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전체메뉴 한국아이닷컴
'장타'와 '정타'의 갈림길에 선 그대에게
방민준 2021-03-11 07:33:47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장타자인 브라이슨 디섐보가 2021년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좌), 존 댈리가 1999년 마스터스(우)에 출전했을 때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는 남을 속이고 자신까지 속이려 드는 악마와 벌이는 싸움이자 장타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경기다.

골프에서 드라이버샷은 가히 쇼라 할 만하다. 동반자와 뒷팀이 지켜보는 가운데 날리는 장쾌한 드라이버샷은 “굿 샷!”이란 탄성과 박수를 자아내며 당사자는 물론 보는 사람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더구나 제대로 날아 페어웨이엔 안착한 드라이버샷은 편안한 세컨드 샷과 좋은 스코어까지 보장해준다. 이러니 골프채를 잡은 사람이라면 장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골퍼가 장타를 원한다. 그러나 모두가 장타를 날릴 수는 없다. 이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골프의 묘미를 더해주는 요인의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장타의 조건은 일정하지 않다. 좋은 신체조건에 헤드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스윙을 터득한 사람들이 장타를 날리지만 단신이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스윙 비법으로 장타를 만들어내는 골퍼도 있다. 
‘Far and Sure’(멀리 그리고 정확하게)가 모든 골퍼들의 필생의 화두지만 PGA나 LPGA의 톱 랭커들도 이 화두를 통달한 경우는 드물다.

주말골퍼들의 경우 장타는 정확도가 보장될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장타(長打)와 정타(正打)는 동행하기 어렵다. 장타자는 그만큼 OB를 내거나 러프 또는 해저드에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비거리가 짧은 골퍼는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뛰어나 미스 샷의 확률이 낮고 스코어도 좋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골퍼라면 누구나 장타를 추구하는 것은 그 쇼적인 묘미 때문이다. ‘드라이브는 쇼이고 퍼트는 돈이다’란 말이 있지만 웬만한 주말골퍼들은 쇼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지금은 브라이슨 디섐보(27)를 비롯해 350야드 전후를 날리는 선수가 많지만 1990년대 장타자로 말하면 존 댈리와 타이거 우즈를 빼놓을 수 없다. 

1991년 PGA 투어챔피언십에서 25살의 존 댈리는 3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샷을 날려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메이저대회 사상 가장 긴 코스(7,289야드)였던 이 대회에서 댈리가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평균 304야드에 달한 드라이버샷과 남보다 30% 이상 긴 아이언샷이었다. 그는 1990년 2부 투어에서 379야드의 드라이버샷을 날렸는데 이는 당시 미국 장타대회의 기록보다 긴 것이었다.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도 300야드가 넘으면서도 정확도 높은 드라이버샷과 긴 아이언샷이 그 신화의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장타와 정확도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댈리가 바로 그 장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듯 많은 아마추어 장타자들이 장타 때문에 좀처럼 흡족한 스코어를 내지 못하고 장타에만 만족하고 있다.

장타를 부러워하는 단타자들은 대신 정확도로 장타자의 허풍을 비웃으며 자위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장타자는 본질적으로 장타자의 장점과 함께 숙명적인 핸디캡을 떠안아야 한다. 장타자는 ‘홀에서 볼이 멀리 떨어진 사람 순으로 샷을 한다’는 규칙 때문에 남보다 늦게 세컨드 샷을 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장타자에겐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먼저 친 누군가가 볼을 핀에 가깝게 붙여버리면 더 가깝게 붙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피할 수 없다. ‘짧은 드라이버샷을 날린 사람이 저렇게 붙였으니 더 가까이 붙이지 못하면 무슨 창피람’하는 생각이 안 날 수 없다. 이 때문에 장타자의 세컨드 샷이 좋은 샷이 될 확률은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 ‘350클럽’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 드라이버샷을 350야드 이상 날리는 골퍼들만 가입할 수 있는데 이들은 드라이버로 쇼를 벌여 돈을 벌기도 했다. 9번 아이언으로 180m를 날릴 정도로 장타자들인데도 이들 중 프로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런 장타자들을 두고 골프평론가들은 ‘니옵(NIOP)’이란 별명을 붙였다. ‘지성은 없고 힘만 있는 타자’(No Intelligence Only Power)라는 뜻이다.

지난 5~8일(한국시간) 미국 올랜도의 베이힐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브라이슨 디섐보가 파5 16번 홀에서 원온을 시도해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존 댈리는 1998년 같은 홀에서 18타를 치는 진기록을 세워 장타에만 매달린 선수의 바닥 모를 추락을 보여주었다.

왼쪽으로 휜 도그렉 코스를 공략하던 그는 드라이버샷이 물에 들어가자 스푼을 들고 페어웨이를 노렸으나 무려 5개의 볼을 물에 빠트렸다. 7번째 샷(제 13타)은 겨우 페어웨이에 떨어진 듯 했으나 헤저드에 걸려 드롭을 할 수밖에 없었고 6번 아이언으로 친 15타마저 벙커에 떨어져 16타 만에 그린에 볼을 올렸다. 결국 18타로 홀아웃을 했다.

장타자는 타고 난다. 좋은 신체조건에 이상적인 스윙을 터득했다면 장타가 보장된다. 불리한 신체조건을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장타 훈련을 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교한 샷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다. 장타를 날릴 수 없다면 정교한 샷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골프에서 승리는 가장 멀리 친 사람이나, 가장 멋진 샷을 날린 사람이 아니라, 나쁜 샷을 가장 적게 한 사람의 몫이다. 장타는 추구는 하되 장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퍼트에 관한 한 샘 스니드를 무색하게 한 남아공의 프로골퍼 바비 로크는 “장타의 유혹에 이길 때에만 골프 명인이 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추천 기사: 11일 개막 'KPGA 윈터투어 최종전' 관전 포인트 3가지

추천 기사: 돌아온 임성재·김시우,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도전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즐겨찾기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카카오톡 공유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