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보이지 않는 여야의 대치 국면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선거법 개정안 이후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형사소송법개정안 및 검찰청법 개정안 등 6건의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특히 공수처법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대검찰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임시회 쪼개기 전략으로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구상이다. 27일 오후 6시 현재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표결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 협의체는 23일 공수처법 수정안을최종 합의했다. 대검찰청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 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한국당은 “우리나라의 모든 사법기관과 수사기관들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의 시녀기관이 된다”며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과잉수사, 부실수사 우려
반대 측은 공수처법 24조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해당 조항은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원안에 없던 것으로, 4+1 협의체가 막판 협상에서 추가한 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공수처 이외의 수사기관은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민주당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수처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혐의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건이 암장될 우려가 있다며 해당 조항을 추가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공수처장으로 하여금 통보받은 범죄에 대해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하도록 한 것은 상호통보를 통해 범죄 수사에 공백이나 혼선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대검찰청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대검은 26일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가 전국 단위 검경의 고위공직자 수사 컨트롤 타워나 상급기관이 아님에도 검경의 수사착수단계부터 그 내용을 통보 받는 것은 정부 조직 체계 원리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압수수색 전 단계인 수사 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 보고하면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받아 자체 수사를 개시해 ‘과잉수사’를 하거나, 검경의 엄정 수사에 맡겨 놓고 싶지 않은 사건을 가로채 ‘뭉개기 부실 수사’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수사 중립성 훼손, 사기 저하
수사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검은 “검찰은 법무부, 청와대에도 수사 착수를 사전 보고하지 않는다”며 “장시간 내사를 거쳐 수사 착수하면서 공수처에 통보하게 되면 대통령과 여당이 공수처장 내지 검사 임명에 관여하는 현 법안 구조에서 수사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수사 기밀을 누설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사기 저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수사 개시 진행 도중에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갈 경우 검찰 내부의 의욕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될 경우 수사에 대한 책임감이 낮아질 수도 있다. 또한 중간에 사건을 이첩받은 공수처 역시 상황이 밝지만은 않다. 사건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사 진행에 차질이 예상된다.

공수처 검사·수사관 자격요건 완화
공수처법 제8조도 논란거리다. 이에 따르면 공수처 소속 검사의 자격 요건은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한 자로서 재판, 수사 또는 수사처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원안은 '변호사 자격이 있고 10년 이상 재판, 수사, 조사업무의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을 요구했다. 실무경험이 부족하더라도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으면 공수처 소속 검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공수처 수사관 자격 요건도 완화됐다. 원안은 ▲5년 이상 변호사 실무경력 또는 ▲조사, 수사, 재판업무 5년 이상 종사였으나 수정안은 ▲변호사 자격 보유 또는 ▲7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조사, 수사 업무 종사 또는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 업무의 실무 5년 이상 수행으로 바꿨다.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 업무’라는 대목이 주관적이고 애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검찰 내부에서 경력을 시작하고, 업무능력을 배양한 수사관들이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경력요건을 완화해 경력이 길지 않은 자들도 수사처 내의 수사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젊은 검사들을,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대거 등용시켜서 마음대로 해나가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다”며 “불과 5년의 경력으로 어느 정도 해 나갈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기소심의위원회와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기소심의위원회는 공수처의 기소 및 불기소 판단을 심의 또는 자문·권고하는 기구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에 담겼던 내용으로, 공수처의 무리한 기소를 견제하기 위해 마련됐다. 4+1 협의체는 막판 협상 과정에서 이를 백지화했다. 공수처장은 추천위 위원 7명 중 6명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택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한국당은 “처음에 논의되었던 ‘처장 임명을 할 때 국회 동의를 받는다’, ‘심의위원회를 둔다’ 이런 것들이 아예 사라져버렸다”며 “권력비리수사를 전혀 할 수 없게 됐다”고 비난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