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물갈이. 박근혜 사면.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변수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탈당 선언을 한 홍문종 의원은 대한애국당 공동대표로 추대됐다. 연합

자유한국당의 친박 4선 홍문종 의원이 탈당했다. 그는 18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더는 한국당 역할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태극기 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정통 지지층 결집과 선명한 우파 정책으로 보수정권 창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정치음모와 촛불 쿠데타 등으로 날조된 정황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며 “황교안 대표에게 왜곡에 맞서 탄핵백서 제작을 제안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했다.

홍 의원은 “탈당에 앞서 박 전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지금 영어의 몸이기 때문에 여러 부담을 줄 수 있어 공개적으로 뭐라 말하기 힘들다”며 “박 전 대통령과 접촉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과 중요 정치 사안에 대해 상의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홍 의원은 “(가칭)우리 공화당 이름으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며 “당 대표로 내년 총선에서 전국선거를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홍 의원은 황교안 대표를 향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 얘기를 했을 때 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오지 못했나. 청와대에서 연평해전 유족들을 모아놓고 김정은 사진을 돌릴 때 황 대표는 왜 돌진하지 못했나”고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일단 한국당내에서는 홍 의원의 탈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팔이’, ‘보수분열’, ‘공천 꼼수’ 같은 비판이 줄을 이었다. 홍 의원의 탈당은 공천을 받기 어려운 개인적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에 연쇄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홍 의원이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보수연합을 포장했다는 지적이 대세다. 당내 친박 성향이 강해 추가 탈당 대상으로 거론됐던 다른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탈당설을 부인하고 한국당 초·재선 의원 혁신모임인 통합·전진 모임에서도 홍 의원에게 큰 유감을 표했다. 가령, 강성 친박으로 꼽히는 김진태 의원조차 “홍문종 의원 선배가 탈당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중히 생각해 주길 바란다”며 “태극기 세력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과 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탈당설이 나돌던 정태옥 의원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한국당 초·재선 모임은 17일 성명서를 통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우파 통합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 탈당도 모자라 오는 9월 최대 50명의 의원들이 한국당을 집단 탈당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내뱉으며 당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홍 의원을 비판했다. 또 “국민 대다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독재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국민들께서는 우리 자유 한국당에 대해 분열하지 말고, 똘똘 뭉쳐 우파의 중심에서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실정을 바로잡고 정권을 심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라 통합을 해야 한다”며 “많은 애국 시민들과 우파 세력이 한국당의 행보에 대해 많은 우려를 나타내고 계신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그 분들도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공통된 목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관심은 ‘친박 신당’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현실화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지난 2월 초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황교안 대표를 향해 비판적 발언을 쏟아낸 적이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허리 통증 때문에 교도소에 의자와 책상을 넣어줄 것을 요청했는데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치를 안 해줬다”고 말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그러나 친박 내부에서조차 “보수 분열은 총선 필패”라는 인식이 강하고 구심력이 없어 현재로선 태극기 세력을 주축으로 한 ‘박근혜 신당’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박근혜 신당’의 몇 가지 변수

그러나 몇 가지 변수는 있다. 우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혁신 물갈이 폭이 커질수록, 이탈 원심력이 작용할 수도 있다. 공천 룰을 논의하는 신상진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6일 “현역 의원들이 (탄핵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물갈이 폭이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친박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공언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과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자유 한국당 전신) 공천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다. 2012년에 총선 땐 박근혜 비상대책위 위원장이 현역 의원 20%를 임의적으로 물갈이를 했다. 2016년 총선에선 박근혜 대통령은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을 앞세워 친박 공천을 주도했다.

