행운이었다.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고 했던가. 북해 유전자원 개발에 따른 갑작스러운 외환증가는 제조업의 후퇴를 불러왔다. 이른바 ‘네덜란드 병’ 얘기다. 1960년대까지 연 5% 이상의 고도성장을 계속해오던 네덜란드 경제는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던 1972년을 정점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장기간 유지해 왔던 임금 안정 기조가 와해되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와함께 환율 하락이 동반되면서 경제 전반에 암운이 짙어졌다. 당시 네덜란드는 가스 수출 대금을 이용한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는 나라였다. 어느새 ‘노동 없는 복지’ 가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에 걸쳐 노사 간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다 불법 파업과 공장 폐쇄로 이어지는 일이 빈발했다. 임금도 올랐고, 임금 수준에 연동된 사회보장 지출이 계속 팽창하면서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제도는 유지 불능 수준에 이르게 됐다. 와중에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세계석유 위기는 네덜란드 경제를 급격히 무너뜨렸다. 네덜란드인들의 장점은 분열돼 있다가도 위기에 직면하면 단합기조로 신속히 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인들은 가장 어려운 때가 일이 잘 되어 갈 때이고, 위기의 때가 기회의 때라고 말하기도 한다. 1980년대 초는 ‘자원의 저주’ 때문에 물가^임금이 급등하고 제조업이 무너지는 ‘네덜란드 병’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청년실업률은 30%를 웃돌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입법을 통해 임금동결을 추진하기도 했다. 1982년 네덜란드 노동조합 총연맹위원장인 빌럼 빔 코크는 다른 길을 택했다. 대타협을 통한 위기 극복의 길이었다. 그는 바세나르에 있는 경영자연합회 회장 집을 전격 방문했다. 두 사람은 거기서 며칠 동안의 마라톤협상 끝에 “노조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경영계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린다”는 걸 골자로 한 노사 대타협에 전격 합의했다. 정부는 노사 대타협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인하했고, 재정 지원을 확대했다. 이것이 대타협을 통한 국가위기 극복의 모범사례인 <바세나르 협약>이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특정 당을 절대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연정 없이 내각을 구성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첫 출발을 이끌었던 루버스 내각(1982~94년 총리 재임)은 연립내각이었으며, 노^사^정 타협의 세계적인 모범이라 불리는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냈다. 그 뒤를 이은 빔 코크 내각(총리 재임기간 1994~2002년) 역시 전혀 색깔이 다른 여러 정당들이 연합하여 구성된 이른바 ‘자주색 연정’이었다. 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 경제와 사회의 대전환점이었다. 성장률이 올라갔고, 실업률이 하락했으며 노사협력은 증진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대에 들어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자 1993년 ‘새로운 노선 협약’, 1996년 ‘유연안정성 협약’을 체결했다. 노사가 합의한 일련의 협약은 임금인상 자제, 해고 통지기간 단축 및 절차 간소화, 실업보험 급여 삭감 및 지급기간 단축 등 노동계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도 담고 있었다. 빔 코크 전 총리는 노사정 타협을 통해 위기 극복의 전범을 만든 위대한 인물이었다. 2018년 타계했는데, 한때 우리나라 새만금 명예자문관을 맡기도 했었다. 그는 노조지도자 출신으로 총리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네덜란드 병을 치유하고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룬 주역이었다.

  • 빔 코크 네덜란드 전 총리.
최대 업적은 일자리 위기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빔 코크 총리는 바세나르 협약 당시 노동계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이 아니고는 ‘네덜란드 병’을 치유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고 확신했으며, 총리가 된 후에도 이 기조를 지켜나갔다. 위기 속에서 잉태된 타협과 합의의 정신을 받들어 정부는 세금을 낮춰 기업 부담을 덜어 주면서 생산과 고용 확대를 유도했다. 이로써 수출 경쟁력은 회복됐고, 일자리가 늘었으며, 이는 재정안정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빔 코크 총리는 좌파인 노동당 당수였으나, 직전 정권의 정책기조를 거의 그대로 이어갔다. 즉 사회복지 지출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비과세지역 지정, 지식경제 전환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과감히 수용해 발전시켰다. 빔 코크 총리가 네덜란드 경제 기적 비결에 관해 내놓은 주요 어록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세금을 낮추고, 기업은 고용을 늘리고, 노조는 일자리 재분배에 합의했다.” “오랜 화합의 리더십으로 복지^성장 두 토끼를 잡았다.” “이상적 복지는 없지만 합리적 복지는 있다.” “지금 위기에 빠진 나라들은 수십 년 개혁을 미뤄 온 시간 낭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며,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수록 사회^정치적 악영향이 심각해진다.” “가장 조화롭고 성공한 사회란 정부, 민간부문, 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사회 등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준비가 된 사회다.” 빔 코크 내각은 노사협력을 통해 네덜란드 경제의 심장인 물류 및 해운항만 분야 개혁을 성공시켰다. 네덜란드는 배송품질 가격, 통관의 용이성 등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세계물류성과지수’에서 2015년 2위, 2016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하다(세계은행 평가). 항만, 공항, 철도의 연계가 원활하고, 자동화 프로세스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다른 항만이 출항하는데 평균 12시간이 소요된다면, 로테르담 항은 2시간에 불과하다. ‘글로벌 공급사슬망 SCM’의 우수성으로 인해 전 세계 1000여 물류기업이 네덜란드에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네덜란드 전체 인구의 12%가 물류관련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유럽으로 유입되는 물동량의 약 40%가 네덜란드를 통과한다. 네덜란드의 물류산업은 2014년 한 해 동안 직접적인 부가가치창출 550억 유로, 정규직원 고용 81만 명, 1258억 유로의 생산가치효과를 유발했다. 네덜란드가 지난 반세기 동안 물류강국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종합물류기지에 있다. 라인 강 삼각주를 따라 발달한 로테르담 항에는 3개의 대규모 유통단지가 있다. 유통단지란 일종의 종합물류센터를 가리키는데, 컨테이너 터미널과 대규모 배송시설을 연결해 유럽 여러 지역까지 한 번에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게 특징이다. 유통단지에서는 통관업무가 간소화되며, 상품의 저장 및 환적, 라벨링, 시험검사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 물류비 절감과 함께 다양한 고객수요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 로테르담 항은 4억 명의 소비자에게 연결되고 있다.

