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Aktis Capital 최고투자책임자 칼럼] 봄에 닥친 금융시장 핵겨울
  • 코로나 사태로 중국발 공급체인 붕괴… 오일·금융시장 쇼크로 순식간에 확산
  • | 2020-03-17 09:52:06
  • 13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딜러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국내 증시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코스닥시장에 이어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10시 43분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하면서 이후 20분간 유가증권시장의 매매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합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에서 유행시킨 말이다. 상대후보가 뭐라 떠들어도 정치의 종착지와 대통령이 되는 길은 결국 먹고 사는 일에 달렸다는 함의를 거칠게 담았다. 온갖 영욕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연임했다. 최근 세계 유수의 상업은행인 HSBC가 3만5000 명의 감원을 발표하였고, 캐세이 패시픽 항공사는 전체 직원의 1/3을 무급휴직 처리를 하였다. 이번 주 유가는 하루에 31%의 대폭락을 보이며 미국 텍사스지역의 세일가스 업체의 집단도산의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10년 이래 최대의 진폭을 보인 미국 증시는 월스트리트의 2020년 신입직원 채용이 0이 아니냐는 2008년 화이트컬러 실업대란을 떠오르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미국 채권 수익률이 1개월 만기 T-Bill부터 30년물 T-Bond까지 모두 1%이하로 배열되는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시대도 연출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불황의 바로미터이다. 1987년 블랙먼데이가 자본주의에 대한 경종(警鐘)이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공황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조종(弔鐘)이라면, 2020년 금융쇼크는 버블붕괴의 전초전일지 모른다. 금번 금융쇼크의 심각성은 상하 변동성으로만 보면 나심 탈렙 교수가 2007년에 언급한 검은 백조(Black Swan) 수준을 넘어서 검은 대붕(大鵬)의 폭을 보인다. 코로나가 촉발하였다는둥, 사우디와 러시아의 원유패권의 충돌이라는둥 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바닥을 보인 리더십이 원인이라는둥 각론은 여럿이지만, 무엇보다도 글로벌 자산시장이 버블을 넘어서 “버블+버블+버블”의 구간에 너무 오래있었다는 것이 근본원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함께 온 공급절벽과 수요절벽

코로나19로 인해 아이폰 공장이 먼저 멎었다. 중국산 부품공급이 지역봉쇄, 휴업 등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전면 정지됨에 따라, 아이폰을 포함한 애플사의 완제품들 출시가 모두 정지되었다는 말이다. 이 같은 중국발 공급체인(supply chain)의 붕괴는 장기화되는 경우 핸드폰,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 제약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공급발 경색, 이른바 공급절벽이 필연적 귀결이 된다. 가령 헤드라이트가 달리지 않은 자동차가 출시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공급절벽은 물류절벽과 고용절벽을 연쇄적으로 촉발시킨다. 한편, 주초 사우디가 촉발한 유가전쟁은 ‘OPEC+’의 감산합의에 몽니를 피운 러시아에 대한 응징이라는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더 큰 우려는 수요절벽을 예측한 아랍상인들의 선제적 재고 방출이라는 경제적 행위에 더 큰 방점이 찍힌다.

다시 말해, 작금의 불황이 단기적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급격한 원유선주문의 감소를 이들이 감지한 바, 재고물량을 출혈덤핑한 것이라는 의심이 복선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덤핑으로 하루 무려 장중 -31%에 달하는 유가 대폭락장을 연출하였다고 봄이 더 합리적이다. 특히, 생산이 완료된 현물원유는 타국으로의 선적이 즉시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보관비가 막대하기에, 줄지어 항구에 대기중인 원유수송선(VLCC)이 종적을 감췄다면 막대한 보관비용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특성에 따라 원유시장은 근월물까지는 선물값(futures)이 현물(spot)보다 다소의 상승곡선을 가지고 있으나, 그 너머는 선물값이 현물값보다 우하향하는 이른바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곡선양태를 보인다. 그렇다면 작금의 사태는 공급절벽과 수요절벽이 동시에 도래한 흔치 않은 경우다. 공급과 수요 어느 한쪽만 문제가 돼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는데, 지금 우리는 공급경색과 수요경색을 동시에 목도하고 있다. 위안이라면, 공급체인 붕괴와 역오일쇼크 모두 촉발된 직접적 원인이 예기치 않은 코로나19의 발흥을 근원으로 하기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공급과 수요가 상승작용을 받아 두배로 빠르게 정상화될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취약국가, 취약기업, 취약계층에게는 고행의 길이 죽음의 계곡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짜뉴스라던 우한의 뱅크런

