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글로벌 1등 할 수 있다" …'큰 별'이 한국사회에 남긴 유산은 '자신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기사입력 2020-10-29 11:41:57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에 추모행렬 연이어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대한민국 제일가는 부호로 삶을 보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그저 검소했다. 유족들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세상 마지막 인사만큼은 간소하게 전해지길 바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뜨거웠다. 경제계는 물론 정계와 학계 및 스포츠와 문화예술계 등에 이르기까지. 또 개인으로서도 이건희 회장을 그리움으로 회고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재벌이면서도 개척자로 불렸던 이건희 회장,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여러 인사들은 하나 같이 용기와 지혜를 수반한 ‘도전정신’을 꼽는다. 코로나19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이다.

부(富)에 더해 혼(魂) 남기다

  • 이건희 회장 어록.(그래픽=박수희)
2020년 10월 25일 향년 78세 일기로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장례절차가 지난 28일 마무리됐다. 가족장으로 치러진 만큼 장례식장 내부 모습과 분위기 등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영결식과 발인이 엄수된 날, 잠깐 모습을 드러낸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특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잦은 눈물을 훔치며 유독 힘든 모습을 보였다.

전언에 따르면 영결식은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고 한다. 이수빈 삼성 회장의 약력보고를 시작으로, 이건희 회장의 50년 지기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서울사대부고 동창회장의 추도사 및 추모영상 상영과 참석자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고 알려졌다. 이때 이수빈 회장은 목이 메여 약력보고를 가까스로 마쳤다고도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을 떠나보내는 나흘간의 장례였지만, 곳곳의 추모 열기는 되레 그를 소환한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 정계 인사부터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재계, 미국과 일본 및 중국 등에서 온 외교사절단에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등 전 분야의 사람들이 숙연한 자세로 조문하고 회상에 잠겼다.

조문객들은 하나 같이 이건희 회장의 ‘뜻’과 ‘정신’을 가리키며 애통해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경제계에서 모든 분야에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항상 따뜻하게 잘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며 “너무 훌륭한 분이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다”고 전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추도사를 통해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각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새 생명을 얻고 영속할 수 있다는 말을 잊지 않겠다”며 “2등 정신을 버리라는 이건희 회장님의 커다란 뜻을 이어받아 1등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살아생전 수많은 어록<표 참고>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사로잡았던 연설이 있는데, 1993년 6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그것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이니,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힘줘 말했다. 그의 1등 정신이 또렷이 드러난 때다.

고인이 강조한 1등 정신이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고, 그 자체로 커다란 자산이 됐다는 추도사가 상당수였다. 이 같은 이건희 정신이 의미를 더하는 것은, 그 뜻이 비단 정재계뿐만 아니라 국민 전반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고인을 향한 추모 행렬에 문화예술계 및 스포츠 등의 인사들도 나선 점도 그 단면이다.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회장님은 타이탄, 거장이시다”라며 이건희 회장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 자신감을 주신 분, 해외 어디를 나가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찬호 전 메이저리거도 “미국 초창기부터 다저스에서 컴퓨터 모니터가 삼성이라, 그걸 가지고 선수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고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경쟁자에 ‘미울 정도로’ 강했지만…“가슴이 따뜻한 분”

  • 지난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옛 모습과 일화 등을 곱씹으며 애도한 이들도 있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강아지와 관련한 추억을 돌이켰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과)어릴 적 한남동 자택에 있을 때, 잘 놀았던 기억이 있다”며 “고인께서 저희에게 강아지 2마리, 진돗개 2마리를 보내주셔서 가슴이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실제 이건희 회장은 소문난 애견가였다고 한다. 일본 유학시절 외로움을 달래고자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반려견 등 동물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해외에는 한국의 진돗개를 알리고, 국내에선 맹인안내견을 최초로 도입해 용인에 훈련원을 만들기도 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안내견도 이 훈련원 출신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회사의 한 임원을 불러 “우리 사장들 중 보신탕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해당 임원은 “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이 “누구냐”고 묻더니 “(그에게)개를 한 마리 사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반려견을 직접 맞이해 식용을 멈추란 뜻이었다.

