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4월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분산경제포럼 2018에서 안토니 루이스 R3리서치 총괄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미래를 그리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

연초부터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디지털화폐 연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올해 중앙은행디지털화폐 이른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한 전담연구조직을 만들어 연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전문 기술 인력을 별도로 뽑아 세계 동향 연구와 국제적인 논의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유럽은행 크리스틴 르가르드 총재 역시 지난해 말 구성한 전문가 태스크포스를 통해 유로지역에서 CBDC의 실현 가능성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 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구를 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이웃나라인 중국 역시 올해 7대 중점 업무분야 중의 하나로 디지털화폐로 정하고 그 연구를 촉진해 가기로 하였다. 다양한 경로에서 이러한 중앙은행들의 디지털화폐 행보에 대하여 지난해 페이스북이 추진하고 있는 리브라(Libra)의 영향이 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표 오래 전부터 영국, 스웨덴, 중국 등 많은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의 연구와 발행을 위한 실험 등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화폐의 발행은 단순히 지폐 등 기존의 화폐 발행과는 다른 측면을 갖고 있기에 리브라가 실제 출현할 경우에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경우 그 사용 등 유통에 큰 영향을 줄 수가 있다. 디지털화폐는 단순히 발행에 그치지 않고 그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는 전반적인 유통체계를 바꾸게 되는 특성을 근본적으로 갖고 있다. 현재 금융권 중심의 전자지급결제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리브라가 출현할 경우 기존 금융권이 갖고 있던 전자적 지급결제 체계가 리브라로 급속하게 옮겨갈 수 있을 가능성도 크다. 왜냐하면 리브라의 구현 형태를 보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의 통일된 방식으로 지급결제를 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별도로 특정 국가의 화폐로 환전 등을 하지 않고서도 화폐를 이용할 수 있고,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세계 누구에게나 손쉽게 송금할 수 있다. 이러한 지급결제 방식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의 특성이기도 하다.


디지털화폐 사용은 유통체계 변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아직 그 형태나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대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형태는 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이용자들의 디지털화폐 계좌를 직접 관리하는 계좌형 디지털화폐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지폐나 동전을 그대로 전자적 형태로 바꾸는 디지털 토큰 형태이다.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계좌형은 디지털화폐 연구초기에 등장한 모델이다. 다만 계좌형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의 관리부담, 기존 은행들의 역할 축소 등의 우려를 들어 그 연구가 주춤한 상태이다. 더 나아가 디지털화폐 망이 사고가 날 경우 전체 지급결제가 일시에 중지되는 최악의 사태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또한 국가 즉 중앙은행이 이용자들의 지급결제 내역을 손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프라이버시 문제 또한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대안으로 최근 들어 디지털 토큰 형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디지털 토큰 방식은 기존 금융체계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기존 전자지급결제 방식과 유사하여 계좌형 디지털화폐 방식의 문제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의 발행과 관련하여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서는 중국, 유럽에서는 스웨덴이다. 두 나라 모두 중앙은행에서 전담 조직을 두고 디지털화폐의 기술적 설계를 마치고 테스트 단계에 접어든 상태이다. 한때 영국 중앙은행이 가장 앞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상태이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2017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여 관련 보고서 등을 만들어 냈으나 시장조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의 디지털화폐 행보에 관심을 가져야

디지털화폐 발행에 가장 앞선 나라로는 대체적으로 중국을 꼽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중국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와 중국 최대 IT기업이자 세계 스마트폰 2위 사업자인 화웨이 간에 금융과학기술 관련 협력 방안에 대한 협약이 이뤄진 것이다. 이 협약에는 중국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 소장과 부소장이 모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 같은 중국 정부와 기업이 디지털화폐와 관련한 협력 행보가 갖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더 나아가 언론의 주목도 끌지 못했다. 중국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연구소와 화웨이 간에 금융과학기술분야 협약은 많은 이들에게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중앙은행디지털화폐를 발행한다고 하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서 이뤄진 이번 디지털화폐연구소의 첫 대외 행보의 수수께끼는 미래 디지털화폐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 디지털화폐연구소는 지난 2018년 칩 설계가 가능한 석·박사급 인력을 채용한 바 있다. 여기서 중국의 CBDC의 실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최근 화웨이와의 금융과학기술 관련 협력과도 큰 연관이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인민은행의 인쇄과학기술연구소와 디지털화폐연구소가 그 동안 내놓은 CBDC의 특허 내용을 보면 그 행보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CBDC는 칩카드 형태로 이뤄지며 중요한 방식으로 스마트폰의 내장보안카드(eSE), SIM카드 등의 형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카드 형태로 만들어 전자지갑을 사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볼 때 디지털화폐연구소가 오랜 연구를 통해 CBDC 전용 칩의 설계를 어느 정도 완료하고, 이번 협약을 통해 화웨이의 스마트폰에 내장하기 위한 시험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아울러 중국인민은행의 CBDC는 은행계좌가 없더라도 사용이 가능하고, 현금처럼 인터넷 등의 연결이 없는 상태에서도 디지털화폐를 당사자 간에 직접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도 볼 때 스마트폰에 칩카드가 내장되거나 SIM카드 형태로 장착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또한 이 같은 형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칩카드에서 제공되어야 할 핵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해법을 풀기 위한 첫 시도와 CBCD 출시에 대한 자신감에 대한 대외적 신호로 이번 금융과학기술분야 협약을 활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인민은행의 CBDC는 은행계좌가 없더라도 사용 가능

중국의 CBDC가 가까운 시일 내에 출시될 가능성은 아직 많지 않다. 칩의 생산에서부터 실제 이를 스마트폰 등에 탑재하여 설계된 기능이 제대로 동작함을 실험하고 안전성과 안정성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범사업 등을 통해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고 디지털화폐의 보급이 주는 거시 경제적인 영향도 면밀하게 분석하여 금융정책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CBDC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사용을 시작하여 확대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부나 산업계 특히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금융업계의 대응 수단이 없거나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인은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소극적인 행보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중국이 CBDC를 스마트폰 등에 탑재하여 내놓을 경우 우리나라의 스마트폰의 대 중국 수출에는 상당한 수출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가 중국이 최근에 제정한 암호법의 통제까지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삼성전자 등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확산에 예기치 못한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 교류하는 무역업계나 관광업계 또한 예상치 못한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과의 교류를 하는 모든 기업들이나 개인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에서 CBDC를 특정 영역에서 우선 사용하도록 통제를 한다면(예를 들어 환전, 호텔, 공항 등) 중국 CBDC를 탑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물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스마트폰에 중국이 CBDC 칩 등을 탑재하여 사용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두겠지만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CBDC 출시는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

아울러 중국 관광객을 많이 상대하는 관광업계는 중국의 대표적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 등을 속절없이 수용하였듯이 우선적으로 중국의 CBDC를 받아들이는 체계를 스스로 갖추게 될 전망이다. 핀테크 시장 등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CBDC 출시는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의 CBDC를 가장 먼저 접해야 하는 은행 등 금융업계도 무감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일본 등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 영향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어쩌면 엉뚱한 방향에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가 나서고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전쟁에 가장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이 빨라져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 한호현 (테크칼럼니스트·공학박사)

- 한호현은 정보통신분야 공학박사로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등 다수의 기관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총괄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정보통신부, 현대정보기술 등 공공,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통신 관련 다양한 실무 경험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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