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HDC현산,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법 위반 반복/ 공기 단축 핑계로 답습…고발조치까지 이어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의 건전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필수로 자리매김한 배경 중 하나는 이른바 ‘필(必) 환경’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건설사들은 이와 같은 흐름을 좀처럼 못 따라가는 모양새다. 국내 주요 건설사의 공사장 관리 실태가 여전히 구태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현장은 시민들의 일상 공간과 가까운 경우가 많아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에 건설사들도 대외적으로는 ‘스마트건설’ 등을 통해 흙과 먼지 오염물질 발생을 줄이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여전히 전국 곳곳의 공사 현장에서 환경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횡행하고 있다. 처벌수위 강화 등을 담은 관련법의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와의 약속도 무용지물

미세먼지 문제가 한창이던 2019년 1월. 는 국내 주요 건설사 11개사와 고농도 미세먼지를 자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시 건설사는 공사시간을 조정·단축하는 등 환경 개선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게 골자다. 당시 협약에는 대림산업, 대우건설, 두산건설, 롯데건설, 삼성물산, SK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참여했다.

환경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다수 산업현장이 가동을 중지, 또 차량 등의 이동량도 감소한 영향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적이 없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여전히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법을 위반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ESG 경영’, ‘그린뉴딜’ 등 친환경 가치의 중요성이 커가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설사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주간한국>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지역 지자체에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다수의 건설사들이 최근까지도 공사 현장에서 여러 차례 환경법을 위반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장에서 대기환경보전법·소음진동관리법·건설폐기물법 등을 어겨 행정처분을 받은 일이 수백여 차례에 달했다. 특히 손 꼽히는 시공능력을 자랑하는 대형 건설사들도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롯데건설은 지난달에만 화성시에서 대기환경보전법, 부산시에서 소음진동관리법 및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인한 행정처분 통지서 3장을 수령 받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경기 파주시(대기환경보전법), 부산시(소음진동관리법)에서 환경법 위반 행정처분을 받았다. 태영건설도 경기 남양주시와 경북 경주시에서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해 행정처분 통지서를 수령했다.

과태료 내고 공기 단축 선택

공기업인 LH도 심각

이 정도면 그나마 양호한 편에 속한다. 더 큰 문제는 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일이다. 일부 지자체는 위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건설사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환경부가 2016년부터2020년 6월까지 건설폐기물법 위반 업체 현황을 조사한 결과.(자료=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현대건설과 HDC현산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현장 한 곳에서만 각각 30차례, 35차례씩 소음진동관리법을 어겼다. 해당 아파트 공사는 두 회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진행하고 있다. 강남구에 따르면 개포동 주민들은 현대건설과 HDC현산이 공사 중 일으키는 과도한 소음 및 진동에 지속적으로 항의해 왔다. 이에 강남구는 지난달에만 과태료 200만 원의 행정처분을 매주 양사에 통보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림산업은 경기 화성시로부터 고발조치까지 당했다. 대기환경보전법 중 중대한 사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화성시 관계자는 “구체적인 위법 사항을 확인해주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환경법 위반으로 인한 고발조치는 자연히 행정처분보다 더 강한 처벌이 요구될 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대림산업의 경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고발장과 함께 지자체의 진술서 및 법 위반 확인서를 경찰에 제출한 상태”라고 전했다.

대우건설도 실태가 심각하다. 지난달 충남 아산시와 서산시에서 각각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이 적발된데 이어 경기 용인시(17차례)와 부천시(16차례)에서 소음진동관리법을 반복적으로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참고로 대우건설은 지난해 10월 23일 건설폐기물법을 위반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김형 대우건설 사장이 같은 해 국정감사(10월 7일)에 출석해 “더는 건설폐기물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지 약 보름 만에 사태가 재발했던 셈이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갖춘 자본의 규모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200만 원 수준의 과태료 등을 감당할 여건도 비교적 충분하다”며 “자연히 행정처분에 따른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처분이 가져다 줄 기업 이미지 실추 및 과태료 지불 등의 손해보다, 기존의 관성대로 작업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관리감독 기관의 시각도 비슷하다. 서울시의 모 구청 공무원은 “건설사가 공사장 환경법을 준수할지 여부조차도 경제논리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주변에 주택이 많거나 교통이 활발할수록 민원도 많이 따르는 편인데, 이는 즉 해당 공사장의 입지가 그만큼 좋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과태료를 내더라도 건설사들은 공사 끝맺음에 의미를 두더라”고 전했다.

이익만큼이나 공익적 가치도 중시해야 할 공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가 2016년부터2020년 6월까지 건설폐기물법 위반 업체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 중 건설폐기물법을 가장 많이 어긴 곳은 다름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였다. 이 기간 LH의 해당 법 위반 횟수는 92회에 달했다. LH는 특히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장으로 재직한 공기업이기도 하다. 이어 대우건설(69회), GS건설(58회), HDC현산(53회), 현대건설(51회) 등의 순이었다.

“가중처벌 규정 재정비해야”

대형 건설사의 법 위반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 중견건설사의 현장관리 책임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공무원에게 적발되는 것 역시 민원에 의한 현장점검 때 주로 이뤄지는데, 실제로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위반 사례는 더 많이 확인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행정처분 받을 일을 계속 하는 것은 작업의 최대 주안점이 공사기간 단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공사현장 모습. 흙먼지 및 일대 폐기물들이 쌓여 있지만 방짙덮개 등을 찾아볼 수 없다.(사진=독자 제보)
이러한 현실은 집단민원에 의한 행정비용 증가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부터 4년간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공사현장의 환경갈등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142건, 2017년 178건, 2019년 254건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 분쟁건수의 96%는 공사장 소음(진동, 먼지 포함)이 차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최근까지도 민원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처벌 수위 강화 등을 담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론되는 이유다. 수백 만원 정도 수준의 과태로 처분으로는 대형 건설사들의 거듭되는 관련법 위반을 막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태료 가중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건설폐기물법 등 환경법)위반이 누적된 업체에 가중처벌을 부과하는 법이 있지만, 이는 법인(본사)단위가 아닌 사업장(현장) 단위 적용으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가중처벌을 본사 단위로 적용해 실효성을 높이고 상습 위반 업체에 대한 처벌 규정도 형사처벌로 강화하는 시행령 마련을 정부에 제언했으며 관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