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 바이오시밀러 찍고 국산신약으로 글로벌 시장 도전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 기사입력 2020-09-26 06:05:07
  •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원들이 인천 송도 연구소에서 물질 실험을 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2023년 500조원 시장으로 커질 제약·바이오
바이로시밀러 찍고 국산신약으로 글로벌 시장 도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국산 신약’ 개발이 제약·바이오업계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의약품 위탁 생산, 바이오시밀러 제조에서 위상을 확립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국산 신약 개발까지 성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포부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K-방역은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른바 ‘코리아 프리미엄’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산 신약을 수출할 기반을 마련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각종 글로벌 학회에 참여해 신약 개발 성과와 임상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31.9%)’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유망한 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건강관리와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도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봤다. 지난해 발간한 ‘글로벌 바이오 시장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8.6%씩 성장해 2023년 4420억달러(약 500조원)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시선은 ‘신약’에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위탁 생산, 바이오시밀러 개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시가총액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포진돼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가 각광받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한 차원 더 올리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코로나 위기로 시밀러에서 신약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다"며 "케미컬 합성 의약품도 한 축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산 신약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과감한 베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의약품들 중 6개 제품이 블록버스터(연 매출 100억원 이상)에 등극했다. 6개 제품은 HK이노엔(구 씨제이헬스케어)의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정’과 보령제약 고혈압치료제 ‘카나브정’, 엘지생명과학의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정’, 일양약품 항궤약치료제 ‘놀텍정’, 종근당 당뇨병치료제 ‘듀비에정’, 대원제약 골관절염치료제 ‘펠루비정’ 등이다. 여기에 현재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하는 국산 신약이 가세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의 먹거리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우리나라 신약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2000년 초반까지 복제약, 개량신약 생산에 머물러 있었다. 신약 연구개발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따라 100년이 넘는 한국 제약 역사에서 순수 국내 제약업체가 개발한 신약은 30여개에 불과하다. 지난 2018년 ‘알자뷰주사액’과 ‘케이캡정’이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엑스코프리)이 제약·바이오 업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됐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엑스코프리 판매를 허가했다. 엑스코프리는 국내 첫 100% 독자 개발 신약이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허가에 이르기까지 해외 제약사의 도움 없이 국내 기업이 독자 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신약 개발을 완주하는 대신 해외 기업에 기술을 수출하곤 했다. 기술 수출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전임상이나 임상 초기에 해외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이뤄진 기술수출은 총 14건으로 2018년에 비해 58.6%나 증가했다. 신약 개발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뿐더러 성공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무려 18년이란 기간 동안 기술수출 없이 엑스코프리를 개발해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에서 김태억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사업본부장은 “신약개발은 개발시작부터 시장출시까지 대략 13~15년이 소요되는 가장 대표적인 미래지향적 사업”이라며 “수많은 경쟁자들과 장기간에 걸친 개발경쟁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의 장기 프로젝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지속적인 지원 때문이었다. SK는 1993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신약을 선정하고 복제약이 아닌 국산 신약 개발에 매진했다. 신약 개발은 복제약에 비해 고위험 사업이다. 최 회장은 바이오 사업부문을 그룹 직속으로 두는 등 신약 개발을 독려했다.

또한 SK바이오팜은 자체 판매망을 통해 미국 제약시장에 도전하는 첫 번째 국산 신약이다. SK바이오팜은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엑스코프리미 미국 직판에 나설 계획이다. 미국 기업이 대신하는 영업 및 마케팅은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자체 개발한 국산 신약을 내놓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로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담당한다. 현재 유럽,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중인 바이오시밀러들은 지난해 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에 만족하지 않고 2017년부터 일본 다케다제약과 공동으로 급성 췌장염 치료제를 개발해 오고 있다. 현재 후보물질 임상 1상 시험을 마친 상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처럼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늘어가는 추세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신약 후보 물질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특정 부서를 스핀오프하거나 신규로 자회사를 만든다. 최근 대웅제약은 이온채널 플랫폼 기술 전문 ‘아이엔테라퓨틱스’를 스핀오프 방식으로 출범시켰다. 지난 2016년에는 SK케미칼이 신약 개발부서를 스핀오프해 항암제와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티움바이오를 설립했다. 지난해 일동홀딩스는 아이디언스를 신규 설립했고 같은 해 안국약품도 빅스바이오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세계 3대 암학회에 참여하는 등 국산 신약을 홍보하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에는 GC녹십자, 한미약품, 유한양행, 에이치엘비 등이 신약 파이프라인과 임상 데이터를 소개했다. GC녹십자는 목암생명과학연구소와 공동개발 중인 표적 항암 신약 ‘GC1118’의 임상 중간 결과를 발표했고, 한미약품은 경구용 항암신약 오락솔 혈관육종 임상 2상 중간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6월에 열린 미국 암학회에는 유한양행, 종근당, 보령제약 등 국내 제약사가 여럿 참가했다. 유한양행은 에이비엘바이오와 함께 항암치료 신약으로 개발중인 면역항암 이중항체 후보물질 'YH32367(ABL-105)'의 전임상 효능시험 결과를, 종근당은 항암 이중항체 바이오 신약 'CKD-702'의 전임상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보령제약은 연구개발 중인 항암신약후보물질 'R101801' 전임상 결과 일부를 발표했다. 이달 19일에 개최한 유럽종양학회에서도 유한양행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참가해 신약 개발 성과를 공개했다.

제약·바이오 분야가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전망되자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지난 21일 정부는 '그린바이오 융합형 신산업 육성방안'을 선보였다. 현재 4조5000억원 규모인 시장을 2030년 12조300원까지 키우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일자리 4만7000개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린바이오 산업 발전을 통해 신시장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갈 혁신성장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린바이오 융합형 신산업을 위한 5개 과제를 제시했다. △그린바이오 분야 핵심기술 선정 및 육성 △그린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그린바이오 관련 기반(인프라) 구축 △그린바이오 기업 전주기 지원 △그린바이오 융합산업 생태계 구축 등이다. 이 같은 5대 과제를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장과 토양 등 미생물 연구) △대체식품·메디푸드 △종자산업 △동물용 의약품 △생명소재 등 5대 산업을 키울 방침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코로나 K-방역 성과에 따른 '코리아 프리미엄'에 힘입어 실제 K-바이오 수출투자도 증가하고 있다”며 "K-바이오를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경제 '일등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가속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첨생법)도 국산 신약 개발 및 생산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첨생법은 바이오의약품 관련 연구가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심사기준을 완화해주는 법안이다. 바이오의약품은 다른 의약품보다 먼저 심사를 받으며, 2상 임상만으로도 의약품 시판을 조건부로 허가받을 수 있다.

정부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허들을 낮춘 것은 현행 의료법·약사법의 허가·안전관리 제도가 합성의약품을 중심으로 설계돼 바이오의약품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후진적 제도가 첨단의약품 개발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첨생법 시행으로 (바이오의약품) 개발 허들이 낮아지고 개발기간도 단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산 신약 개발에 대한 환상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본부장은 신약 개발 선행 조건으로 주요 성장장벽, 세계적 첨단 트렌드를 넘어서 차세대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 연구분야, 기업유형별(대기업, 벤처기업) 글로벌 성장모델 등을 충분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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