지인들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진원지 중국 우한에 있는 한커우은행(韓口銀行)에는 최소 며칠간 대규모 예금인출사태(Bank Run)가 있었다. 우한시에는 한국과 유사하게 생긴 문자의 한커우(漢口)라는 기차역(漢口驛)이 있고, 지근거리에는 漢江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으며, 위성도시를 포함하여 서울-경기도 수준의 약 2000만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코로나가 터지자 지역은행인 한커우은행(漢口銀行) 본점엔 손님들이 가득찼다고 한다. 예금전액인출의 경우 반나절 이상이 걸렸음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예금인출양식마저 재고가 떨어져 발빠른 몇몇이 은행예금인출서 빈양식 수백장을 빼돌려 장당 5위안(약 800원)에 팔다가 공안에 적발되었다는 웃지 못할 소문도 흉흉했었다. 공포가 일으킨 금융시장붕괴 조짐이 코로나라는 주범 이외에 중국 정부의 지역봉쇄 단행을 불러온 종범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독재적-극단적이라던 지역봉쇄가 없었더라면 중국의 한커우은행(韓口銀行)은 큰 곤욕을 치르며 SNS상에 회자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뱅크런의 관점으로만 한정하면 지역봉쇄는 극단적이나 매우 효과적이다. 물리적으로 몰려드는 예금주들이 은행으로 달려옴을 막는 직접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장강(長江)과 동정호(洞庭湖)를 칭하여 강호(江湖)라 불렸던 이 지역은 신출귀몰한 군상들이 대를 이어왔기에 사스(SARS) 사태의 학습효과를 더해 지역봉쇄라는 공산당식 조치가 필연이었다. 이 같은 공산당식 긴급조치가 최근 이탈리아 6000만 인구의 전지역 봉쇄조치(lockout)­ 식당, 바, 종교행사, 스포츠 행사 및 집회 등의 어느 형태의 회합도 전면금지의 스승이 된 것은 아이러니이다.

美 연준에 한방 맞은 韓國銀行

한국에 코로나가 한창이던 2월 27일, 한국은행(Bank of Korea)은 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했다. 반면에 미국 FOMC 위원들은 회기가 아닌 3월 3일에 긴급화상회의와 의결을 통해 0.5%의 큰폭의 금리인하를 전격단행했다. 당시 미국엔 코로나의 직접적 영향이 발현되기 이전의 시기였음에도, FOMC 위원들은 사태가 불러올 경기하강요인을 우려하여 특별의결방법까지 동원하며 선제적 결정을 단행했다. 혹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관리능력 부재를 예견하여, 연준이 통화정책에서 미리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라는 쓴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중국의 지역봉쇄가 비상한 조치였던 것처럼, 미국 FRB 긴급 금리인하 역시 매우 비상한 조치에 해당한다. 이로서 미국은 정책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2%대가 되었다. 디플레이션이 깊어진 것이다. 이 같은 정책금리의 추세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0.25% 수준으로 유지했던 초저금리정책으로의 회귀를 전조한다. 당장, 오는 3월 18일 FOMC 정례회의에서 추가 0.5% 금리인하가 단행될 확률이 80%를 웃돈다는 월가의 애널리스트의 보고가 지천에 나돈다.

한편, 한국의 현 정부 초기에 한국은행은 한-미 양국간 기준금리차가 역마진이면 심각한 자본유출이 될 것을 우려하여 금리인상의 역주행을 선택하였다. 태환통화인 미 달러화와 불태환통화인 한국의 원화를 동등선상으로 가정한 오류에 입각하여 내려진 판단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만일 이 같은 이론이 맞다면, 미국의 기준금리가 추가로 0.5% 또는 그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제 하에, 한국은 만병통치약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작금을 1.25%로 동결하기만 한다면 한국의 상대적 고금리를 노린 외자유입이 마구 들어올 것이니, 금융시장 쇼크도 순식간에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다.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증시 및 실물투자에서 외국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고 KOSPI 지수는 장중 1700선을 하향 돌파하였다. 비관론자들은 2008년 바닥인 900선과의 중간지점인 1400~1500선은 가시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국에서 미국 연준(FRB)의 비상한 결단성을 한국의 중앙은행도 반면교사로 삼기를 기원한다. 비상한 리더십이 하루아침에 출현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한국의 원화가 미 달러화와 동등한 국제성을 지니고 있다는 순진한 가정은 하루빨리 파기하는 것이 죽음의 계곡를 넘길 응급처방을 도출할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핵겨울이 문앞에 와 있고 증오라는 기생충이 덤벼드는 판국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다 계획이 있는가? 뾰족한 수가 없더라도 함석을 덧댄 낡은 빈지문이라도 끼워 폭풍우에 대비할 때이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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