물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착은 그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재차 화제를 모은 이건희 회장 동창의 편지에서 그런 면모의 흔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중학교 동창인 조태훈 건국대 명예교수가 2018년 1월, 병상에 누운 이건희 회장에 띄운 장문의 편지다. 조태훈 교수는 “친구를 향한 변함없는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언젠가 미국 뉴욕 출장 때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고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누님이 암 수술을 위해 뉴욕의 전문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건희와도 친했던 친구였다. 건희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건희가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내 말하고 미주본부장에게 얘기해서 네가 원하는 만큼 받아서 전해드려라.’”

따뜻한 품성이 강조되는 ‘인간 이건희’에 대한 평가와 달리, ‘사업가 이건희’는 경쟁자를 두렵게 하는 존재였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2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내놓은 평이 이를 꼭 보여준다. 이 매체는 이건희 회장 및 삼성 등을 향해 “미울 정도로 강하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은 이건희가 이끄는 삼성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밖에 외신들의 시각도 대부분 비슷하다. 승계 논란 등 삼성의 어두운 면을 짚기도 했으나, ▲‘삼성의 큰 사상가’(미국 뉴욕타임스) ▲‘비판세력조차 그의 업적을 존중’(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모방자 삼성을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업으로’(블룸버그통신) ▲‘소규모 TV 제조사를 글로벌 가전제품 거인으로 변화’(AP통신)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특히 일본매체의 관심이 두드러졌는데, 현지 공영방송 NHK의 경우 “강력한 리더십으로 오랜 시간 삼성그룹을 견인하고,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를 반도체나 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이건희 회장은)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바람 강할수록 연은 높이 뜬다” 초일류 삼성 있기까지

  • 이건희 회장 임기 중 삼성의 성과.(그래픽=박수희)
이 같은 국내외 평가는 이건희 회장이 일궈 온 삼성의 역사에 기인한다. 구체적 수치로 드러나는 성장의 규모뿐 아니라 '인간중시'와 ‘인재제일’ 및 '기술중시'를 토대로 한 경영철학, 또 그러한 가치들을 실재로 구현하기 위한 거침없는 도전행보는 세계를 막론하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거인’과 ‘개척자’ 등 상반되는 수식어가 이건희 회장에 여럿 따르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은 단순 매출규모만 봐도 또렷하다. 취임 당시 10조 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 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순이익은 취임 초반 2000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396배가량 증가했다.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한 셈인데, 실제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5위로 도약했다.

삼성 관계자는 “회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묵묵히 꿈을 현실로 변화시킨 이건희 회장의 약속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1974년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이건희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한다”며 “제 사재를 보태겠다”고 피력했다.

이런 뚝심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1986년 7월 1메가 D램 생산으로 반도체 산업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삼성은 이어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 지속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 중이며,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물론 반도체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 휴대전화 초격차는 이건희 회장의 안목을 인정하게 만든 또 다른 결실이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그는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며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지속 강조했다.

그렇게 애니콜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현재도 삼성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20% 정도로 세계 1위다.

재계 한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매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까지 삼성 연평균 성장률이 17%다. 그러기까지 파격의 연속이었다. 1995년 국내 기업사에 대변혁을 가져 온 ‘공채 학력제한 철폐 및 실력위주 채용 선언’, 1996년 ‘디자인 혁명의 해 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현장경영 행보를 강화한 것도 부전자전 아닐까. 이건희 회장이 2009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고자, 170일 동안 전 세계를 누빈 거리가 지구 5바퀴를 돌고도 남았다. 그러나 정작 IOC의 평창 확정 발표로 국민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리던 그 때, 이건희 회장은 눈시울만 붉힌 채 묵묵히 서 있던 모습이 각종 미디어에 노출됐다.

이건희 회장 별세로 삼성은 새 시대를 준비 중이다. 삼성측은 “미래를 향한 약속, IT 강국의 초석, 글로벌 영토 확장, 위기극복의 리더십, 사회 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상생과 동반성장, 스포츠 지원, 소프트 경쟁력 강화, 그 모두가 100년 기업 삼성의 밑거름이 되었다”며 “100년 기업 삼성을 꿈꾼 이건희 회장의 외침과 함께 쉼 없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현재, 또 하나 주목받는 이건희 회장 어록이 있다. 외환위기(IMF) 직격탄을 맞은 1998년, 이건희 회장은 신년사에서 이 같이 밝혔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불황을 체질강화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땀과 희생, 그리고 용기와 지혜입니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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