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연령 인구 감소세로 '정년 연장' 필요성...청년실업 맞물려 논란 예상

정부가 ‘65세 정년’ 카드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년 연장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인구 구조 개선 대응 TF팀의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년 연장 등에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60세 정년’이 시행된 지 2년 5개월 만에 재연장 논의가 나온 것이다. 생산 가능 인구는 줄고 노인인구가 늘어 재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 실업이 심각하고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세대 갈등을 유발하고 기업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인구구조로 볼 때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따른 정년 연장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며 “인구구조 개선 대응 태스크포스(TF) 산하 10개 작업반 중 한 곳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년 연장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연간 80만 명, 진입하는 사람이 4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그 같은 효과는 완화될 것이고 청년층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생산연령인구 50년 뒤 ‘반토막’ 정년 연장이 화두가 된 배경은 빠른 속도로 늘어난 고령 세대가 양극화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 동향 조사(소득부문)에 따르면 최하위층인 1분위 가구주의 70%가 노인(평균 63.3세)으로 조사됐다. 또, 퇴직연령(60세)와 공적연금 수급 연령(65세)이 달라 5년 동안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도 양극화를 가중시킬 수 있는 요소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장년층을 좀 더 일자리에 머물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지난 2월 대법원도 육체노동자의 취업가능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올렸다.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2029년까지 향후 10년간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연평균 48만명씩 늘어날 전망이다. 전년 대비 노인 인구 증가 폭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매년 31만명 수준이었지만 내년에 44만명으로 올라서고 계속 40만명 선을 이어가다 2024년에는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인 복지를 비롯해 각종 지원 정책에 투입되는 돈도 늘 수밖에 없다. 정부의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합한 ‘노인 부문 의무지출’은 연평균 14.6%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년’ 중위 추계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부양 부담은 해마다 늘어난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인 ‘노년부양비’는 올해 20.4에서 2030년 38.2, 2050년 77.6, 2065년 100.4까지 늘어난다.

정년 연장 시, 고령자 빈곤 감소 효과 커 만약 정년을 65세로 늦춘다면 이러한 고령인구 부양 부담이 커지는 속도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특별추계’ 중 중위 추계에 따르면 올해 20.4명을 기록한 노년부양비는 2030년 38.2명 2050년 77.6명 2065년 100.4명 2067년 102.4명까지 늘어난다. 65세로 정년이 연장됐다고 가정해 생산인구를 15~69세, 고령인구를 70세 이상으로 적용하면 2028년까지 올해와 같은 노년부양비 수치(20.5명)가 유지된다. 당장 올해 정년을 연장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고령인구 부양 부담을 9년 늦춰 짊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년 일자리, 기업 인건비 가중 해법 찾아야 필요성은 크지만 적용 시점이 문제다. 정부는 일본 사례를 참고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반대로 만성적인 구인난을 겪고 있는 일본 사례를 지금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4월 청년 실업률이 11.5%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로 치솟은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 여력을 없애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조기 고갈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년이 연장돼 돈 버는 기간이 늘었으니 연금 받는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노동시장이 경직된 한국의 특성상 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정년 연장의 시장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고용 형태를 유연화하고,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능력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구조를 개편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라며 “우선 1차 TF에서는 정년 60세가 도래하는 노인들에 대해 재계약을 유도하도록 기업에 ‘고용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책 연구 기관에서도 정년 연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고령 세대의 노동 참여는 경제성장률 하락을 완충하는 동시에 고령 인구에 대한 부양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모든 영향을 배제하고 고용에 미치는 영향만으로 봤을 때는 고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이 작성한 '은퇴세대 증가, 학령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 실태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도 “우리나라도 베이비부머의 고령화가 현실화됨에 따라 고령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기본적으로는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 마련과 함께 수요·공급 면에서 체계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노인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대책을 담은 고령자 고용 확대 방안을 이달 말 내놓을 계획이다. 60살 이상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고령 노동자 임금 가운데 일부를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부는 노인 재고용 대책과 함께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급격한 정년 연장은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구직자와 노동시장 전반에 충격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번 정부 입장 표명은 사회적 논의에 물꼬를 트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더 높다.

이종혜 기자

일본 기업 99.8%, 65세까지 고용, 독일은 정년 연장 시, 근로시간 ↓ 정년 연장 문제에 우리보다 먼저 마주했던 일본·독일과 같은 해외 국가들의 공통점은 정년 연장에 앞서 연금 체계를 개편했다. 또, 기업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조금 제도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도를 갖춘 후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를 했다.

기업 지배구조와 조직문화 등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은 이미 1994년에 정년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했고, 2004년에는 고연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65세까지 계속고용을 의무화했다.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고쳐 모든 기업은 종업원이 희망하면 65세까지 정년 연장이나 정년 폐지, 계속 고용(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일본의 31인 이상 기업 15만 6989곳 중 65세까지 고용 확보를 위한 조치를 한 기업은 99.8%(15만 6607곳)에 달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정년을 만 70세까지 추가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고용 시 파트타임 고용도 가능하고 임금이나 처우도 조정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원래 다니던 기업에서 재고용하는 선택지 외에도 파견근로자 형식으로 민간에 재취업하도록 돕고 있다. 이를 위해 실버인재센터를 두고 지역공동체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령 인력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조성금 제도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연금 개혁을 실행함으로써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일본의 공적연금 지급 개시 기간은 2001년부터 점차 단계적으로 상향돼 2013년에는 65세부터 연금이 지급됐다. 보수와 비례해 지급되는 연금 부분은 2013년부터 지급 개시 기간이 3년마다 1년씩 단계적으로 상향돼 2025년에는 65세부터 지급된다.

독일의 기업들은 고령자 단시간 근로제를 시행해, 점진적으로 퇴직하게 한다. 이 제도는 노사 합의에 따라 근로자들이 55세 이후 일정 시점부터 근로시간을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그로 인해 소득과 연금 가입 경력 상에 발생하는 불이익은 사용주가 일정 부분 보전해주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해당 사용주가 기존 근로시간의 50% 수준인 단시간근로 임금의 20%를 추가로 지급하고, 동시에 고령자 단시간근로 임금의 80% 기준으로 추가적인 연금보험료를 납부하게 한다. 그리고 사용주가 고령 근로자의 단시간근로로 인한 일자리 공백을 실업자, 직업교육 이수자 또는 직업연수생(중소기업에만 해당) 등으로 채용한 경우에는 점진적 퇴직자에게 주어지는 지원금(보충소득과 보충연금보험료) 전액을 최고 6년까지 고용보험제도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영국과 미국 기업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고령 인력을 선호하는 특징을 보인다. 미국은 1986년 정년을 없앴고, 영국도 2011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년을 폐지했다. 영미권 기업들이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이유로 '고령 인력이 다년간 직무 과정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이나 전문적인 지식·기술'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이들 나라는 고용시장이 경직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기업이 이유를 불문하고 사전 통지 없이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영국도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고령자 고용이 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해외의 노인 일자리 프로그램은 직업훈련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직업 교육과 구직 알선을 제공하고 있으며, 독일도 50세 이상에 대해 기술 훈련과 인턴십 기회를 주고 있다. 캐나다는 55세 이상 실업자에게 이력서 작성부터 인터뷰 기술까지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