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의 법과 영화 사이] 상속의 자유와 유류분
기사입력 2021-11-18 14:07:41
  •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은 영화 ‘레인맨’에서 자폐증 환자를 연기하면서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남우주연상 외에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그해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특히 이십대의 미남 스타로 주목받던 톰 크루즈가 관록의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공동주연을 맡아 그에 못지않은 명연기를 선보인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 찰리(톰 크루즈)와 레이먼드(더스틴 호프만)는 형제지간이지만 형인 레이먼드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까닭에 어느 날부터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가족간 왕래조차 없었던 찰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자신이 고작 자동차 한 대와 장미 몇 그루만을 상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유언장에 분노한 찰리는 상속재산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아버지가 남긴 300만달러가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형 레이먼드에게 상속된 사실을 알게 된다. 찰리가 형의 돈을 나눠 가질 목적으로 레이먼드를 병원밖 세상으로 이끌어내면서 두 형제의 낯선 동행이 시작된다.

차갑고 이기적인 성격의 찰리는 어릴 적 자신이 무서워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주던 상상의 친구 레인맨을 기억하고 있다. 형과의 동행 속에서 찰리는 그저 상상 속 친구로만 생각했던 레인맨이 바로 형 레이먼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형이 어린 시절 병원으로 보내졌던 이유가 바로 어린 자신을 다치게 할 뻔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갑기만 하던 그의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이처럼 찰리는 형과의 만남을 통해서 거액의 유산 이상의 가치들을 발견해간다.

고인의 유언장으로 인해 상속인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은 영화에서 즐겨 사용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영화 레인맨처럼 장남은 300만 달러를 물려받는데 반해 차남은 겨우 차 한 대를 물려 받는 극명한 차이는 우리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언의 자유가 거의 절대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유류분 제도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재산을 말하는 것으로, 피상속인의 유언보다 우선한다. 민법은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분의 1/2, 직계존속과 형제자매의 유류뷴을 법정 상속분의 1/3로 규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전 재산을 A에게만 남긴다고 유언을 하였더라도 법정 상속인인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최소한 법정상속분의 1/2에 해당하는 가액을 유산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피상속인의 자유는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유류분은 1977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로 가족 내 약자가 상속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마련되었다. 가부장제 하에서 장남이 전 재산을 물려받거나 딸이 상속에서 제외되는 등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였다.

유류분 제도가 장남 위주의 상속문화를 개선한 측면은 무시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려는 개인의 의사를 제약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적인 예로 부모 입장에서 불효막심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을 자유나, 최소한의 부양책임도 저버린 무책임한 부모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을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한계는 사실상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유류분 제도를 폐지하거나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최근 법무부는 이러한 유류분 제도를 일부 손보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유류분에서 형제자매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것이다. 형제자매가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유류분 제도를 정비하는 첫 시도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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