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망 사건’ 대응에 비난·조롱 쏟아져…韓 G11·G12 가입에 일부 기득권 국가 잡음도

지난 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주영 기자] 백인 경찰 무릎에 목이 짓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 내 시위가 폭동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를 진정시켜야 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분열 조장의 핵으로 떠올라 골치다. 폭동으로 번진 시위대는 매장들을 급습해 물건을 강탈하는 등 온갖 피해를 낳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방장관 간 의견 충돌로 시위 진압에 대한 미 정부의 의견도 갈피를 못잡고 있다. 시위 규모는 점점 커져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의 하늘길을 차단한다는 의사를 표명해 양국 간 갈등이 항공업까지 이어지는 듯했지만, 중국이 미국 항공의 운항 재개를 승인하면서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지하벙커에 숨은 대통령의 품격

CNN방송을 비롯한 미 언론은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흑인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달 29일 밤 백악관 앞에 집결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지하벙커로 불리는 긴급상황실로 이동해 1시간 정도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폭스뉴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잠깐 갔고 (피신보다는) 점검을 위한 것이었다”며 “(지금까지 벙커에) 두세번 갔는데 모두 점검용이었다. 언젠가 (벙커가) 필요할 수도 있다. 낮에 가서 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오히려 재반박 보도가 이어지면서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일 전 비밀경호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WP는 또 사건 당일인 지난달 29일 저녁 시위대 중 일부가 백악관 근처 재무부 주변을 두른 바리케이트를 잠시 넘어갔으며, 이로 인한 경호 절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들이 지하벙커로 이송됐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적색경보가 발령되면 백악관에 아무도 드나들 수 없고 백악관 내 직원의 활동이 최소화되며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보안이 강화된다고 전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각 주가 시위 진압에 실패하면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경고하자 미국 국방장관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나섰다. CNN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3일 흑인 사망 항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군 투입을 반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엇박자를 냈다. 에스퍼 장관은 브리핑에서 “사법 집행에 현역 병력을 사용하는 선택은 최후의 수단이어야만 한다”며 “지금 우리는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 세계로 번지는 “나도 숨 쉴 수 없다”

흑인 사망 사건을 향한 시위는 이제 미국의 담장을 넘었다. 영국, 독일, 스위스 등에서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은 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지난달 31일 수천 명이 결집해 미국 시위대에 지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트래펄가 광장에 모인 이들은 미국 대사관까지 행진하며 “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구호를 외쳤고,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느냐?’는 현수막을 들었다. 런던 경찰청은 이와 관련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위반, 경찰 폭행 등의 혐의로 시위대 중 2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Stand Up To Racism)’과 다른 영국 단체들은 지난 3일 전국적인 행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미국 대사관 주변에 수백명이 모여 ‘플로이드에게 정의를’, ‘우리를 죽이지 말라’, ‘다음은 누구인가’, ‘경찰이 살해하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 등의 항의 포스터를 높이 들었다.

독일 프로축구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제이든 산초는 경기에서 첫 골을 성공한 후 유니폼 상의를 걷어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이라고 손으로 적은 문구를 내보였다. 이 행위로 산초는 경고를 받았지만, 같은 팀의 아치라프 하키미도 골을 기록한 후 유니폼을 걷어 똑같은 메시지를 보였다. 독일 일간 빌트는 일요판 헤드라인에 ‘살인 경찰이 미국에 불을 붙였다’는 제목과 함께 해고된 가해 경찰이 플로이드의 목을 짓누르던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스위스에서는 지난 1일 시위대 수백명이 취리히 도심에 모여 행진을 벌였다. 현지 신문 ‘타게스-안차이거’에 따르면 이들은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침묵은 폭력’ 등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시내 곳곳을 다녔다. 스위스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고 있지만, 경찰은 시위대 해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과거와 달리 흑인이 경찰에 살해당했을 때 비폭력 저항이 아닌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트위터에서 “미국이 홍콩 시위대를 미화한 것처럼 중국도 이번 시위를 지지해야 하는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묻고 싶다”고 적었다.

韓 G11 가입, 즉흥적 발언이었나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와 한국 가입 여부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전용기내 기자간담회에서 갑자기 공개한 사실을 토대로 즉흥적이고 회의적인 발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달 말 G7 회의 참석을 거절하자 반사적으로 확대 개편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방미가 성사될 경우 G7 옵서버로 가는 일시적인 성격이 아니라 G11, G12라는 새로운 국제체제의 정식 멤버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참가 자격을 둘러싼 논란은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제 세계의 외교질서가 트럼프 대통령 표현을 빌리면 낡은 체제인 G7에서 G11, G12로 전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우리가 세계 질서를 이끄는 리더국 중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며, G11, G12 정식 멤버가 될 경우 국격 상승과 국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초청을 받아 올해에 한해 옵서버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G11 또는 G12의 정식 멤버로 회의에 참석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미국 외에도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다른 G7 회원국이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호주, 브라질을 비롯한 우리나라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특히 아시아 대표를 자처하는 일본은 우리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과 인도까지 가세할 경우 일본의 발언권 약화를 우려하는 정부 내 곤혹감을 전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이 정식 회원국이 아닌 옵서버 자격일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가 불분명한 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의 구상이 혼자만의 공상일 뿐 현실성이 낮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주영 기자



이주영 기자 jy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