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기업규제3법의 쟁점과 문제점 긴급 좌담회'에서 한국외대 최완진 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

21대국회 반기업 법안 어느새 200건 넘어
반기업 정서에 편승 기류...기업경쟁력 악화->경제위기 심화 우려


21대 국회에 제출된 반기업 법안이 200건을 넘었다. 4·13 총선 이후 경제계는 이 같은 상황을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지나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은 “현재 국회에는 기업 경영과 투자 활동을 제약하고 부담을 늘리는 법안이 200건 넘게 제출돼 있다”며 “사회안전망·근로자보호제도가 계속 강화된 반면 노동유연성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산업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경총은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법안 10건을 추려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총이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아무리 반기를 들어도 반기업 법안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며 “내년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 의원들이 표심 잡기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논의 없는 기업 규제 법안
가장 먼저 총대를 멘 것은 대한상의였다. 지난 9월 대한상의는 주요 입법에 대한 ‘상의리포트’를 국회에 제출했다. 대한상의는 “기업부담법안의 입법화에 대해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해당 법안들이 기업경영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거론하며 합리적 대안 모색을 주문했다.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노조법 개정안’ 등이 기업 규제의 대표적 법안이다. 대한상의는 법안의 문제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며 국회와의 활발한 소통을 호소했다. 정영석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21대 국회에서만큼은 기업관련규제를 신설·강화시 기업현장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합리적 대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입법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규제 강화 입법과 관련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윤 의원은 지난 9월 자신의 SNS를 통해 “실증적 근거에 기반해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기업환경에 대한 단단한 이해 속에서 고집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신중하게 논의한다는 원칙 위에서 여야와 기업, 정부가 열린 마음으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0월에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나섰다. 한경연은 “기업부담 법안이 봇물”이라며 “기업들의 고용창출 능력 제고를 위해 노동시장 규제 완화 법안을 적극 검토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올해 5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발의 법안을 조사한 결과, 고용·노동 법안(264개) 중 기업 규제 강화 법안은 192개로 72.7%에 달했다. 한경연은 규제 법안을 △노사 간 불균형 심화 우려 법안, △일자리 감소 우려 법안, △규제 만능주의 법안 등으로 분류했다.

재계는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하고 있다. 지난 6일 대한상의와 경총은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각각 법무부에 제출했다. 대한상의는 "도입하려는 제도가 우리 법체계와 맞는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층연구가 먼저 이뤄진 후 제도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기업 정서 팽배
이날 경총은 "반기업 정서가 강한 국내 환경에서 기업은 방어적 경영활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노동자는 선, 기업가는 악으로 바라보는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다”며 “내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노동계 표심잡기에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기업 정서가 나타난 대표적 법안으로 봤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과 정부 책임자에 대해 징역형을 가하고 기업 대표에 대한 안전교육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7일 경총은 “산재사고는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모든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전가하는 건 문제”라며 “무분별한 과잉규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에도 경총 등 30개 경제단체와 업종별협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그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제재규정을 포함한 과잉규제"라며 "산업안전보건문제 해결을 위한 예방적 대책보다는 사후처벌 위주로 접근해 정책적 효과성도 낮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아직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에 부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8일 “대통령의 결단이 좌고우면하는 집권여당 민주당의 입장을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촉구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 팀장은 “2017년 대선 때 당시 문재인 후보는 양대노총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며 “민주당으로서는 정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어떤 법안 있나 봤더니
문 정부는 ‘공정경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았다.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기업규제 3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악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상법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업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는다. 정부는 대주주가 원하는 사람이 감사위원을 할 수 있는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감시·감독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개정안에 감사위원 1명을 따로 뽑는 내용을 담았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지분율이 3%를 넘더라도 의결권은 3%까지만 행사하도록 했다.

재계는 3%룰에 반발하고 있다. 회사 책임 경영과 관련한 핵심 의사결정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외 투기자본 진입이 용이해 기업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준은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20%인 회사'로 바뀌었다. 또 계열사가 50% 초과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감사위원은 감사 역할도 하지만 이사로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과 사업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며 “외부 투기세력을 대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면 기술유출 위험성이 커지고 기업경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자산이 5조원이 넘는 비지주 금융그룹을 감독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으로, 교보·미래에셋·삼성·한화·현대차·DB 등 6개 금융그룹이 대상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금융당국 규제 대상을 개별 금융계열사뿐만 아니라 계열사가 속한 금융그룹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은 `이중규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경총이 제시한 기업규제 법안은 △노동조합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퇴직급여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 등이 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전례 없는 코로나19 위기에서도 노동시장 경쟁력을 해치고 고용창출의 원천인 기업을 옥죄는 규제강화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황”이라며 “특히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등과 같이 노사 불균형을 심화시키거나, 한 달 퇴직급여 등 기업의 부담을 더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기업 경영...코로나와 무관
17일 경총은 국회를 직접 찾아가 기업 규제 법안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었다. 경총은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총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진 갈등적 노사관계, 고착화된 고임금·저생산성 구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등으로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며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못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까지 더해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규제 법안이 통과돼 과도한 수준의 규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된다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법안 심의 과정에서 기업의 어려움과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환노위에 접수된 의안은 20일 오후 2시 기준으로 총 497건에 이른다. 이중 계류된 의안은 총 462건이다. 무려 93%의 의안이 계류된 상태다. 최 교수는 “반기업 정서에 편승하는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있다”며 “반기업 정서를 악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기업 규제 법안이 상당수 발의되는 건 국회 초반에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