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늦장 계약 논란…병상 없어 숨지는 사례 속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5부 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정부는 백신 개발사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000만명 분을 도입하는 계약을 했고 지난 24일 얀센 백신 600만명 분, 화이자 백신 1000만명 분 계약을 마쳤다. 하지만 얀센 백신은 내년 2분기부터, 화이자 백신은 내년 3분기부터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작용이 우려돼 백신 도입에 신중을 기한다는 입장이지만 논란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총리 등 5부 요인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백신 늦장 도입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2일 간담회에서 “그동안 백신을 생산한 나라에서 많은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밝혔다. 백신 도입 계약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가피성을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백신 생산국이 아닌 중동은 물론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가 속속 백신 접종에 돌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백신을 정쟁화하는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 탓을 하고 있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 각국 백신 확보 속 싸늘한 여론

전 세계가 1년 내내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국은 비교적 방역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 정부도 ‘K방역’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공개적으로 반복하면서 방역에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연말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세지자 정부는 급기야 사실상 3단계에 준하는 방역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국·미국·캐나다에 이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연내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로 했고 일본도 화이자·모더나 백신 8500만명 분을 확보해놓고 곧 접종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도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상당 수준 확보하면서 국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K방역 성과로 인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보건 당국을 향해 “백신 물량을 추가 확보해 여유분을 가질 수 있도록 재정적인 부담이 추가되더라도 계속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도 최근 외교부와 국정원 등 외교안보라인을 총동원해 백신 확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당연히 야당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3일 문 대통령이 올해 10차례 이상 코로나 백신확보를 지시했다는 청와대 주장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청와대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수시로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날 공개한 문 대통령의 백신, 치료제 관련 발언은 지난 4월 9일 이후 12번이었다. 9월에는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는 지시도 있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대통령이 10번도 넘게 지시해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말을 안 들어먹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냐”며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으로 정부의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청와대는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하길 바란다며 정면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 백신 접종이 특별히 늦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거듭 강조하는 동시에 백신의 정쟁 중단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적절한 과정을 통해 확보되고 있는데 일부 언론과 야당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문 대통령이 백신 확보에 손 놓은 것처럼 과장·왜곡해 국민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환자 병상 부족, 선제적 대응 아쉬워

코로나19 확정 판정을 받고 병상을 기다리다 숨진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백신 확보도 문제지만 연일 100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로 인해 현재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부족한 상황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전국에 즉시 이용 가능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은 42개(지난 23일 기준)라고 밝혔다. 이 중 전체 확진자 70% 이상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는 12개가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는 8개, 경기 3개, 인천 1개가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수도권 외 대전, 충남, 전북, 경북에는 즉시 입원 가능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1개도 남아 있지 않다는데 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3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전국에 104개, 수도권에 53개를 추가로 지정할 예정”이라며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즉시 활용 가능한 병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미 정부는 지난 18일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에 허가 병상 수 1%를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으로 확보토록 명령한 바 있다. 윤 방역총괄반장에 따르면 서울 아산병원은 22개 병상을, 연세대학교·세브란스 병원은 20개 병상을, 삼성서울병원은 14개 병상을 연말까지 추가 확보키로 했다. 또한 경희대병원, 인하대병원, 조선대병원은 목표 병상 수 100%에 해당하는 숫자의 병상을 이미 확보했거나 확보할 예정이다.

중환자 병상 외 중등증·경증 이하 환자를 위한 병상은 전국 7000여 개, 수도권 5200여 개 가량의 여력이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이에 더해 약 400여 개의 대규모 병상을 신속하게 추가 확보키 위해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갖춘 민간의료기관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총 142억 원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진 후 집에서 대기하다가 병상 부족으로 숨지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국민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보건 당국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병상 확보 계획을 선제적으로 세워놨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는 지난 8월 확진자 급증 시 가동할 ‘단계별 병상 동원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바 있지만 정부의 후속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래 지난달 시작된 제3차 대유행은 이전 어느 때보다 파고가 높아 현재 하루 1000명 내외 확진자가 지속 발생하고 있는 매우 엄중한 시국”이라며 “의료진들의 피로 누적과 병상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응급의료체계 붕괴가 눈앞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의료자원이 집중되면서 12월 현재 예년에 비해 전체사망률이 약 6% 상승 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병상이 부족해 코로나19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숨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부족했던 중환자 병상은 여러 민간병원 협조에 힘입어 조만간 부족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정부는 그간 1만 병상 확충을 목표로 정하고 현재까지 8000여개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