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분석

임성재. AP=연합뉴스

2019-2020시즌 PGA투어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임성재(22)의 활약은 눈부셨다.

더스틴 존슨(36·미국)이 합계 21언더파로 우승하며 보너스상금 1500만달러 잭팟의 주인공이 된 이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임성재는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10언더파로 11위에 올랐다. 아쉽게 톱10은 놓쳤지만 지난해(공동 19위)보다 좋은 성적이다.

겨우 PGA투어 2년 차에 페덱스컵 랭킹 9위로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골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지난해 PGA투어 신인왕에 오른 그는 올 3월 혼다 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탔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투어가 중단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투어가 재개된 뒤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전반기에 쌓아둔 페덱스 포인트 덕분에 플레이오프에 진출, 지구촌 별 중의 별 30명이 상금 외에 1500만달러의 보너스를 놓고 벌이는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7,319야드)에서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첫날 2언더파 68타를 쳐 페덱스컵 랭킹(9위)에 따른 보너스 타수 4언더파를 합쳐 6언더파 공동 6위로 나섰다. 그것도 같은 조의 숙적(?) 마쓰야마 히데키를 2타 차이로 따돌리며.

2라운드에서 그는 데일리베스트인 6언더파 64타를 몰아치며 세계 골프 팬들을 놀라게 했다. 한때 더스틴 존슨과 공동 선두까지 이뤘다가 합계 12언더파로 1타 차 2위로 라운드를 마감했다.

그러나 무빙 데이인 3라운드에서 사달이 났다. 세계랭킹 1위로 자타가 인정하는 지구촌 1인자 더스틴 존슨과 한 조로 경기하면서 전날의 리듬을 잃었다. 드라이버 샷은 자주 페어웨이를 벗어났고 송곳 같은 아이언샷도 무뎌졌다. 실수도 속출했다. 보기 4개를 범하고 버디는 두 개에 그치며 2타를 잃어 합계 10언더파로 공동 6위에 머물렀다.

반면 2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1라운드의 스코어 13언더파에 머물렀던 더스틴 존슨은 하루에 6타를 줄이며 솟구쳤다. 임성재와는 1타에서 9타 차이로 멀어졌다. 임성재 앞에 잰더 쇼플리와 저스틴 토마스가 각각 14언더파로 공동 2위, 존 람이 13언더파로 4위, 콜린 모리카와가 12언더파로 5위에 포진해 앞길이 험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변은 나오지 않았다. 잰더 쇼플리, 저스틴 토마스, 존 람, 콜린 모리카와, 로리 매킬로이 등이 추격했지만 더스틴 존슨은 흔들리지 않았다. 임성재에게 2라운드의 재현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뒤 세계의 골프 명장들을 놀라게 한 임성재가 3라운드에서 헤맨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시즌 마지막 큰 대회를 앞두고 생체리듬은 조절했을 터이니 컨디션 난조라고 보기도 어렵다. 모든 운동에 출렁임이 있기 마련이지만 임성재의 3라운드는 너무 심했다.

2라운드를 마친 뒤 가진 그의 기자회견에서 단서를 찾는다. 그는 “솔직히 최근 몇 주간 자신감이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회복한 것 같다. 지금의 좋은 기세를 남은 이틀 동안에도 이어가고 싶다”며 “만약 우승해 상금을 받는다면 미국에 집을 사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며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선수라면 이런 욕심이 없을 리 없다. 특히 일정한 거처 없이 호텔 생활을 하며 어렵게 PGA투어를 소화하고 있는 그로선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기자가 꼭 집어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 본인 스스로 기대를 밝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 발언이 3라운드 경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골프에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쉽게 말을 내뱉는 것을 금기시한다. 평정심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긍정적인 언표(言表, utterance)는 자만이나 긴장을 유발할 수 있고 부정적 발언 역시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마음의 위축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임성재의 입장에선 우승 상금으로 미국에 집도 사고 저축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입에는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 뱉어놓은 말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으니 3라운드 경기가 지난 라운드처럼 자연스러울 리 없다. 자신의 발언을 증명하기 위해 결의를 다지고, 강력한 우승 후보 더스틴 존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평정이 사라진 마음 상태는 바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철저하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펼친 2라운드와 다르게 3라운드에서 그는 무엇엔가 쫓기듯 조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플레이를 보였고 낙심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내 눈엔 전날 기자회견의 후유증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이룬 것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 남자골퍼 30걸과 당당히 겨루어 11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업적이다. 비록 꿈의 잭팟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플레이오프 3연전의 경험은 그의 골프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