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개성공단 내 폭파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지원센터 청사(아래 사진)가 부서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하면서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뒤 나선 본격적인 행동으로 이로써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 해 9월 개성에 문을 연 연락사무소는 개소 1년 9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다.

대북 전단 살포 등을 이유로 한국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해 온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 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건물 폭파를 예고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남북관계는 2년 전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대감을 자아냈던 전례 없는 화해 무드는 온데 간데 없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북한 총참모부는 17일 입장문에서 △금강산 관광지구o개성공업지구 연대급 부대o화력구분대 배치 △비무장지대(DMZ) 민경초소(감시초소oGP) 재진출 △최전방지역 1호 전투근무체계 격상 △대남삐라(전단) 살포 보장 등 네 가지 군사행동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비무장지대 일대에 비어 있던 일부민경초소에 북한군 경계병을 투입하고, 개성공단에 북한군 선발대로 보이는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돼 남북간 군사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18일 “북한군의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라며 “현재까지는 직접적인 (군사행동) 활동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런 조치를 예고한 데 대해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와대, 김여정 향한 맹공…대응전략 바꿔 강공 선회

청와대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향해 맹공을 퍼부으며 기존 절제된 대응 전략에서 강공으로 선회했다. 북측의 비난 수위가 더는 지켜볼 수 없는 수준이라는 판단과 ‘불바다’ 운운하며 군사 도발을 시사한 데 대해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 그동안 정부의 대북 대응에 대해 저자세라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에 대해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며 “이는 그간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의 이러한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라고 전했다. 또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라”고도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관련된 메시지 중 가장 강한 어조라는 평가다.

이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며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측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는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악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17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전 국회의원 등과 가진 오찬 자리에 “현재의 상황이 안타깝다”며 “국민이 보면서 실망했을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유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 부처도 북한에 대해 일제히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북한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지구 군사지역화 계획에 대해 “이날 북측의 발표는 (남북관계를)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의 과거로 되돌리는 행태이며, 우리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며 “북측은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방부도 북한이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한 데 대해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동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은 “우리 군은 현 안보 상황 관련, 북한군의 동향을 24시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며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안정적 상황관리로 군사적 위기 고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갑작스러운 도발 이유는?

북한이 한국 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에 이어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한국과 미국을 향한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로 보인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뒤 남북 및 북o미 관계가 경색되면서 장기간의 고강도 대북제재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 정권이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동시에 압박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해 정면돌파 노선을 고수하며 핵 전쟁 억제력 강화 등 엄포를 놓았음에도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무력 도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도발 시기를 지금으로 잡은 것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을 최대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조를 흔들겠다는 의도도 명확하다.

김 부부장은 담화문에서 “남조선 당국자의 연설은 (대북 전단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이 있어야 한다”며 일단 대북 전단 문제를 이슈화했다. 이어 “남북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썩 받아 물고 백악관을 섬겨 바쳐왔다”며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독자적 남북협력’에 대해서도 “제재의 틀 안에서라는 전제 조건을 덧붙였다”며 “친미사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평했다. 이는 미국과의 공조에서 나와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이에 한미 워킹그룹의 운영을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워킹그룹은 한o미가 비핵화와 대북 제재, 남북협력 등 사안을 놓고 수시로 이견을 조율하는 협의체로 2018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처럼 운영됐다는 비판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북한은 표면적인 공세의 이유는 대북 전단이었지만 실상은 한미 공조의 틈을 노리며 청와대를 움직여보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는 북한 국내 정세를 타파해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부터 강화된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에 내부적인 위기감이 계속되자 화살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는 것.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협상에 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민심을 돌리기 위해 외부에 책임을 돌리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18일 열린 ‘2020년 한반도 신경제포럼’에서 북한의 도발 원인에 대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불만은 부차적 요인일 수 있다”라며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북한 내부 사정과 그간의 북미o남북 대화 국면에서 실망감이 누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지금껏 유지해왔던 북한과 포용적 대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북한 도발 이슈를 대응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적 이슈일 뿐 아니라 정부가 올해 초부터 남북 철도o도로 연결, 북한 개별관광 등 독자적 남북 협력 사업미국을 추진해 온 만큼 경제적 이슈와도 맞닿아 있기에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자는 접근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을 방문 중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8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등 미 행정부 인사들을 만나 최근 한반도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대북 대응 방안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미국과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와 정세 인식을 공유하고 향후 대북 공조 방안과 대응책을 집중 조율했다.

이에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이 본부장은 정세가 긴박해지고 있다고 호소하며 대북 경제 제재 완화를 납득하도록 (미국을) 설득할 전망이다”라고 보도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