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해양가스’ 개발로 경제파워는 물론 아랍권 적대국들과 안보 관리 지렛대로 활용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철천지원수 관계였다. 길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시대의 수천 년 동안은 물론, 현대사에 들어선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선포 직후부터 1973년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주적은 이집트가 주도한 아랍 동맹국이었다. “우리에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따름이다.” 영국의 총리 헨리 존 파머스톤이 중국과의 아편전쟁을 앞두고 한 유명한 말이다. 최근 그러한 ‘실리추구 외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적용되는 것 같다. 사실 중동전쟁 이후인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평화 협정에 서명했다. 이를 전환점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는 개선되었고, 그 이유로 베긴 총리와 사다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이집트는 요르단과 함께,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중동 아랍국 중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두 나라 중 하나이지만, 최근 중동의 지정학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를 수입했던 이스라엘이 지중해 ‘리바이어던(Leviathan)’ 해양가스 유전에서 해양가스를 상업생산하고 2020년 1월 15일부터 이집트에 수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와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해양경계 설정과 상업생산의 과실 이용 책략에서 경쟁(Competition)보다 협력(Cooperation)을 택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혐의로 검찰이 조사 중이며, 엘 시시 대통령은 군사독재의 이미지를 리바이어던 해양가스로 극복하려는 정략적 의도도 없지는 않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정부는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번 수출은 양국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할 중요한 발전”이라며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천연가스 액화 시설을 거쳐 유럽으로도 일부를 보내며, 이집트는 내수를 충당하고 남은 가스를 역외에 수출함으로써 지역의 ‘가스 허브’로서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이란 단어는 두 가지 뜻을 함축하는 것 같다. 하나는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국민들에게 평화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정당한 국가뿐이다. 특히, 정당한 정부의 통치권자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과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국가이론을 담은 책(1651년)의 이름이 리바이어던이다. 다른 하나의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바다에 사는 거대한 짐승이다.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자원은 한편으로는 홉스가 정의한 강한 정부의 동기를 이스라엘에게 부여하게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중해와 중동의 지정학을 바꾸는 바다의 괴물로 부각되고 있다.

성경은 가나안 땅을 풍요로운 땅을 의미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현대 국가 경제에 필수적 자원인 물과 석유가 없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불평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 연안 대륙붕과 근해에서 세계적 수준의 해양가스유전 매장량이 속속 밝혀지고 상업생산이 가시화되면서 가나안 땅은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사실 과거 이스라엘은 주변의 석유자원이 풍부한 아랍 국가들의 원유 판매 중지로 인하여 중동 이외 국가인 앙골라, 콜롬비아, 멕시코와 북해 유전에서 어렵게 수입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유태인식 경제관념, 강한 군사력 등으로는 강국이라 하지만, 에너지는 빈국이었기에 1950년부터 국가생존 차원에서 유전 탐사를 진행해 왔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이스라엘의 유전탐사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2004년 텔아비브에서 16km 떨어진 크파르 사바지역에서 10억 배럴 규모의 유전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2009년에는 노블에너지가 지중해 북부해역에서 90km 떨어진 타마르(Tamar) 해역에서 매장량 2470억 ㎥인 천연가스전을 발견했으며, 2013년부터 하루에 3억 4000만 ㎥를 생산할 수 있어 이스라엘 전기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의 40%를 감당할 수 있게 됐다.


리바이어던 해양가스유전은 2010년에 발견된 이스라엘 연안의 지중해에 위치한 대형 가스유전으로, 타마르 해양가스유전 남서쪽 47km에 위치해 있다.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유전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 가스 발견 중 하나인 레반틴(Levantine) 분지 중 1500미터 깊이의 해역이며 항구도시 하이파로부터 서쪽 약 1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리바이어던 유전에는 약 4550㎥(455bcm, 1bcm은 10억㎥임. 455bcm은 16조 ft³임 )의 천연가스가 부존되어 있다.(<위키피디아>, Leviathan gas field) 이스라엘의 가스 생산량은 2020년 리바이어던 1A의 생산으로 수요를 80%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동지중해에서 가스 수출국이 될 수 있다. 2017년 현재, 보수적인 추정치에도 불구하고, 리바이어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가스를 보유하고 있다.(, ‘Israel has a gas condurum’,2017.8.17.)

인근 타마르 가스전과 함께, 2019년 12월 31일부터 가스의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자원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어느 정도의 에너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흥미롭게도 이집트도 2015년 8월 지중해에 면한 북부 조흐르(Zohr) 연안에서 ‘지중해 가스전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 추정 매장량 최대 30조 ft³(입방피트)의 가스전이 발견됐다. 이집트의 ‘조흐르 해양가스 유전’은 리바이어던의 1.8배 크기로 추정된다.(서동일특파원, ‘이집트의 가스전 로또’, 동아일보, 2019.4.25.) 10년 전,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2014년 12월 14일자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생산할 천연가스가 이웃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화해를 위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천연가스 수입국이었던 이스라엘은 2018년에는 이집트와 10년간 150억 달러 공급계약을 맺었고, 요르단에는 15년간 100억 달러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유전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해역 내 동부 지중해에는 총 2조 1000억㎥ (2100 bcm)의 가스가 부존되어 있다. 유럽연합(EU)은 북대서양 유전이 고갈되어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산유국이 되면,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때문에 반기고 있다. 2017년 EU의 가스 소비량은 4100억㎥로 이스라엘의 리바이어던 유전 매장량이 EU에 공급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생산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은 물론, 이스라엘과 EU,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관계에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BESA,, Frank Musmar, 2020.1.19) 이스라엘 리바이어던 해양가스의 상업생산이 가시화되면서 가장 급하게 움직인 것은 러시아였다. 2012년 6월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우호적 제스처를 취한 것은 이스라엘 해양가스자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5년 10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영가스 회사인 가즈프롬(천연가스 생산 세계 1위로 세계 가스 생산량의 17%, 러시아 가스 생산량의 83%)이 리바이어던 매장량을 개발하는 주 채광권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 2015.10.19)

