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과 지수의 이원화(decoupling)

싸늘한 정치-경제 현실과 달리, 갑자기 활황이 된 증권시장에 일반 투자자들은 역대급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투자자만 그런게 아니라 전세계가 그러하다. 전 세계 주가지수는 금융위기 역사상 가장 빠른 급락과 가장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 뉴욕 증권거래소(NYSE)를 예를 들면, 2000년 초반 닷컴 버블 당시 약 2년에 걸쳐 버블이 꺼지고, 다시 회복하는데 4년이 걸렸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공황 때는 1년 반 동안 버블이 꺼지고, 회복하는데 약 3년 가량 소요되었다. 금번 코로나 위기에는 폭락 2개월, 급등 2개월로 ‘어~’ 하는 순간에 거의 원위치로 와 버렸다.

괴질 위기, 경제위기에 더하여 고질적 흑백갈등과 홍콩사태 등 3중·4중 위기라는데 증권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세장(Bull Market) 초입까지 진격해 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는 계층간 비대칭성과 불평등성의 속살을 여실히 내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빈익빈(貧益貧)인 이들은 직장을 잃은 것은 물론 희생자들을 수습하느라 전대미문의 빈익빈(殯益殯) 사태마저 감수하고 있다. 돈 없는 동네는 시신을 안치할 묘지와 관마저 부족한 현실을 보고 아연실색해 있다. 반면에 부익부(富益富)인 이들은 잠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재빨리 부익부(富益復)로 회복하면서 더 큰 금고를 장만하여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비대칭성의 원인은 단연코 전세계 재정·통화당국의 상상을 초월하는 유동성 살포에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FRB”)의 자산추이를 살펴보면 이는 명확하다(참고: 그림1.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자산추이).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했다던 2008년 글로벌 금융공황 당시, 연준이 쏟아 부은 총알은 약 1조달러(한화 약 1240조원) 전후로 나타난 반면, 금번 코로나 위기에는 얼핏 봐도 그때보다 무려 3배가 넘는다. 거칠게 비유하면 2008년 금융공황 수준이 3개가 동시에 터져도 막을 만한 자원을 투하한 것이다. 2008년 당시 재정통화정책을 융단폭격이니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라고 하였던 바, 현재 투하되었거나 투하예정인 재정통화정책의 규모에 대해서는 뭐라 칭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다.

더욱이 이 같은 긴급 진화작전에 G7을 위시로 개발도상국 16개국이 동반 참전하였다. 국별 형편은 다르지만 GDP의 5~20%에 달하는 재정살포와 초저금리의 유동성 폭탄을 연일 퍼붓고 있으니, 가히 참전한 나라만 보면 금융세계대전으로 불러도 큰 과장이 아니다. 역내에서는 각국의 행정부와 중앙은행이 공모에 가까운 협조를 하고, 역외에서는 국가간 국제공조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의 귀결이 작금의 증시와 실물의 괴리를 불러일으킨 가장 큰 원인임은 자명하다.

‘U턴’ 역이민자를 ‘O턴‘시키는 홍콩보안법

캐나다 밴쿠버의 4월 주택거래량(전년 동기대비)이 무려 40%나 하락하여 약 28년 전인 1982년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영국의 5월 집값하락폭(전월 대비)은 1.7%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약 11년 만에 최대의 월간 하락폭을 보였다. 중국이 강행한 홍콩보안법에 대해 하루도 빼지 않고 비난하는 영국과 캐나다의 외교적 선택이 자국의 실물경제 위기와 상관관계가 없을 수 없다. 미·중의 신냉전국면에 영국과 캐나다는 미국과 척을 질 수 없는 운명이다. 외교적 립서비스로 중국을 비난하는 공력쯤이야 힘든 일도 아니다.

단기적으로 중국을 잃는 시나리오가 필연이라면 홍콩을 대체재로 삼는 것이 면피의 카드가 된다. 돈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문을 열어두자는 전략은 타이밍 포착이 중요하다. 홍콩인에게 1997년 이전 발급해준 준국적지위(BNO: British National Oversea)가 허용하고 있는 6개월 체류 조건을 무제한 체류로 바꾸겠다고 한 보리스 존슨 영국수상은, 며칠 뒤 이를 약 10배 확대하여 홍콩의 보안법 난민을 최대 300만 명까지 수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홍콩 인구가 750만명임을 감안하면 홍콩인의 반 가까이에게 이민의 통로가 열려 있다고 말함과 같다. 도발적이지만 국경을 넘는(Cross Border) 자본포획을 통해 자국의 구멍 난 재정을 메우겠다는 복합적 계산이다.

반면에 홍콩으로 U턴 역이민을 꿈꿨던 원주민들에게는 빨간 불이 켜졌다. 1997년 홍콩의 본토회귀 당시의 괴담들이 25년쯤 지난 오늘에도 유령처럼 피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주간의 자가격리라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고향답사를 하던 해외주재 홍콩 국적자들이 결국 O턴으로 눌러 있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돈을 종교로 숭상하는 홍콩인들에게 사업기반이 통째로 흔들린다면 고향에 대한 향수쯤은 더 참을 수 있다.

