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꿈꾸는 ‘귀화인’ 진지위

진지위.

한 우물만 파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찔끔 발만 담갔다가 답이 없다 싶으면 빼는 일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남자 프로배구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진지위(27·대한 항공)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홍콩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진지위는 2013년 뜻밖의 한국행을 제의받았다. 당시 홍콩 국가대표로 카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탁월한 블로킹 감각을 뽐내며 득점 1위에 오른 진지위는 김찬호 경희대 감독에게 한국행 권유를 받은 것.

진지위는 주변에 선례가 없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홍콩에는 프로배구 리그가 없다. 더 이상 홍콩에서 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진지위는 그토록 죽고 못 사는 배구를 더 오래 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한국 생활도 어느덧 8년째.

그 사이 ‘블로킹 괴물’로 대학리그를 평정한 후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특별 귀화 절차까지 모두 통과해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큼지막한 산들을 넘어 여기까지 온 ‘프로 2년차 신예’ 진지위의 코리안 드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릎 부상에 프로 높은 벽 실감한 코리안드림 첫해

진지위의 프로 첫해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팀내에서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되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 때부터 괴롭혔던 무릎 부상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렇게 2019-2020시즌을 5경기, 7세트 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진지위는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인데 부상에 발목 잡혀 출발부터 삐걱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진지위는 “대학 때부터 무릎이 안 좋았다. 프로무대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는데, 프로 첫해부터 몸이 안 좋아 제대로 훈련을 소화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진지위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그는 “지난해에는 센터에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부상까지 겹치다 보니 자신감이 없었다. 팀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시즌”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욕심을 부리고자 한다. 진지위는 “이번엔 다르다. 아직 신예라고 할 수 있는 프로 2년차지만 차근차근 보여줘야 할 시기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다 보니 비시즌에 악착같이 임하게 된다. 똑같이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더 힘이 들어간다”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 악물고 비시즌 보낸 진지위, 드디어 기회 잡았다…선발 출전 ↑

진지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주전 센터 진상헌(FA·OK 저축은행), 김규민(입대)의 빈 자리와 신임감독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의 ‘젊은 피’ 기용이 맞물리면서 진지위가 선택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프로배구대회(KOVO컵)에서 진지위는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5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며 38득점(10블로킹)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진지위는 “센터진을 책임지던 선배 두 분이 나가고, 감독님도 새로 부임하셨다. 한솥밥을 먹을 때 잘 챙겨주신 (진)상헌이 형과 (김)규민이 형이지만, 그분들의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서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었다”며 자세를 낮췄다.

젊은 선수 기용에 적극적인 산틸리 감독의 눈에 든 것도 주효했다. 진지위는 그간 선배들에게 집중됐던 관심이 갑자기 자신에게 쏠려 부담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의지도 불타올랐다.

진지위는 “고맙게도 산탈리 감독님이 저를 선발로 기용해 주신다. 아무래도 블로킹 능력을 높게 봐주신 것 같다”면서 “최대한 경기할 때 블로킹을 신경 많이 쓰려고 한다.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기회에 보답하고 싶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올라와 블로킹이 두렵지 않다”고 전했다.

영어도 능통해 산틸리 감독의 지시를 찰떡같이 알아들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진지위는 “감독님과 통역을 거치지 않고 대화를 주고받으니, 소통이 잘 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운동을 하다가 안 풀리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바로 물어볼 수 있다. 감독님의 지시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건 큰 메리트다”며 막힘 없는 의사소통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같이 복합적인 이유로 진지위가 대한항공 센터의 색깔에 맞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지난 시즌과 크게 달리진 점은 ‘자신감’의 유무다.

진지위는 “지난 시즌에는 프로에 갓 입성해 많이 위축됐다. 대학리그와 격차가 너무 커 자신감도 없었다. 장점이었던 블로킹도 더는 나의 무기로 보이지 않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면서 자신감은 수직 상승했다. 진지위는 “경기를 뛰다 보니 어느 정도 분위기를 읽는 눈이 생겼다. 코트 위 분위기, 블로킹 타이밍 등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체득했다. 그러다 보니 없던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 시즌엔 주전자리까지 오르도록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현재 진지위는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부모님 두 분을 지병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홍콩에 여동생과 친척들이 있지만 코로나19로 그들을 못 본지 꽤 오래됐다.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진지위다.

하지만 진지위는 오로지 배구 하나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길이다. 오직 배구만 생각하고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였다.

진지위의 ‘코리안 드림’의 끝은 어딜까. 진지위는 망설임 없이 “한국 국가대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서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운동화 끈을 질끈 묶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