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운하 추진하는 터키, 지중해 영향력 키워 ‘오스만제국 부활’ 꿈꿔

터키 이스탄불.

“터키는 터키보다 크다. 우리는 78만㎢의 터키 육지 면적에 갇혀 있을 수 없다.” 2002년 이후 장기집권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한 말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 철권 리더십과 신 권위주의를 앞세우는 ‘스트롱맨’으로 꼽힌다. 그는 ‘시황제’(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차르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21세기 술탄 에르도안’으로 불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반서방적이며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는 국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터키는 6^25전쟁(1950∼1953년)에 터키군 파병원조,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이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징표와 관련된 세 가지 해양책략이 주목된다. 첫째, 이스탄불 운하건설 사업, 둘째,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셋째, 시리아 및 리비아 파병 등에 의한 지중해 제해권 영향력 확대 등이다. 터키의 해양책략에는 우리나라 건설업체와 해양산업계의 참여가 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전 세계에는 지정학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30여 개의 해협이 있다. 전문가의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세계 5대 해협은 “호르무즈해협, 말라카해협, 지브롤터해협, 도버해협, 그리고 터키의 보스포루스해협”을 꼽을 수 있다. 터키는 두 개의 중요한 해협을 끼고 있다. 하나는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스해협’으로 고대 그리스어로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이다. 고전에서 회자되는 트로이 전쟁의 무대였던 트로이가 해협의 서쪽 입구에 있다. 동방의 패자인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유럽진출을 위해 BC 5세기 이 해협을 건너 아테네와 살라미스해전을 벌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4세기에 지중해를 넘어 동방과 인도양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 건설을 위해 이 해협을 건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해협은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의 두 대륙이 교차하는 경계선이다. 이 해협은 예로부터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다. 흑해와 지중해,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수로로서 지리적 가치가 높아 중세의 교통로와 무역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냉전 시대에는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해 남하하던 소련을 막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 해협은 직선길이 약 30㎞, 해협의 폭은 넓은 곳은 3500m, 가장 좁은 지점은 약 600m에 불과하며, 수심은 50m 이상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매년 3만8000 척의 상선이 통항하고 있으며, 좁은 수로, 급커브, 바람과 안개 등으로 해상사고가 잦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었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330년에 그리스의 식민 도시인 비잔티움을 제2의 수도로 삼고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지명했다. 역사학자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보석으로 비유해서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라면, 콘스탄티노플을 가장 귀한 보석인 다이아몬드로 비유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였다. 그와 세계대전을 벌인 술탄 메흐메트 2세는 1453년 5월 ‘피와 강철과 운과 정복’으로 이곳을 점령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불렀으며, 1923년 터키가 수도를 앙카라로 옮길 때까지 이슬람 제국 최고 도시로서의 영화를 누렸다.

터키의 전신은 오스만제국이다. 1299년부터 1922년까지 북아프리카, 남유럽과 동유럽, 서아시아 3대륙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서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다. 전성기 제국의 영토는 동서로는 카스피 해와 페르시아 만 연안에서부터 대서양 연안의 지브롤터 해협까지였으며, 남북으로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유럽의 오스트리아 경계에 이르렀다. 동서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다원적인 성격을 띤 지역이었다. 15세기 중반 전성기를 누리던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지중해 동부를 장악함으로써 유럽과 아시아 간의 육상 실크로드에 의존했던 육로 무역이 단절되었다. 향신료의 원산지인 인도, 동남아시아에서 아랍상인들을 거쳐 유럽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가격이 치솟았다. 그 대안으로 모색하게 된 것이 대탐험시대의 개막과 신항로 개척이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원양항해의 선봉에 나섰다. 포르투갈의 배는 주로 아시아 방면을, 스페인의 배는 아메리카 신대륙 방면을 택했다. 그들에 의해 상업항로는 바다로 그리고 세계로 멀리 널리 개통됐다. 결국 막강한 오스만제국의 존재로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는 실크해로가 탄생된 셈이다.

유럽 열강들의 등장과 1차 세계대전 패배에 이어 다수의 소수민족이 독립하면서 와해 위기에 처했다. 이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아타튀르크’는 투르크인의 아버지란 뜻)는 3국 동맹(영국^프랑스^러시아의 동맹)에 대항해 터키의 해방을 이끌었으며 1923년 터키공화국이 탄생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1923년 7월 24일에 체결된 로잔조약에 따라 현재 터키의 유럽 영토인 동 트라키아가 터키 땅으로 남게 되었다. 그 대신 에게 바다의 섬 들은 그리스에게 넘어갔다. 현재 터키 영토의 코앞에 있는 섬들까지 그리스 영토가 된 것은 터키의 해군이 약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 항복한 뒤 이스탄불에 진주한 연합군사령관인 영국인 고등판무관이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궁지에 몰린 그리스를 구하기 위해 이스탄불 부근의 동 트라키아 땅과 에게 해의 섬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신생 터키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무스타파 케말의 터키 정부가 이스탄불 주변 육지 땅을 선택함으로써 에게 해는 그리스 영해가 된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의 영해 범위를 놓고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역사분쟁과 해양영토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에게 해의 모든 섬들을 포기하도록 강요된 것은 해양강국이었던 터키의 해양력을 크게 약화시킨 요인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54년 흑해 연안 도시 리제에서 태어나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빈민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려웠던 성장기 경험은 보수 무슬림과 서민층의 정서에 효과적으로 파고들었고 그의 정치적 토양이 됐다. 그는 1994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탄불에서 시장에 당선되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는 2002년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다. 이어 2007년, 2011년 총선에서도 잇따라 승리해 총리로 3연임했고, 총리직 4연임 금지 규정에 발목이 잡히자 2014년 터키의 정치체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개헌을 가결시켰다. 불공정 선거와 야권 탄압, 법치주의 약화와 언론 장악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영구집권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있다. 또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선거를 시행해 당선되면 다시 5년을 재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한 것이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까지 합하면 30년 이상 1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셈이다.(<세계일보>, 2020.2.15.)


