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가 4차산업의 목표일 수 없어… 수단과 목표가 명확한 ‘정책 방향성’ 나와야

지난 12월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0’에서 스마트 팩토리 관련 기기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에 몰입하거나 애매모호한 구호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4차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조류는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요 화두임에는 자명하다. 분명한 것은 다가오는 2020년대에는 전 세계가 4차산업혁명에 대한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생겨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는 지난 2000년대에 들어 논의되었던 4차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 방법론을 찾고자 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 지난 10여 년간 있어 왔던 담론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4차산업혁명의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다만 논의를 위한 기저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다행히도 지난해 10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 내용의 범위나 충실함 등을 떠나 이를 기반으로 4차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방향성을 예측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위촉한 많은 전문가들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정리한 우리 시대의 생각을 집약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고서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주도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이 아닌, 변화와 혁신의 주체인 민간을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밝혔듯이 이 보고서의 성격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민간보다는 정부의 역할에 초점을 둔 보고서이다. 또한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변화를 강요당하게 된다”, “본 권고안을 우리 정부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개척해 나가기 위한 시행착오의 한 단계로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먼저 준비하고 실천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변화와 혁신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 본 권고안에 관해서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내포된 핵심 문제를 짚어보면서 향후 4차산업혁명이 가져가야할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는데 참고자료로 살펴보고자 한다.


4차산업혁명 방향성 재정립해야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보고서에서는 4차산업혁명을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 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우리는 범용기술에 의해 3차례의 산업혁명을 경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AI,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 기술로 촉발된 새로운 세상,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4차산업혁명을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디지털, 생물적, 물리적 혁신의 융합이라는 일반적인 4차산업혁명이 갖고 있는 핵심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보고서에서는 사회혁신, 산업혁신, 지능화 혁신 기반 등으로 구분한 13개 분야의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이 추구해야 할 핵심은 방향성이다. 그 방향성은 구체적인 목표로 나타나야 하는데 보고서에는 그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에서 제시한 목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무엇이 양질의 일자리이며, 그 일자리가 몇 개인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창출해 낼 것인가에 대한 담론도 많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인의 단초는 보고서의 시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뚱맞게도 보고서는 서두 8쪽에 중국 후안강 칭화대 국정연구원장의 2013년 북경일보 기고문의 일부를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은 지난 200여 년의 세계 산업화, 현대화의 역사 속에서 3차례의 산업혁명 기회를 놓쳤다.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의 역사에서 중국은 변경국, 낙오국, 낙후국이었고 이로 인해 1820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중국경제가 1950년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후안강의 기고문 실제 내용은 “중국은 지난 200여 년의 세계 산업화, 현대화의 역사 속에서 3차례의 산업혁명 기회를 놓쳤다. 2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중국은 변방국,낙오국이었고, 급격하게 쇠락하였으며, 산업혁명의 기회를 놓치게 되어, 1820년에 세계 3분의 1을 차지했던 중국GDP 비중이 1950년에 20분의 1이하로 떨어졌다”라고 한 것으로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보고서의 내용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후안강의 기고문 전체 내용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후안강은 그의 기고문에서 중국은 1, 2차산업혁명에서와는 달리 3차 산업혁명에서는 국가의 정책이 추격자로서 잘 이뤄졌으며, 그 결과 4차산업혁명(실제는 녹색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음)에서는 미국, 일본, EU 등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후안강이 주장하고자하는 내용이나 본질보다는 우리 입맛에 맞는 주변 내용만을 가져와 우리의 주장의 핵심 근거로 삼는 식의 우를 범한 것이다. 즉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모호성만 증가시킨 형국이 된 것이다. 다시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에서 목표로 삼은 일자리 문제로 돌아가 보자. 보고서는 일자리 문제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화의 가시화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면서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이유는 저성장으로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 더해, 자동화·지능화라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 기술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대체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이라고 진단했다.

일자리에 대한 3가지 정책제언

그러면서 일자리에 대한 3가지의 정책제언을 하고 있다. 먼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산업 일자리를 육성하고, 기존 산업의 일자리 혁신을 지원하며, 창업을 활성화하여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이다. 다음으로 “일자리와 노동환경의 다양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4차산업혁명으로 야기되는 일자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와 민간의 기능을 효율화하고, 사회적 파트너들이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를 보아도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더 나아가 그 일자리 창출을 얼마나 할지에 대한 내용도 없다. 요란한 구호만 보인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이다. 실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보고서는 정작 4차산업혁명이 전통적인 “토지/노동/자본에서 인재/스마트자본/데이터로의 변화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그 목표에는 노동 즉 양질의 일자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국가의 정책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자리 제공은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하는 것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현재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의제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요구되며, 주 52시간 상한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의 일자리는 국민의 일자리 불안을 없앨 수 없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었다고는 한다. 이러한 논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본질이 왜곡된 때문이라고 보인다. 즉 수단과 목적이 잘못 설정된 상태에서 이뤄진 논의의 결과인 것이다. 4차산업혁명은 우선 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노동의 시간을 보다 줄여 국민들에게 보다 여유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에서든 동일하게 이뤄져야 한다. 즉 양질의 일자리라는 개념은 산업 분야별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분야에서만 일을 할 수만은 없다. 공공부문의 일이 있고, 서비스 분야의 일이 있고, 생산 현장의 일이 있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개념이 어느 특정분야에 한정되는 개념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선도하는 분야가 있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며 따라가야 하는 분야가 있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4차산업혁명으로부터 소외되는 분야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의 4차산업혁명 정책의 방향은 재설정되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여러 목적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 수단이 4차산업혁명이 될 수 있지만 4차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수단 전부가 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수단을 찾아야 하는 지난한 일이다. 단순한 구호나 정책의 제시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며, 그 저변에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나갈 인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인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양성해 내야 하며 대학이나 국가는 이를 지원할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이제 수단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그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 추진할 수 있는 체계의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 한호현 (테크칼럼니스트·공학박사)

- 한호현은 정보통신분야 공학박사로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등 다수의 기관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총괄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정보통신부, 현대정보기술 등 공공,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통신 관련 다양한 실무 경험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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