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가'보다 더 싼 '초저가' 경쟁…이커머스 시장 100조원 규모 급팽창

이번 추석은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내수 시장 부진에 따른 저물가 만성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통 유통매장들도 비상이다. 쿠팡, 티몬 등 이커머스 시장이 급격히 팽창 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성장·저물가 시대가 왔다며 경제 성장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추석을 앞둔 1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추석선물세트가 진열돼 있다.
中企·대기업 ‘추석경기 악화’

대내외적 경기가 악화한 여파로 기업 및 임금노동자들은 좀처럼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힘든 모습이다. 크고 작은 기업들 상당수가 녹록치 않은 자금상황 탓에 상여금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는 830개 업체를 대상으로 ‘2019 중소기업 추석자금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55%의 기업이 자금사정 곤란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금사정이 원활하다고 답한 곳은 8%에 그쳤다.

작년의 경우 자금사정이 나쁘다고 답한 비율은 올해보다 3.1%포인트 낮은 51.9%였다. 당시에도 대폭 오른 인건비 및 경기불황 등을 이유로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토로한 셈인데, 올해는 그보다도 상황이 더욱 나빠졌음을 보여준다.

정책적·환경적 영향이 맞물리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올해도 기업들이 꼽은 자금난 원인 1위는 ‘인건비 상승(56.5%)’으로 조사됐다. 가뜩이나 감당키 힘들었던 최저임금이 올해도 대폭 오르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더욱 많아진 것이다.

불황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판매부진’을 자금난의 원인으로 꼽은 곳이 54.7%에 달했다. 만성적 내수부진에 이어 미·중 무역갈등 및 일본의 수출규제 여파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납품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답한 곳이 25.3%에 달해 3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명절 후까지 여파가 파생될 수 있는 데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자금 확보 방안으로 ‘결제연기’를 꼽은 곳이 전년 대비 4.1%포인트 증가한 51.7%를 기록했다. 유동성 부족 현상이 거래기업으로 전이될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차라리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곳은 30.8%로 집계됐다. 하지만 그 외 35.9%에 달하는 곳은 ‘매출액 등 재무제표 위주 대출’과 ‘부동산 담보요구’ 등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힘들다고 답해 전전긍긍하는 업계 모습이 엿보였다.

이에 ‘대책이 없다’고 답한 곳도 30.3%에 달했다. 이밖에 납품대금 조기회수(37.9%), 어음할인(11.2%), 사채조달(7.8%) 등의 방안이 주를 이뤘다. 추석 연휴 계획은 평균 3.9일을 휴무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최근 몇 년간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추석 자금사정이 지속적으로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증가, 투자 및 수출부진 지속, 내수침체 등 하방리스크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대기업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3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300인 이상 기업 중 추석 상여금 지급 계획이 있는 곳은 전년 대비 약 1.9%포인트 하락한 71.3%로 나타났다.

300인 이상 기업들 가운데 69.7%는 ‘작년보다 올해 추석경기가 악화했다’고 답했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추석 경기가 악화했다고 보는 곳이 늘었다”며 “올해 체감경기는 특히 최근 5년간 가장 나쁜 수준을 보였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매장 위기, 속도 빨라

유통매장도 비상이다. 소비 수요가 악화되고 있는데다 쿠팡, 티몬 등 유통업계 후발주자 이커머스가 100조원 규모로 팽창하면서 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체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0.04%)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지난 2분기에 적자 전환한 것은 상징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몰락을 일본식 장기 불황의 전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온그룹 대형 할인점이 실적이 꺾이며 잇따라 폐점한 것과 부동산시장 거품이 빠진 현상이 겹치면서 ‘잃어버린 20년’, 이른바 20년 넘게 장기 불황을 겪었다.

국내 대형마트들도 벌써 2~3년 전부터 영업이 부진한 오프라인 점포를 폐점하거나 매장을 새 단장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동김해점과 부천중동점을 닫았다. 이마트는 올해 3월 덕이점, 작년에는 부평점·시지점·인천점 등 3년간 6개 점포 영업을 종료했다. 롯데마트는 인근에 신규 점포 오픈으로 통합된 김포점을 포함해 반여점, 동대전점 등 2016년 이후 3개 점포를 닫았다. 출점 확장 경쟁보다 부진 점포를 줄여 영업 효율을 높이는 게 우선인 것이다.

