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된 폐기물에 관한 ‘방해배제청구권’과 ‘손해배상’

일상용품은 물론 바깥 공기를 통해서도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시대. ‘환경의 역습’이 시작됐다. 그에 따른 갈등도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환경 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알아두면 좋을 환경법은 무엇이 있을까. <주간한국>과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살펴봤다. 구성은 각 소송의 판례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했다. [편집자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2010년 경기도의 한 지자체. 한 시민은 자신의 주택 아래 토양이 어딘가 이상하단 낌새를 느꼈다. 그는 땅을 굴착해 보았는데 상당한 양의 폐기물들이 매립돼 있음을 알게 됐다. 인근 부지가 옛날에 쓰레기매립지로 쓰였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부지 밑에도 일부 폐기물들이 묻혀있었던 것. 이에 해당 시민은 소송을 통해 ‘방해배제청구권’ 및 손해배상을 행사하기로 했다. 방해배제청구권은 ‘공공의 위법한 행정행위 침해로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 위법한 침해요소를 제거해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주택 토지 소유주

“지자체는 1984~1988년까지 저희 집 인근 하천 부지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쓰레기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지금의 제 땅 밑에까지 쌓았습니다. 토지를 굴착해 보니 지하 1.5m부터 4m 지점 사이에 각종 생활쓰레기들이 매립돼 있더군요. 주변 토양들이 검게 오염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제가 주택을 이용하는 데 대한 방해요소 제거 및 각종 손해들을 배상받길 원합니다.”

지자체

“1988년 4월에 매립지 사용을 종료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 셈인데, 소멸시효가 만료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1심 재판부(2015년)

“방해배제청구권이란 현재 계속되고 있는 방해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에 따른 법익침해가 종료된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방해배제청구권에 대해서는 기각하겠습니다.

다만 손해배상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오염된 땅으로 인한 피해는 당연 여럿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소멸시효가 10년을 훌쩍 넘겼다는 점입니다. 거의 30년 지났네요. 따라서 아쉽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번 재판부는 기각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2심 재판부(2016년)

“지자체의 쓰레기 매립행위는 종료되었으나, 매립된 쓰레기가 아직까지 이 사건 토지에 존재하는 이상 원고의 소유권은 분명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토지 지하에 매립물이 계속 존재하는 탓에 땅 소유자는 부지에 대한 사용과 수익 등 지배권능이 방해받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전히 잔존해 있는 방해상태는 법질서 상 용인될 수 없습니다. 또 타인의 토지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매립한 경우 버린 쪽에서 수거하는 게 당연합니다. 상식에도 부합하고요. 이런 배경으로 본 재판부는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용합니다.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소멸시효가 끝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소유권을 취득한 원고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본 재판부는 원고측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지자체는 쓰레기 다 치우시고 손해 등에 대해서도 보상토록 하세요.”

대법원(2019년)

“이 사건 토지 지하에 매립된 생활쓰레기는 매립된 후 30년 이상 경과했습니다. 그 사이 오니류와 각종 생활쓰레기가 주변 토양과 뒤섞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실상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재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이처럼 분리가 어렵다면 방해배제 청구는 어렵겠다는 게 본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폐기물들을 꺼내드는 식으로 배제할 수는 없고, 그 대신 정화를 해야겠지요.

따라서 본 재판부는 원고측이 제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파기환송심을 다시 치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승태 변호사

“판결이 계속 뒤집혔네요. 환경 문제에서 꽤 이례적인 모습입니다.

이 사건은 불법폐기물이 매립돼 있는 토지의 소유자가 지자체를 상대로 ▲소유권에 기반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다툰 사건입니다.

사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셈이기도 합니다. 앞서 2002년과 2011년 대법원은 폐기물이 토지와 쉽게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방해배제청구권을 달리 판단한 바 있습니다. 분리가 되면 방해배제청구권과 손해배상을 전부 인정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손해배상만 인용한 적이 있죠.

쉽게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땅 속에 오염물질인 폐기물이 있으면 이는 걸러내면 되잖아요. 분리하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하지만 오염물질로 인해 토양이 오염됐다고 해봅시다. 토양 전체를 들어낼 수는 없겠죠? 이런 경우에는 걸러내기가 어렵죠. 방해 요인을 현실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의의 피해를 입은 토지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2심 재판부와 같이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보여지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방해’와 ‘손해’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 사건에서 대법원의 태도가 타당하다고는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문제입니다. 폐기물을 토양과 ‘혼화’시키는 매립행위자, 폐기물을 토양과 ‘분리’하는 매립행위자를 비교해 봅시다. 둘 다 문제지만 상대적으로 전자의 불법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그런데 현행법은 이 같은 전자에 대해 방해배제를 청구할 수 없게 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적극적인 불법매립행위자에 대해 사실상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는 것이지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이 사건은 파기환송심이 아직 남아 있는데요, 과연 판결이 내려질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승태 변호사=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의 대표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및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고문변호사 등을 역임 또는 활동 중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