‘이스탄불 운하’ 건설사업

운하는 대륙을 끊어 육지에 뱃길을 여는 것이다. 운하는 국가와 도시의 운명을 바꾼다. 새 운하가 열리면 지역은 물론 세계시장의 공급사슬 망과 수요사슬 망이 급변한다. 수에즈운하, 파나마운하, 킬 운하 등이 대표적인 국제운하이고, 니카라과운하가 성사를 앞두고 있다. 이스탄불 운하는 현재의 자연적인 바닷길 보스포루스해협에서 서쪽으로 30∼40㎞ 떨어진 곳에 새로운 뱃길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마라해와 흑해 사이에 총연장 45㎞, 폭 400m 규모에 약 160억 달러(약 18조 9000억 원) 가 투자되는 거대사업이다. 이스탄불운하는 2017년 10월 1단계 개항한 이스탄불공항과 함께 이른바 ‘에르도안 메가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업이다. 그러나 2018년 터키 리라화 급락사태 속에서 재정적자와 대외 부채가 위험요인으로 부각됨에 따라 터키 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잠정 보류한다고 선언했었다. 자연히 이스탄불운하 사업도 당분간 추진되지 않으리라 예상됐었지만 2019년 12월 31일 에르하르 대통령이 조만간 착공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업계의 관심을 되살렸다. 이스탄불 앞바다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이스탄불운하에는 교량 10개가 건설될 계획이다. 준공 예상 시기는 터키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23년이다. 이스탄불운하가 완성되면 터키 정부는 현재의 보스포루스해협 물동량을 이스탄불운하로 돌려 통행료 수입을 올리고, 주변 지역 개발이익도 얻겠다는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보스포루스해협의 환경 보호도 운하 건설 명분이다. (<세계일보>, 2018.11.15.)

현재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 위에 대교 건설 사업인 차나칼레 사업을 추진 중이다. 차나칼레 프로젝트는 세계 최장 현수교인 차나칼레대교(3.6㎞)와 연결도로(85㎞)를 지은 후 이를 운영하고 터키 정부에 이관하는 건설^운영^양도(BOT) 방식의 민관협력 사업이다. 차나칼레 대교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사이에 둔 차나칼레 주 랍세키와 겔리볼루 지역을 잇는다. 터키 현지 업체 2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대림산업과 SK건설은 2017년 1월 일본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사업을 수주했다. 총 사업비는 3조5000억원 규모로 이들 기업은 시행자로서 운영수익도 보장받는다. 총 사업기간은 건설^운영 포함 16년 2개월이며 2021년 하반기 준공 예정이다(<이데일리>, 2019.5.) .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5월 국빈 방한에서 이스탄불운하 사업에 한국 건설업계의 참여를 요청했으며, 우리 업계도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SK건설은 이스탄불운하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의향이 있으며, 다만 자금조달과 리스크 관리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 항만과 해저석유 개발

소말리아 해역은 국제 해상 운송로의 요충지다. 소말리아의 정치적 혼돈 때문에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는 소말리아 지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해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선박은 매일 10여 척 정도가 지나고 있지만, 해적의 출몰로 해운 비용이 오르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 단속을 위해 2009년 이후 해군부대인 청해부대를 파병하였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항구적 자유 작전 -아프리카의 뿔’에 참가하게 되었다. 터키의 총리는 2011년 비 아프리카 지도자로는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소말리아를 방문했다. 소말리아에 원조물자를 실은 대규모 선단을 보낸 것을 신호탄으로 현재까지 소말리아의 인프라 사업에 1억 달러를 투자하고, 양국의 교역량을 늘리는 등 밀월 관계를 이어왔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항만과 공항은 친 에르도안 신문을 소유한 알바이라크 그룹이 운영 중이다. 또한 터키의 해외 군사 기지 중 최대 규모인 소말리아의 캠프 투르크솜은 2017년부터 운영 중이다. 터키는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 해외 주재 자국 공관 중 최대 규모의 대사관을 개장했다. 또한 금년 1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석유 탐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연합뉴스>, 2020.1.22) 과거 오스만제국의 항만이었으나 현재는 수단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홍해의 섬 ‘수아킨’에 대해 터키가 99년 동안 유효한 임차계약을 2018년에 체결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 반도에 대해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기 위한 차원이다.

지중해 제해권 영향력 확대

터키가 해외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부쩍 나서면서 과거 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던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도 적극 개입해 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터키가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2016년 8월에는 시리아 북서부에서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을 벌여 쿠르드 세력의 서진을 차단했다. 지난 1월 초에는 터키가 내전 중인 리비아에도 파병을 결정하며 국제사회에 파문이 일었다. 터키의 파병 결정을 두고 터키가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과, 에너지 자원이 가득한 동지중해를 놓고 그리스^키프로스와의 갈등이 심화하자 동지중해에 대한 영향력 확대의 배후지로 리비아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터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외교 정책은 ‘국내에서의 평화, 세계에서의 평화’라는 표어처럼 해외개입을 삼간다는 것을 건국이념 중 하나로 삼았고, 큰 틀에서 중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리비아와 소말리아의 사례에서처럼, 에르도안 대통령의 해외 영향력은 오스만제국의 붕괴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게 서구 언론계의 분석이다.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해양책략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나라의 경제이익과 직결될 수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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