현재 자유한국당 의석은 총 111석이다. 그중 초선은 44명(39.6%), 재선은 30명(27.0%)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박 전대통령이 공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은 서울 9명, 인천 6명, 경기 14명 등 총 29명(26.1%)이다. TK 지역은 대구 8명, 경북 12명, PK 지역은 부산 11명, 울산 3명, 경남 12명이다. 영남 지역은 총 46명(41.4%)이 차지하고 있다. 친박 성향 초,재선과 TK 지역 출신 의원들이 공천 상황에 따라 탈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규모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둘째, 박근혜 변수다. 특히, 박 전 대통령 사면 여부가 주목된다. 사면이 돼 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 관여한다면 파급력이 작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 ’연말 사면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과 보수를 분열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박 대통령을 사면시킬 것이라는 추측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유포되고 있다. 물론 여권 일각에서는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한다는 것은 촛불 민심에 역행하는 것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이며, “진보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것도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선거제도 개혁 여부다. 만약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관철될 경우, 친박 신당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득표력을 보인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수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 신당이 ‘박근혜 후광’에 힘입어 ‘TK 지역과 태극기 부대의 지지를 받는다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해 ’TK 자민련‘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홍문종 의원과 조원진 의원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어게인 친박연대’를 꿈꾸고 있다. 친박연대의 출발은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룬 이명박 대통령 세력(친이)이 서청원, 홍사덕, 김무성 의원 등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친박 성향의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비롯됐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세력들이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친박 연대를 창당했다.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는 단어를 당명으로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친박연대는 지역구에서 6명(경기 1, 부산 1, 대구 3, 경북 1), 정당 득표에서 13.2%로 비례대표 8석을 얻어 총 14명의 당선자를 냈다. 정당 득표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6.8%)을 제치고 제3당으로 우뚝 섰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전국적으로 12명의 당선자를 냈다.

‘친박연대’ 총 14명의 당선자

당시 대구,경북 지역 정당 득표에서 한나라당은 50.4%(972,843표)를 얻은 반면, 친박 연대는 27.6% (532,210표)를 얻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도 한나라당은 44.1%(1,196,414표)를 얻은 반면, 친박 연대는 20.1%(545,911표)를 획득했다. 물론 친박 신당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2008년 친박연대와 같이 영남지역에서 높은 정당 득표력을 획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0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정치 개혁 특위의 자유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3당 원내대표 간 국회정상화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정개특위를 가동하는 것은 제1야당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도움이 안 된다” 비판했다. 이어 “국회법상 특별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 활동기간 종료 15일 전까지 업무보고한 국회의원에게 제출한다. 이미 15일이 지났는데 지금 법적으로 맞으냐”고 따졌다.

여하튼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 여부는 한국 정당정치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기존의 양당 독과점 체제에서 다당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여기에 ’친박 신당이 ’틈새 시장‘을 노리고 접근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선 홍문종 의원 탈당이후 한국당과 개혁보수를 지향해온 바른미래당 내 바른 정당계간 연대 및 합당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황교안 대표 입장에서는 바른미래당, 우리 공화당 등 보수 세력이 분열해 있는 만큼 내년 총선을 이기기 위해선 보수 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황 대표가 홍문종 탈당을 계기로 오히려 당내 친박 소멸을 통해 낡은 보수 이미지를 청산하고, 당을 혁신하면 개혁 보수 세력과 함께 보수 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바른 정당으로 탈당했다 복귀한 한국당 김용태 의원이 “(홍문종 의원 탈당이) 오히려 잘됐다. 보수통합의 순풍이 불 것”이라며 바른정당계와의 보수 통합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한국당이 개혁 보수로의 변화하면 함께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도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20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바른미래당과 대한애국당 중 통합의 우선순위를 꼽는다면 어디를 1순위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애국당보다) 바른미래당과 먼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바른미래당이 인적 숫자도 더 많다”며 “애국당과는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같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왼쪽)과 하태경 의원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이미 정통성을 잃은 한국당이 어떻게 감히 바른미래당과 통합을 이야기하느냐”고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바른 미래당 수석대변인도 “정당의 통합은 숫자가 아닌 이념과 가치가 맞아야 가능한 것”이라며 “바른미래당과 한국당은 차이를 넘어 다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 바른미래당은 여러 차례 독자적인 제3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가 국회 정상화와 탈당, 보수 통합을 둘러싸고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부터 1박 2일간의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북한 방문은 2005년 10월 후진타오 주석 이후 14년 만이다. 중국 중앙(CC)TV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시 주석과 평양 정상회담에서 “조선은 인내심을 유지할 것”이라며 “유관국이 조선 측과 마주 보고 서로의 관심사를 해결해 (한)반도 문제가 해결돼 성과가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며 “계속 중국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 진전을 거두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시 주석은 “조선이 보여준 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비핵화 추동을 위한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과거 1년 반도 문제의 대화 해결을 위한 기회가 나타났고 국제사회는 조미(북미) 대화가 성과가 있기를 기대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중국은 계속해서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조선이 자신의 합리적 안보 및 발전에 관한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 말했다.

시 주석의 이런 발언은 중국이 북한의 우방국으로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여하튼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에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시사점이 크다. 표면적으론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간 협상의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 전략은 미국을 견제하면서 북핵 문제를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로 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다시 말해, G20 정상회의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간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미^중 무역 전쟁 담판을 위한 수단으로 북핵을 활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선 김정은 위원장과 먼저 만나 협상을 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방북한 것 같다.