다음 변화는 동지중해 연안국들이었다. 2019년 1월, 이스라엘, 이집트, 키프로스, 요르단, 그리스, 이태리, 팔레스타인 등 동지중해 주변 7개국들은 “지중해 동부지역을 세계 천연가스 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부지중해 가스포럼(EMGF, Eastern Mediterranean Gas Forum)을 창설했다. 유럽 위원회는 이 프로젝트에 거의 39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7년 안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 지중해가 에너지 허브로 전환되는 것은 전 세계 지정학적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BESF보고서, Frank Musmar, 2020.1.19) 동부지중해 포럼 국가인 그리스와 이스라엘, 키프로스는 2020년 1월 2일 지중해 레반틴 분지에 부존된 해양가스를 유럽 대륙으로 운반하기 위한 1900㎞에 이르는 동지중해 해저 가스관 건설 조약을 체결했다. 동지중해 해저가스관은 이스라엘의 라반타인 유역의 가스 매장지에서 키프로스와 그리스의 크레타 섬 및 그리스 본토로 연결될 예정이다. 또 육로로 그리스 북서부를 지나는 가스관과 또 다른 해저 가스관은 이탈리아까지 연결된다.

이번 가스관 연결 공사에는 약 60억 달러(약 7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가스관 건설이 완료되면 EU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약 10%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지역은 가스 공급의 대부분을 러시아와 코카서스 지역에 의존해왔다. 국제사회에서 에너지는 정치력을 뜻한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 등에 따르면 세계에서 천연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전 세계 총 가스 매장량의 54%, 석탄의 46%, 우라늄의 14%, 석유의 13%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석유 및 가스 국영기업인 가즈프롬(Gazfrom)의 노드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 가스 공급량의 37%를 공급하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전체 수입 가스의 51%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헝가리는 아예 수입 가스가 100% 러시아산이다. 러시아 경제는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자연 자원의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은 러시아에 큰 무기였다. 이날 조인식에서 3개국 정상들은 동지중해 가스관이 유럽에 에너지원의 선택에 대한 유연성을 키워주고 국가 독립성도 강화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아랍권 맹주 국가인 이집트와의 경제협력을 통한 밀착을 강화함으로써 주변의 아랍권 적성국들과의 안보 위기를 관리하는 데도 유용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천연가스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데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서로 껄끄러운 국가인 터키를 가스 협력이라는 지렛대로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터키는 최근 그리스 계 주민이 다수인 키프로스가 연안 대륙붕에 대한 자원개발에 착수하자 친 터키 정부가 들어선 북 키프로스도 동등한 권리가 있다며 키프로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선포 해역에 시추선을 보내는 등 동지중해 자원권을 놓고 인근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한겨레>,2020.1.16)

리바이어던 가스전의 존재는 지중해 동부 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과 더 넓은 지중해 에너지 이용의 관점에서 유엔해양법 협약을 적용한 해양경계 설정 문제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2010년 8월, 이웃국가인 레바논은 유엔 대륙붕 한계위원회에 해양 국경에 관해 현재 이스라엘의 타마르와 리바이어던 해양가스 유전은 레바논 EEZ 밖으로 간주된다고 보고했다.(, 2012.1.30) 해양경계가 첨예한 해역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에 이르는 것은 지난한 과제이다. 첫째, 해양석유와 가스 부존 확인, 둘째, 이웃국가 간 해양경계 설정, 셋째, 생산능력 보유, 넷째, 생산된 자원의 마케팅, 그리고 국가지도자의 정치적 리더십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는 이스라엘이 이웃국가이자 앙숙인 이집트와 해양가스 개발에서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분쟁하기보다 ‘경쟁자 간 협력’의 책략을 취했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적으로 복잡한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에 리바이어던 해양가스개발책략이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경쟁자 간 협력’이란 하버드대 그레이엄 애리슨 교수가 투키디데스함정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책략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은 해양가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일 돈의 규모를 계산하기보다는, 이 수입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해양가스·석유의 수출 허용량, 생산량에 부과하게 될 로열티와 세금 비율, 그 수입의 관리 및 운영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이스라엘 정관계에서는 노르웨이와 같은 국부펀드를 만들거나 미래 대체에너지기술 개발에 투자하자는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 로또복권처럼 예상치 않았던 북해유전개발 때문에 국가경제가 흔들렸던 네덜란드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치밀한 국가책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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