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 PGA 투어에서 그린을 놓치고도 파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스크램블링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임성재. 사진은 2019년 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모습. CJ그룹 제공

골프를 배운지 1~2년쯤 되었을 때 골퍼들은 벙커에만 들어가면 맥을 못 춘다. 드라이브 샷을 잘 날려 파온을 눈앞에 두고도 벙커에다 공을 집어넣는 바람에 파나 버디의 희망을 접는 것은 물론 더블보기나 트리플보기를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뒤따른다.

프로나 싱글들은 웬만하면 한 번에 벙커를 빠져나와 쉽게 파 세이브를 하거나 최악의 경우 보기로는 막는데, 벙커 공포에 빠진 골퍼들은 벙커에만 들어가면 두세 타를 까먹고 만다. 프로나 싱글 골퍼들이 벙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벙커에서 수없이 많은 미스샷을 경험한 결과다. 다른 샷에 비해 연습기회가 적은 벙커에서의 미스샷은 아마추어에겐 당연하다. 볼이 벙커에 들어가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골퍼는 없다. 수많은 미스 샷을 통해 벙커샷에 익숙해지면서 벙커 노이로제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지독히 벙커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한 골퍼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벙커샷 공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여름휴가를 호젓한 백사장이 있는 해안가로 떠났다. 가족들은 따로 놀게 하고 볼 30여개와 샌드웨지를 들고 하루 종일 해변 모래밭에서 벙커샷 연습을 했다.

사흘 연습을 하고 나니 벙커샷에 대한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고 스윙 크기나 세기로 거리를 조절하는 요령도 터득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벙커샷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를 기막히게 잘 하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파온을 못해도 어렵지 않게 볼을 홀에 붙여 컨시드를 받아내고 어프로치 버디를 하기도 한다.

동반자들은 그에게 어프로치의 비결을 묻기 마련이다. 그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그린 주변에서 뒤땅이나 토핑으로 주머니를 너무 털렸거든요. 살아남기 위해서 달밤에 공원 잔디밭에서 연습 좀 했지요.” 드라이브 샷 OB로 고생을 해봐야 OB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스윙을 터득할 수 있다. 처음부터 드라이브 샷이 잘 맞고 OB도 나지 않았다면 드라이브 샷의 달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연습할 필요성이 덜했을 것이고 자연히 드라이브 샷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나 일가견을 세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숱한 드라이브 샷 미스가 드라이브 달인의 바탕이 된 것이다.

늑대 무리는 자연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냥조직이기는 하지만 그 실패율은 대략 90%에 달한다고 한다. 열 번 사냥을 시도해서 겨우 한 번 성공하는 셈이다. 늑대들은 언제나 굶주려 있기 때문에 사냥은 늑대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늑대들은 배고픔 때문에 미친 듯이 살상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처럼 자괴감에 빠지는 일도 없다. 늑대들은 오로지 바로 눈앞에 놓인 과제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들은 사냥에 실패하면서 계속 사냥기술을 연마해 나간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사냥에 활용함으로써 마침내 성공적인 사냥법을 터득한다.

인간들이 말하는 실패개념은 늑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늑대에게 실패한 사냥은 단지 기술을 재정비하고 전의를 가다듬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일 뿐이다. 그들은 실수를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인간들이 실패라 부르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늑대들은 지혜로 변화시킨다.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도 사냥 성공확률이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90%의 실패한 사냥에서 10%의 성공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수없이 넘어지고 나서야 걷는 법을 배우듯이, 골퍼들도 수많은 종류의 미스 샷을 한 뒤에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골프에서 미스 샷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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