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폰 쓰니까 삼성팬... 노스캐롤라이나 사니까 NC팬”

ESPN의 KBO 생중계 화면. TV캡처

세계에서 야구하는 ‘유이한 나라’.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대부분의 프로스포츠가 중단된 가운데, 프로야구로는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KBO리그가 막을 올렸다.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는 ‘볼거리’가 생겨 반가울 따름이다. 특히 야구가 국민스포츠나 다름없는 미국과 일본에서의 관심은 매우 크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NPB) 모두 개막이 기약 없이 연기돼 볼 거리가 없어진 팬들은 자연스레 시즌 개막에 돌입한 한국야구에 눈을 돌려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된 KBO리그, ‘작정하고’ 준비한 美 중계사

지난 4일(한국시간) KBO리그는 미국의 ESPN, 일본의 SPOZONE과 중계권 계약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한국프로야구가 미국과 일본에 생중계되기 시작한 것. 특히 ESPN은 그야말로 작정하고 KBO리그 중계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ESPN은 지난 4월말 KBO리그 중계권을 공짜로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지만, 중계권을 획득한 이후 KBO리그를 소개하는 기사와 콘텐츠들을 자체 제작해 소개하면서 미국 내 한국야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ESPN 홈페이지에는 연일 KBO리그를 소개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KBO리그의 팀 소개와 역사, 리그 방식은 물론, 매년 메이저리그 구단들을 상대로 했던 파워랭킹과 시즌 예측을 KBO리그에 대입해 소개하기도 했다. ESPN은 아예 한국 야구 섹션을 만들어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소개하는 등 KBO리그를 향해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5일 개막전부터 시작한 ESPN의 생중계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메이저리그 중계진을 섭외해 해설에 깊이를 더하고, 경기 전 다양한 인포그래픽을 통해 리그의 역사와 방식 등 KBO리그를 소개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또한 NC에서 뛰었던 에릭 테임즈를 특별 섭외해 KBO리그 소개에 깊이를 더했고, 두산에서 활약했던 린드블럼을 일일 해설진으로 포함시키는 등 많은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팬이 만든 합성 ‘짤방’. 노스캐롤라이나 팬은 자신의 지역 약자와 같다며 NC 팬을 자처했다. 트위터 캡처

“나는 노스캐롤라이나 사니까 NC팬” 미국 야구팬들 신났다

ESPN의 중계는 ‘성공적’이었다. 미국 동부 기준으로 한국과 11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새벽 1시에 시작한 경기였지만, 야구에 목말라 있던 미국 야구팬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시간 동안 트위터나 각종 커뮤니티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트위터에서 현재 많이 소비되고 있는 트렌드를 알려주는 ‘트위터 트렌드’에 KBO리그가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소위 ‘움짤’이라 불리는 짤막한 경기 영상이 각종 커뮤니티에 계속 올라오면서 미국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팬들의 반응이다. 이날 NC와 삼성의 중계를 지켜 본 야구팬들은 응원팀을 골라 각자의 응원팀을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밌다. 삼성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니 삼성팬을 하겠다는 팬들도 있었고, 자신이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고 있으니 해당 지역의 이니셜 약자인 ‘NC’를 쓰고 있는 NC다이노스팬을 하겠다는 팬들도 생겨났다. 특히 이날 승리 팀 NC를 향한 노스캐롤라이나 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팬들은 NC 엠블럼과 유니폼을 가지고 각종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문화 콘텐츠 놀이)’을 만들어내면서 본격적인 NC 응원에 나섰다. 더 나아가 탬파베이 레이스의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팀이자 노스캐롤라이나에 연고를 둔 더럼 불스 구단은 공식 SNS에 “우리는 이제부터 KBO리그 NC를 응원한다. 여기는 NC다이노스 팬 계정”이라고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야구 문화로 자리잡은 ‘빠던’, 미국 야구팬들도 열광

또한, KBO 생중계를 통해 한국에서 ‘빠던(배트 던지기)’이라 불리는 ‘배트플립(Bat Flip)’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들의 배트플립 행위를 상대 팀을 자극하는 무례한 행위로 간주, 이후 벤치클리어링이나 빈볼 등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에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배트플립은 다르다. 일종의 화려한 세리머니로 간주하기 때문에 해당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미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에 한국 타자들의 배트플립을 지켜 본 미국팬들은 열광했다. 이날 개막전에서 NC 모창민이 솔로 홈런을 치면서 배트를 집어 던지자 중계를 하던 ESPN의 캐스터는 “올해 첫 배트플립이 나왔다”라며 환호했고, ESPN의 저명한 메이저리그 기자 제프 파산도 모창민의 배트플립 영상을 SNS에 올리며 한국야구의 ‘빠던’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팬들은 이전 KBO리그에서 나온 배트플립 영상을 가져와 돌려보기 시작했다. 반응도 재미있다. 홈런이 아니라 뜬공과 파울 타구에도 배트를 던지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오히려 메이저리그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야구 문화가 미국에 전파, 하나의 ‘K-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미국 팬들의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ESPN이 매일 KBO리그 한 경기를 미국 전역에 TV 생중계하기 때문. ESPN은 정규시즌 144경기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도 생중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겨울까지 ‘K-야구’가 야구에 목말라 있는 미국 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할 예정이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