김정은, 시 주석 통해 새로운 비핵화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시 주석을 미국과의 중재역으로 세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김정은이 시 주석을 통해 새로운 비핵화 협상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플로리다주에서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그는 재선 도전 출정식에서 “미국 경제는 세계의 부러움을 받고 있으며 아메리칸 드림이 돌아왔다”며 경제적 성과를 내세웠다.

그런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선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외교적 성과도 필요할지 모르다. 북핵 문제 해결은 트럼프에게 가장 큰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다. 태 전 공사는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위해 외교 성과를 서둘러 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새 제안을 받아들여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북한을 국빈방문한 데 대해 “한반도 문제 해결 구도가 남북미 3자에서 남북미중 4자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여하튼 G20 정상회의 직후 방한이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북핵과 관련해 어떤 보따리를 풀지가 최대 관심사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줄곧 유지했던 '선(先) 제재 완화 후(後) 비핵화‘에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로 무게 중심을 움직이려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유럽 3국을 방문했다. 핀란드에서는 ‘혁신’, 스웨덴에서는 ‘포용’, 노르웨이에서는 ‘평화’를 강조했다.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와 평화 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진정으로 노력하면 국제사회는 즉각적으로 응답할 것”이라며 “제재 해제는 물론이고 북한의 안전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작년 유럽을 방문 했을 때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대북 완화 대신 북한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강조한 것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문 대통령은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며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최근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실무 협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전에 두 정상간 ’톱다운(Top-down) 방식‘의 정치적 담판을 주장했던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핵 협상과 관련?“나는 서두를 것이 없다”며 “제재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북한 김정은과 대화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도 실무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약속이 있어야 정상회담을 여는 이른바 '보텀업(bottom-up·상향식)' 방식으로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도 지난 19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동아시아재단과 개최한 전략대화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모두 핵 협상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의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미국은 미북 정상이 지난해 6·12 미북 정상회담 때 채택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모든 합의사항에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기조연설에서 “최고지도자들이 협상의 세부적인 측면까지 직접 정교하게 다루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한미 북핵 수석대표 간 실무협상 등의 방식으로 톱다운 방식을 보완하는 노력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접근 방식과 회담 형식의 변화 요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주도하고 선호했던 비핵화 방식이 더 이상 먹혀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그 만큼 더 좁아진다는 것으로 의미한다.

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와 달리 삼척항에 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 KBS 제공

‘북한 목선 사건’ 미묘한 파장

이런 와중에 지난 15일 삼척항에 들어온 북한 목선 사건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 목선이 군·경의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까지 들어와 정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스웨덴에서 '남북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고 연설한 직후에 발생했다. 애초 합참은 “군의 경계작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사건 발생 닷새만에 정경두 국방장관이 직접 사과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군이 경계망이 뚫린 부분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국방부가 북한 정권 눈치를 보고 '귀순'을 '표류'라고 속인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4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기 전, 정경두 장관에게 “(북한 목선이) 북쪽에서 우리 쪽까지 오는 과정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경계하지 못한 점, 또 이쪽(남한)으로 (목선이) 도착한 이후 상황에 대해 국민께 제대로 알리지 못한 부분 등 두 가지 대응에 대해 문제점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국방이 존재하느냐는 의문까지 들고 현 정부의 ’안보 붕괴 사태”라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을 속이는 군대라는 비판을 초래한 이번 북한 목선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리얼미터, tbs의 6월 3주차(17~19일)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보다 2.7%포인트 내린 46.8%를 기록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2% 포인트 오른 47.4%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에 대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부정이 긍정을 앞선 것은 지난 4월 4주차 이후 8주 만이다. 통상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면 외교 효과로 긍정 평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부정 평가가 증가한 것은 참 드문 경우다. 외교 효과보다는 복잡한 국내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하튼 정부^여당도 야당도 모두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다.

정치권은 정쟁을 접고 정치의 존재 이유를 보여할 때다. 청와대와 여당은 독선에서 벗어나 야당이 국회에 복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을 주고 야당도 출구 전략을 써야 할 때다. 야당은 더 이상 국회 복귀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더불어 한국 정치는 ‘누가 누가 못하나’에서 ‘누가 누가 잘하나’로 바꿔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종된 정치가 복원된다. 이것은 여야 모두를 위한 윈-원 전략이 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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