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가업 상속 개편안 마련에 논란 더 커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 협의에서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을 확정했지만, 재계와 산업계에선 미흡한 안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가업상속공제 완화를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공제요건이 과거에 비해 완화됐고, 가업상속이 경영성과나 투자·고용 유지의 근거가 될 순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3, 4세 상속이 이어지며 가업 승계를 위해 지분을 매도하는 오너가도 생겨나고 있다.

최고세율 인하,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확대 요구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요청했다. 경총은 입장문을 통해 “기업들이 요구한 내용에 크게 미흡해 기업승계를 추진하려는 기업들이 규제완화 효과 자체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최대주주 할증도 있어 사실상 세계 최상위권이고 공제요건이 경쟁국에 비해 까다로워 많은 기업인이 기업승계를 포기하고 매각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한 우리의 경영제도에선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업이 세대를 거쳐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해 나갈 수 있도록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의 적용 대상과 사전·사후관리 요건 대폭 완화 등을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달 28일 “‘부의 세습’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비판 수위는 더 높다. “유감스럽다”로 운을 뗀 중견련은 “(매출 3000억원 이하 기업에 한정된) 공제 대상 확대를 전적으로 외면한 것은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하는 맹목적 반(反)기업 정서에 흔들린 결과”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 기업의 고용인원, 업종, 자산규모 유지 기간을 줄인 이번 개편안이 “개편방안 중 사후관리기간과 업종유지의무 완화는 중소기업이 요구하던 숙원 중 하나로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연부연납 특례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대를 이어 기업을 지속하려는 중소기업인들의 승계 부담을 일부 해소해줄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고용과 자산유지 의무와 관련해 중소업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중기중앙회는 “고용의 경우 독일 사례처럼 급여총액을 유지하는 방식을 도입해 중소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여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유지 의무의 경우도 처분자산을 전부 가업에 재투자 할 경우, 예외인정이 필요하며 피상속인 최대주주 지분요건 또한 비상장법인 40% 및 상장법인 20% 이하로 낮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상속·증여세 부담↓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은 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국내 현행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유산 총액이 과세대상이며 상속세율은 10~50%의 5단계 누진세율 구조를 취한다. 1억원 이하는 10%, 5억원 이하는 20%, 10억원 이하는 30%, 30억원 이하는 40%, 30억원을 초과하면 50%의 세율을 각각 부과하는 식이다. 그러나 주식으로 상속받을 경우 최대주주 할증 과세로 직계비속의 기업승계 시 상속세 부담이 가중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배주식의 비중 및 기업규모에 따라 상속세 최고세율이 65%까지 높아진다.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할증을 적용하지 않은 명목 최고세율(50%)로만 따져도 OECD 평균 최고세율(26.6%)의 두배 수준이며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과세 기준(과세 표준)은 ‘30억원 이상’이다. 기업가치 1000억원 규모 기업을 물려받으면 각종 공제를 제외하더라도 600억원 안팎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55%로 2위에 올랐고 프랑스가 45%, 미국과 영국이 40%로 뒤를 잇는다. 독일은 30%에 불과하다.

국제적으로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율을 인하하는 추세다. 재산을 물려준 피상속인이 이미 소득세 등 세금을 내고 모은 재산에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중과세 논란’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OECD 35개국 중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호주, 캐나다, 이스라엘, 뉴질랜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스웨덴, 체코, 오스트리아, 멕시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13개국이다. 이 가운데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를 제외한 11개국은 상속세를 시행했다가 폐지한 국가다.

상속세를 운영하는 다른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세율이 낮거나 공제혜택을 주는 등 기업승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경총이 지난달 28일 연 ‘상속세 개선 토론회’에서 김용민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고용유지 조건을 직원 수가 아니라 독일처럼 총급여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고 자동화로 산업 환경이 바뀌는데 7년이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고용 유지를 정규직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따지지만 독일은 ‘근로자 총 급여액’으로 판단한다. 일본은 상시 고용인원 80%를 상속 후 5년간만 유지하면 상속세 납부를 유예해준다.

반면 외국과 상속세율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라는 주장이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다른 국가에 비해 높지만 이는 명목세율을 단순 비교한 것이다. 각종 공제로 인해 실효세율은 달라진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가업상속공제 개편안 브리핑에서 “한국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19.5%로 명목세율에 비해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