중국 본토는 홍콩 조차(租借) 당시 99년을 기다린 선조의 지혜를 너무 빨리 버렸다. 1국 2체제의 묘수로 50년을 기다리기로 해놓고, 25년 만에 속내를 드러낸 것은 무역 및 금융 중심지 홍콩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위약이다. 타국과도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뚫고자 고분분투하는 시진핑 정부입장에서는 자신의 앞마당인 홍콩에 덮어씌워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포장지가 치수 안 맞는 옷처럼 불편했음을 드러냈다.

어찌 되었건 홍콩인들이 가장 많이 역외에 주재하는 나라(영국·호주·캐나다)들은 갖가지 유인책(Pull)으로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반면에 홍콩보안법에 있던 홍콩인들도 내몰리는(Push)는 상황에 U턴 역이민을 꿈꿨던 이들의 ‘O턴 원위치’는 더 많아질 듯하다. 홍콩의 부동산 시장만 국한한다면 사스(SARS) 당시의 급반등 패턴이 기대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주식 거리두기와 신데렐라의 시간

코로나19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와 주식 거리두기가 병행되는 듯하다. 주식 거리두기는 시장을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눈에 보이는 실물은 회복이 요원한데, 자칫 지금 증시에 진입하였다가 상투잡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시장이 하락하면 오히려 안도를 느끼고, 시장이 상승하면 안전부절못한다. 어떤 투자자들은 이 같은 인지부조화의 상태에서 ‘모르면 손 빼라’는 격언에 따라 증시를 아예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일부 부자들도 그러하다. 글로벌 정치상황도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시장이라는 괴물은 유동성의 불확실성에 반응할 따름이지 정치적 불확실성에는 상당한 맷집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조정은 생각보다 나중에 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에 정부계정의 유동성 개입의 폭과 규모에 대한 독해가 어려워졌다는 점이 괴리를 부추킨다. 예를 들면, 최근 채권시장에 개입하는 미국 FRB의 방법은 이자율 캡(Yield Cap)이라는 파생상품을 통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와 같은 파생상품은 유동성 공급에 대한 폭과 깊이의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도구들이다. 가령, 미국 10년물 재무성채권의 10년물 수익률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1%를 Option의 행사가로 각 구간별로 이자율 Cap을 몇 억 달러 단위로 깔아둔다. 여기에 시장금리가 1% 이상으로 상승하면 FRB는 해당 이자율 Cap Option이 행사되어 채권을 매입하는 시나리오별 공개시장조작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 귀결은 시장금리를 1%를 넘지 않게 하고 유사시 유동성이 공급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시나리오에 따른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풋 옵션(Put Option) 매도 포지션’에 해당한다.


정책수단의 다변화를 살펴보면 FRB의 통화정책 내지 비통화정책은 분명 2008년에 비해 크게 진화하였다. 우선 파생상품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레버리지 효과로 큰 돈을 먼저 들이지 않고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FRB를 중심으로 다국적 중앙은행들과 맺은 통화스와프(Cross Currency Swap)도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미 달러화의 유동성을 우려한 몇몇 중앙은행은 통화스와프를 선제적으로 집행하여 달러화를 인출한 경우도 있으나, 아직 계약만 존재하고 미인출된 경우가 훨씬 많다. 미인출 규모만큼 FRB는 총알을 아꼈고 다국적 중앙은행은 통화스와프라는 보증서를 바탕으로 미국 국채매도를 중지할 수 있었던 바, 일거양득이다.

또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사전에 세워 그에 걸맞은 개입 방향과 수량을 지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상황발생시 허둥대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합의된 룰에 따라 즉각적인 개입이 일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앞서 (그림 1)에 나타나는 미화 7조 달러를 상회하는 연준의 자산에는 잡히지 않은 부외계약(off-balance contract)이 존재함이다. 그러하다면, 시장개입의 폭은 단순한 7조 달러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장부상 유동성 및 부외거래를 통한 그림자 유동성까지 동원되는 바이니 실물과 지표가 분리되는 현상(Decoupling)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유동성 파티 또한 자정이 되어 괘종이 12번의 종소리를 친다면 중단되어야 한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 한쪽을 잃더라도 환상공화국에서 현실공화국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되었건 금번에 지구상에 막대하게 풀린 유동성은 회수되어야 맞다. 희망하기를 10~20년의 긴 호흡을 두고 각국의 통화재정당국이 공조하여 조금씩 유동성을 회수하는 정책을 택하여 격동격변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일반 백성들의 외침은 하나다. 원래 있던 대로 놔 달라는 것이다. 가진 게 없거나 리더십이 없는 이들에게 가해진 빈익빈(殯益殯)의 형벌이 코로나 엑시트(Corona Exit)까지 마무리되어 하루 속히 면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리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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