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살인 성범죄 vs 팬덤 바탕 허구의 창작물 본질보다는 젠더갈등적 요소도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오른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19일 오전 남성 아이돌을 소재로 한 성착취물 알페스·섹테(섹스테이프) 제조자 및 유포자 수사의뢰서를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새해 벽두부터 불붙기 시작한 이른바 ‘알페스’ 논란이 뜨겁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가 하면 ‘알페스 이용자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20만 명을 넘어섰다.

알페스는 영문 ‘알피에스’(RPS:Real Person Slash.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허구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줄인 말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허구의 애정 관계를 다룬 글이나 그림 등의 창작물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팬픽’ 문화에서 시작됐다. 이 팬픽은 주로 남성 아이돌의 동성애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현재는 그림이나 영상 등 2차 콘텐츠로까지 확장됐다. 일부 콘텐츠에는 수위가 높은 성적 묘사나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전부터도 논란의 소지는 있어왔다.

알페스 논란, 챗봇 ‘이루다’ 성희롱 논란과 함께 촉발

일부 팬덤 문화로 존재했던 알페스는 최근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관련 논란과 함께 촉발됐다. 일부 이용자들이 이루다에게 성적인 암시를 담은 대화를 학습시켜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법’ 등을 공유하는 행태가 비판의 대상이 되자 일부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 이용자들이 즐기는 알페스 문화 역시 성범죄라고 제기한 것이다. 남성 이용자들이 많다는 의미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알페스가 실제 인물에 나체 사진이나 영상 등을 합성하는 ‘딥페이크’에 가까운 성범죄라고도 주장했다. 이처럼 ‘젠더(성) 갈등’의 성격에서 불거진 알페스 논란은 여러 논쟁거리를 불러일으키며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알페스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하다. 콘텐츠의 내용을 따져볼 때 디지털 성범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시각과 팬덤에서 시작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성범죄의 성격과는 다르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하태경 “알페스는 하드코어 포르노와 비슷…보완입법 필요”

국민의힘의 하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알페스와 아이돌 목소리를 이용한 ‘섹테’(Sextape)의 제조자 및 유포자 110명을 처벌해 달라는 수사의뢰서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제출했다. 하 의원은 “(알페스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하드코어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이는 인격살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력처벌특별법을 보면 동영상은 처벌하게 돼 있다. 알페스는 주로 그림이나 글로 돼있지만 형식의 차이일 뿐 내용은 거의 하드코어 포르노 비슷한 수준이다. 조만간 이를 보완하는 입법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이용자 처벌’ 청원은 게재 사흘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몇몇 연예인들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지난 13일 비와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하며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안되지. 알페스는 성범죄다”라고 강조했다. 손심바 등 래퍼들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페스는 성착취’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알페스 문화, 태생부터 성범죄와는 다른 허구의 창작물"

이처럼 이용자에 대한 처벌 요구는 알페스를 성범죄와 동일시하는 시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알페스 문화는 아이돌 팬들 위주로 형성된 허구의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음란물인 딥페이크 방식의 디지털 성범죄나 ‘N번방 사건’과 같은 성착취 범죄와 동일 선상에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알페스가 동경 어린 시선이 섞인 팬덤에서 시작했다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론이다. 알페스 문화는 권력을 통해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지배하는 범죄적인 성격이 아니라 반대로 선망과 경외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범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알페스는 허구 공간에서의 창작물이 현실에서의 성착취나 성구매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허구적 창작물이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명예훼손과 성범죄 사건을 담당한 한 변호사는“딥페이크는 실존인물에 음란물을 합성해 명백히 불법이나 알페스는 허구 형식을 띠고 있어 성범죄의 직접적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물론 당사자의 문제제기가 있을 경우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페스 논란은 성범죄 관련 우려보다는 젠더 갈등적 요소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논란 또한 일부 남성 이용자들에 의한 ‘이루다 성희롱’ 논란이 일자 ‘여성들의 성희롱도 많다’며 맞불처럼 제기됐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입장이 곤란해진 이들도 있다. 알페스의 대상이 된 연예인들의 기획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알페스 문화는 이미 기획사들도 잘 인지하고 있던 사안이며 한편으로는 마케팅적 으로 이용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팬 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기획사도 있다. 비와이의 소속사 데자부그룹은 알페스를 두고 “성적 수위가 매우 높고 동성간 잘못된 성행위 그림 등이 포함돼 있어 팬 문화 중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하며 “공론화를 통해 이 문화가 과연 정당한지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