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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 & Sure의 외나무다리'를 건넌 브라이슨 디샘보!
방민준 2021-03-08 15:50:09
브라이슨 디섐보가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최종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가 호수를 가로지르는 장타 쇼를 펼치며 PGA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PGA투어 통산 8승째다.

그의 우승이 값진 것은 모두가 돌아가는 베이힐 클럽&롯지(파72·7,454야드)의 6번 홀(파5)에서 원 온을 시도해 거둔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골프선수의 범주에서 벗어나 매우 특별한 구도자(求道者)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 골퍼의 영원한 화두인 ‘Far & Sure(멀리 그리고 정확히)’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선수의 한 명으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골퍼라면 누구나 ‘Far & Sure’를 꿈꾼다. 그러나 ‘Far & Sure’는 좁디좁은 외나무다리다. 어느 한쪽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한쪽이 무너진다. 둘 다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극히 드물다.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선 그때그때 중도(中道)를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멀리’와 ‘정확히’를 양립시키려는 골퍼들의 열망은 그야말로 열망(熱望)일 뿐이다. 극히 드물게 ‘멀리’와 ‘정확히’ 두 마리 새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행운이라 봐야 옳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과연 ‘필드의 철학자’ 다웠다. ‘Far & Sure’를 추구하되 중도를 잃지 않는 지혜와 냉철함을 보여주었다.

디섐보의 파 5홀 원 온 도전을 보며 프랑스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66년 거장 클로드 를루슈가 감독하고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 트린티냥이 출연한 이 영화는 아이들의 기숙학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젊은 과부와 홀아비의 이야기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대화들, 천연색과 흑백, 세피아 색조가 빈번히 전환되는 스크린플레이, 중독성 강한 프랑시스 레이의 주제음악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고 주요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나는 이 영화를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카 레이서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는 내용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정확한 대상 내용은 복원할 수 없지만 ‘레이싱 트랙을 달릴 때 속도가 시속 00.0마일 이하이면 뒷차에 추월 당하고 00.0마일을 넘으면 전복된다. 추월 당하지 않으면서 전복되기 직전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레이서의 기술이다.’라는 내용이다.
골프에서의 ‘Far & Sure’ 개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 주말 골퍼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Far or Sure’(장타이거나 정확하거나)다. 체형이나 기질에 따라 ‘Far than Sure’(정확도 보다는 멀리) 혹은 ‘Sure than Far’(멀리 보다는 정확도)를 추구한다. 장타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몇 번 실수하더라도 한번 제대로 맞추면 되기에 ‘Far than Sure’에 속하겠다. 처음 골프를 익히는 사람들은 ‘Far but Sure’에 해당될 것이다.

한 경지에 올라야 ‘Far & Sure’를 추구할 수 있다. 그것도 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바로 추락 없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지혜다.

디섐보가 이번 대회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이 열린 베이힐 클럽&롯지의 6번홀(위). 최종일 이 홀에서 경기하는 브라이슨 디섐보가 2021년 우승을 차지했다(아래).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문제의 베이힐 클럽&롯지의 6번 홀은 거대한 호수를 끼고 왼쪽으로 휘어진 홀로 보통은 호수를 피해 오른쪽 페어웨이를 거쳐 2온을 노린다.

이 홀은 공식적으로 555야드지만 티잉그라운드 조정으로 최대 590야드까지 늘어날 수 있다.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거리다. 그린까지 직선거리가 350야드 정도다. 디섐보로선 원 온이 가능한 거리다.

그는 대회 출전 신청을 하면서 6번 홀에서 반드시 1온을 시도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연습라운드에서 두 차례 1온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실패 원인을 맞바람 때문”이라며 “바람이 도와준다면 본 경기에서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실전에 들어간 그는 1, 2라운드에서 1온을 시도하지 않았다.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갤러리들이 간절히 그의 1온을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휘둘리지 않았다. 

맞바람이 안 분 3, 4라운드에선 1온을 택했다. 3라운드에서는 531야드, 4라운드에서는 565야드로 세팅됐다.

디섐보는 3라운드 6번 홀에서 드라이버로 370야드를 날려 거의 원 온에 성공해 쉽게 버디를 챙겼다. 4라운드에선 무려 377야드를 날려 원 온에는 실패했지만 페어웨이 벙커에서 쉽게 버디를 건졌다.

이 홀에서 1온을 시도한 선수는 디섐보가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이 대회 마지막 라운드 6번 홀에서 존 댈리가 1온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이 물에 빠졌다. 댈리는 포기하지 않고 물가 앞까지 가서 드롭 후 계속 쳤으나 거푸 실패했다. 6개의 공을 물에 수장시킨 후 그는 그린에 직접 가는 걸 포기했다. 

7번째 공, 즉 13타째 공은 오른쪽으로 돌아 경사에 맞고 다시 물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물에 빠진 곳 근처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15번째 샷은 바위에 맞고 그린 사이드 벙커에 들어갔다. 결국 16타 만에 그린에 올렸고 2퍼트로 홀 아웃, 이 홀에서만 13오버파 18타를 쳤다.

1528년 골프의 최초 발원지를 놓고 스코틀랜드 왕 찰스 2세와 제화공 존 페더슨, 잉글랜드의 귀족 2명이 각각 한팀이 되어 골프시합을 벌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뒤 찰스 2세가 제화공에게 많은 상금과 함께 ‘Far and Sure’라는 문장이 들어간 상패를 주었다. 이후 지구촌 골퍼들의 가슴 속엔 물론 시카고골프클럽, 로열 리버풀골프클럽 등 유명 골프클럽의 문양에 불멸의 화두로 남아 있다. 

‘골프(Golf)’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의 구어(舊語)인 ‘Goulf’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만약 존 페더슨이 시합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의 ‘골프’라는 단어가 잉글랜드식 구어인 ‘커프(Cuff)’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드의 구도자’ 브라이슨 디섐보의 ‘Far and Sure’를 향한 순례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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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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