네덜란드와 우리나라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유사점으로는 ①협소한 국토에 높은 인구 밀도 ②부존자원 부족 ③우수한 인적자원 보유 ④주변 강대국들과 인접해 주권 상실 경험 ⑤지속적인 안보상의 위험 존재(네덜란드는 자연재해 위협) ⑥높은 대외의존도 ⑦우수한 물류인프라 등이다. 네덜란드의 비교우위 요소는 ①높은 외국어 구사 능력 ②안정된 노사관계 ③사회전반의 협동조합체제 ④도시^농촌 간의 격차 없는 균형 발전 ⑤육상으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되는 광대한 배후지 보유 ⑥단일화된 EU 역내시장 보유 ⑦실용적 사고방식 등이다. 네덜란드 개혁의 성공요인과 시사점은 한국이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다. 첫째, 1983년 이후 네덜란드 개혁의 성공은 ‘합의의 경제’라고 불리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의 간척과정에서 서로 협동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던 역사 속에서 체득한 국민성일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일치단결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역사는 네덜란드 이외의 나라들에게도 많았지만, 네덜란드의 ‘합의의 경제’ 전통은 보수성과 현실성, 진취성과 개방성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합의경제의 중심에는 노동인력의 긍정적이고 탄력적 태도와 높은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노사협력이 바탕을 이룬다. <바세나르 협약>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눈앞의 이익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사회복지정책의 골격을 바꾸지 않으면서 경제상황을 호전시킬 합리적인 방법을 담았다. 한국도 지난 1998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바세나르협약>모델을 수용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2007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2018년 ‘경제사회 노동위원회’로 개칭)’를 설립했지만,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 내지는 못했다. 합의를 통한 발전이라는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성장과 일자리 위기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빔 코크와 같은 노동운동 지도자가 보여줬듯이 위기 극복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담대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둘째, 네덜란드의 공용어는 네덜란드어이지만 국민의 80%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고 있는 나라 중 세계 제일의 수준이다. 국민의 85% 이상이 5개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고 있다.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다. 국민의 30% 정도가 독어를, 20% 정도가 불어를 이해 및 구사할 수 있다. 이렇듯 뛰어난 외국어 능력, 변화에 능동적인 자세는 과거 무역업으로 세계 바다를 누볐던 조상들의 상인정신 DNA 덕분일 수 있으며, 네덜란드 경제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어 왔다. 셋째, 개방적인 국민성 덕분에 대외지향적인 경제구조를 추진하는데 있어 별다른 내부 거부감과 반발이 없다. 현재 네덜란드의 외국인투자규모,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자치하고 있는 비중은 서구선진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상장된 외국 기업수는 런던에 이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유럽 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임금보다는 고용을 중시하는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무리 없이 추진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공기업 민영화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넷째, 정부의 일관성 있고 과감한 정책시행도 개혁성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바뀌어도 올바른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이른바 ‘좋은 나라 명제’를 네덜란드는 직접 실현해왔다. <바세나르> 협약 당시 노동자 측 대표로 나섰던 빔 코크는 루버스 3차 내각의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루버스 정부에 이어 노동당 연립내각의 총리로 경제개혁을 이어 나갔다. 정권교체가 빈번하고, 각기 성격이 다른 정당들이 내각구성에 참여했지만 장기적 정책으로 결정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정치적 보복을 동반하고, 한 정권의 집권기간 중에도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번복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부럽기 짝이 없는 문화다. 다섯째, 네덜란드는 부가가치 물류를 실현할 수 있는 연관 산업과 IT융합기술 제공에 있어 탁월하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을 갖고 있으며, 외부로부터 부단히 배우고 혁신해 가는 국민정신이 지속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강한 나라 만들기, 노사협력에 의한 일자리 만들기,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 건설, 새만금사업의 혁신적 추진, 관세자유무역지대, 글로벌 SCM전략을 통한 외자유치 등을 국가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국가지도층과 산업계의 해양 경영전략을 끊임없이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한다. 출발은 좌파정당에서 했지만, 다양한 정당의 인재들로 구성된 자주색 연정 내각을 만들어 국난을 극복한 성공 사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빔 코크와 같은 국가 지도자와 나라를 구한 바세나르 책략의 한국판 출현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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