이제 유통업계의 화두는 ‘초저가’다. 이마트는 8월 출시한 ‘할인가’보다 저렴한 ‘에브리데이 국민가격’ 상품들은 출시 직후부터 고공행진 중이다. 칠레·스페인 와인을 대량 매입해 병당 4900원에 판매한 도스코파스 와인은 8월 1일~9월 3일 40만병 팔렸고, 개당 480원꼴의 다이알 비누는 같은 기간 16만개 판매됐다. 지난달 말 추가 출시한 700원인 물티슈(100매)는 판매 5일 만에 16만개가 팔렸다. 전체 물티슈 매출의 23%를 가져갔다. 2000원에 3개 묶음 구성인 치약도 5일간 판매된 전체 치약의 46%(판매량 기준)를 휩쓸었다. 자주 쓰는 생필품에서는 보다 싼 가격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가 드러난 것이다.

편의점들은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전국적으로 4만개를 돌파한 편의점은 2000년 ATM 도입을 시작으로 택배 서비스, 공과금 납부, 세탁, 차량충전 등 생활 밀착형 업무부터 무인 은행 업무와 항공권 결제까지 가능하다. 맛집 수준의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팔고 있다. 1+1, 2+1등 증정 상품 비율도 늘리고 있다.

최근까지 10년간 편의점을 운영했던 한 관계자는 “주 52시간 등의 영향으로 인건비가 2배 이상 오르면서 수익성 확보가 힘들었다”며 “주거지의 매장 경우 젊은 층의 소비가 감소했다. 젊은 소비자들의 이커머스 전환율이 빨라 오프라인 매장들도 당일 배송 등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구매, 사상 처음 마트·편의점 추월

유통업계 상황이 이러한 것은 소비자들의 소비행태가 바뀐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상반기 개인의 신용카드 소비에서 전자상거래·통신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마트, 편의점 등 종합소매 비중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의 소비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커머스의 저력, 오프라인의 위기가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중 지급결제동향’을 보면 현금 이외의 지급수단을 통한 결제금액이 일평균 79조 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자금융공동망 등 소액결제망을 이용한 계좌이체는 59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4%증가했다. 특히 모바일뱅킹이 9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8.6% 늘었다.

개인의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하루 평균 1조 5139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7.4% 증가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모바일 쇼핑 사용액이 하루 평균 246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마트와 편의점 소비를 포함한 종합 소매 부문 카드 사용액은 2203억원, 온라인 쇼핑에 비해 200억원 적었다. 개인 신용카드 이용실적 중 전자상거래·통신판매 소비는 2017년부터 3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으며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23%나 증가했다.

그동안 대형마트에서 편의점을 포괄하는 종합소매 부문의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 비중은 압도적인 1위였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개인이 신용카드로 결제한 종합소매 금액은 하루 2272억원으로 2위인 전자상거래·통신판매(2186억원) 보다 많았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이 오프라인 매장 방문에서 ‘온라인’ 구입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종합소매 소비금액도 동반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온라인 상품매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추월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전자상거래·통신판매 소비가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하면서 종합소매 소비금액까지 처음으로 따돌렸다”고 말했다.

암울한 명절 지속될 듯

명절 분위기란 것은 한동안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경제 전망도 적신호가 켜진 데다, 경기가 회복하려면 수년은 걸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소비자물가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데, 정작 외식물가는 오르는 모양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04% 하락했다. 1965년 통계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실상의 첫 마이너스 기록이다. 디플레이션 우려의 배경이다. 통상적으로 디플레이션은 총체적 수요 급감에 따른 것으로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번 저물가 현상이 수요보다는 공급 요인에 기인했다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했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경기 하강은 불가피하단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가운데 외식물가는 오르고 있어 소비자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자장면, 돈가스, 라면 등 외식 가격이 소폭 상승했다. 이 시기 농산물 가격(-11.4%), 석유류 가격(-6.6%) 등은 전년 대비 크게 하락했으나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은 1.8% 나홀로 상승했다.

경총이 올해 추석 경기 조사에서 48.7%의 기업들은 2022년 이후가 되어서야 경기가 회복세를 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2021년 상반기(15.6%), 2020년 하반기(14.3%), 2021년 하반기(13%), 2020년 상반기(8.4%) 순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선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수개월 간 물가동향은 0%대에서 지속됐다”며 “올해 4분기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및 내년 1분기까지 기준금리 1%까지의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종혜 기자

주현웅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