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한' 중대재해법에 노동·경영계 '돌격태세'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기사입력 2021-01-10 09:05:13
공무원 등 법적용 제외 대상 확대…솜방망이 누더기법 전락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막강한 권력을 가진 거대 정당이 애매한 철학과 신념을 띄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국민의힘이 힘을 더해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법안이 마련되자 경영자는 물론 노동자도 “이러다 더 죽겠다”며 아우성이다. 심지어 법 제정에 앞장선 여당마저 찝찝함을 감추지 못한다. 민주당은 후속작업을 서두르겠다고 밝혔지만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후퇴, 또 후퇴…누더기가 된 법

  • 국회 본회의
“산재 사망사고 같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민주당 내 이견은 없다.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꼭 처리하겠다. 관련법들이 제출됐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진행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인터넷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민주당에서 제출한 중대재해법은 박범계·박주민·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3건(초안)이었다. 제각각 나온 법안인 만큼 일부 사항의 차이가 있긴 했으나, 산업 현장의 관리·감독 주체인 정부 및 지자체 공무원 처벌은 공통적으로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크게 달랐다. 처벌 대상에 공무원이 빠졌다. 학교도 제외됐다.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5인 미만 규모는 처벌을 피해갔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3년 유예기간을 뒀다. 노동자가 아닌 일반 시민 피해, 즉 ‘중대시민재해’를 야기할 수 있는 점포의 경우 ‘10인 미만에 연 매출 10억 원 이하’ 그리고 ‘점포 규모 1000㎡(302.5평) 미만’ 자영업자가 법 적용 대상의 예외가 됐다.

처벌 수위도 낮아졌다. 사망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결정됐다. 초안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상의 벌금'이었다. 손해배상액은 손해액의 5배 이하로 결정했다. 초안은 ‘5배 이상’ 혹은 ‘3배 이상 10배 이하’였다.

산재를 팽팽하게 묶으려 꺼내든 끈이 결국 느슨해진 형태로 매듭지어진 것이다. 자연히 민주당의 말도 묘하게 달라졌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법 통과 당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 데 일단 의미를 두고 싶다”며 “부족하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앞으로 계속 보완, 개선해 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거론한 ‘여야 합의’에서 정의당은 빠졌다. 정의당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주장하며 임시국회 마지막 날에도 피켓시위에 나섰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부 부처와 재계의 민원 심의를 통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재탕됐다”며 “이번 법안은 ‘중대재해 살인방조법안’이고 ‘중대재해차별법’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노동계 “나라 꼴 아는 거냐”

경영계 “기업들 공포 느껴”


  • 국회 본회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8일 저녁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본회의 통과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열린 농성단 해단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연합뉴스)
재계와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처벌대상에서 제외된 점 등을 들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알고 있는 거냐”고 항변했다. 민주노총은 “전체 사업장의 8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600만 명에 달한다”며 “이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재해사망이 전체사망의 20%를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494명에 이른다. 2017~2019년 전체 산재 피해자 30만 명 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는 32.1%다. 사망자 비중만 놓고 보면 전체 사망자 약 6000명중 1400여명(22.7%)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했다.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울분을 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중대재해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해왔다. 김씨는 “국회의원들은 우리 입장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고, 우리 심정을 모른다”며 “국회가, 기업이, 그리고 공무원이 너무 썩었다는 걸 알았다”고 규탄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한 후 사고 발생 시 중한 형벌을 부여해 기업들을 공포감에 떨게 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별제정법인데도 국회는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단기간에 입법했다”고 문제를 삼았다.

후폭풍으로 민주당 스스로 덫에 갇힐까

  •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제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런 탓에 민주당은 자칫 중대재해법 덫에 걸릴 소지가 생겼다. 기업과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는 물론 정의당 등 국회 안에서도 관련 사항을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재계는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의 보완입법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전망이다. 경총 관계자는 “경영책임자와 원청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보완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이르면 1월 셋째 주쯤 이를 포함한 보완대책을 정리해 요구에 나설 수 있다”고 <주간한국>에 전했다.

그와 반대로 노동계는 처벌의 대상 및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일제히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 가운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7일 국회에서 백혜련(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장)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백 의원이 “사실 5인 미만 사업주는 거의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그래서 50인 미만 사업장(전체)에 유예기간을 두고 정비하라는 것”이라며 “법조문에서 제외한다는 것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되물었다.

정의당도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정의당 원내 한 당직자는 “당장은 통과된 법에 따른 사각지대와 부작용 등을 발굴 및 취합하고, 정부의 준비 작업 등에 대해서도 날선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행보도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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