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나스닥 상장 러시 이후 한풀 꺾여
넥슨 일본 상장 후 시총 30조원 돌파

국내 온라인쇼핑몰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신청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상장 도전이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적자 기업인 쿠팡이 뉴욕 증시 진출을 선언하면서 해외 상장이 새로운 자본 조달 방식으로 성공 사례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의 미국 진출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상장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보다 유연한 시장에서 투자자들로부터 풍부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소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이 한국이 아닌 해외 상장을 추진중인 이유도 자금조달이 용이하고 차등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혁신기업의 가치를 높게 쳐주는 NYSE의 특성상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투자자금을 더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증권시장에서 허용하고 있는 차등의결권은 경영자에게 일반 주식보다 20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경영권 방어에도 유리하다. 국내에서는 상장과 동시에 차등의결권이 소멸되지만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신규로 상장할 때 창업주에게 차등의결권이 부여된다. 이처럼 쿠팡의 해외 상장이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쿠팡보다 앞서 해외 상장을 추진한 기업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기업 해외 상장, 2000년대 초반 ‘IT버블’로 러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상장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IT 버블’이 일어나며 몇 년간 IT 기업들의 나스닥 상장이 유행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나스닥에 진출한 기업 중 아직 남아있는 기업은 ‘온라인 1세대’ 게임회사 그라비티가 유일하다. 2005년 나스닥에 상장한 그라비티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게임흥행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2000년 설립된 그라비티는 이듬해 ‘라그나로크 온라인’ 이 성공하면서 글로벌 게임회사로 안착했다. 그라비티는 초반부터 해외 게임 시장에 주력하면서 나스닥에 상장했다. 지난해는 간판 게임 ‘라그나로크’ 파생작이 해외에서 성공하며 연결 매출 4060억원으로 2016년부터 5년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올해는 싱가포르 지사인 GGH(Gravity Game Hub PTE.,Ltd)를 설립하는 등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넥슨, 2011년 일본 상장 후 지난해 시총 30조원 돌파

게임사 해외 상장의 성공 역사를 잇고 있는 기업은 넥슨이다. 특히 넥슨은 최근 일본 넥슨에 사상 최대 배당(약 6561억원)을 해 화제가 됐다. 2011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넥슨은 지난해 매출 2930억엔(약 3조1306억원), 영업이익 1115억엔(약 1조190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8% 증가했다. 매출이 3조 원을 넘어선 것은 게임업계 전체를 통틀어 최초다.

넥슨은 지난해 12월 한국 게임 업체 최초로 기업가치 3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는 코스피 시가총액 1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넥슨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5월 2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7개월 만에 1.5배로 늘어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넥슨은 모회사를 일본에 두는 경영방식으로 해외진출을 꾀했다. 창업자 김정주 회장은 이 같은 경영 방식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일본 상장은 내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 중 일부”라며 “안정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일본을 그래서 선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외 경영이 한국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결정인 것이다. 넥슨의 성공사례를 비춰볼 때 앞으로 게임업계의 경우 여러 게임 관련 규제가 있는 한국보다 해외 진출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메신저 플랫폼 기업 라인은 2016년 7월 뉴욕과 도쿄 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했다. 당시 일본과 동남아에서 국민 메신저로 불릴 만큼 인기가 있었던 라인은 국내보다 일본 상장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라인은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10조원에 육박하는 등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라인은 야후재팬과 통합되면서 2019년 공모가보다 27% 높은 41.58달러에 상장폐지됐다.

이처럼 한국 기업의 해외 상장은 주로 IT기업 위주로 주력 소비자들의 특성과 경영 환경을 고려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 IT업계 붐이었던 나스닥 상장이 대부분 초라한 성적표로 끝나면서 한동안 해외 상장 러시는 잠잠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쿠팡의 미국 상장이 업계에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쿠팡이 기업의 미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해외로 눈을 돌리는 혁신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NH투자증권 이지영 애널리스트는 “쿠팡은 작년 매출 성장률 91%를 기록해 아마존의 38%와 이베이의 19%를 크게 추월한 데다 고객 충성도가 수직 상승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공지능(AI), IT까지 어우르는 토털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쿠팡이 높은 기업가치를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