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리. [넷플릭스]

총 제작비 240억 원 규모의 SF블록버스터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부들의 지구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그린다. 이 거대하고 투박한 우주선의 리더는 여성이다. 강하게 보이려 애쓰지 않는데도 미묘한 긴장감을 주는 인물. 장선장을 연기한 배우 김태리(31)는 “파격적인 이미지에 끌렸다”고 말했다.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늑대소년’(2012),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던 조성희 감독의 신작이다. 당초 지난해 개봉을 준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택했다.

“최초라는 말이 주는 설렘이 컸어요. 미래에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들이 있고,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과격해진다는 콘셉트가 흥미로웠죠. SF영화는 처음이라 어려운 지점도 보였지만 도전하고 싶었어요.”

김태리가 맡은 장선장은 비상한 두뇌와 남다른 리더십으로 승리호를 이끄는 인물이다. 위풍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걸크러시 그 이상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장선장은 UTS에서 엘리트로 키워진 똑똑한 아이예요. 군사 무기를 개발하는 핵심적인 일을 하다가 조직의 부조리를 겪고 밖으로 뛰쳐나왔고 지금은 승리호 선원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살아가죠. 한마디로 대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인물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큰 신념이 있달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가 있는 사람이죠.”

김태리는 ‘선장’이란 설정에 으레 떠오르는 강인한 남성 캐릭터를 흉내 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적들에게 레이저 건을 겨누는 장선장의 매력은 강렬하고 뜨거웠다.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벗은 변신이 파격적으로 다가오지만 김태리는 “그래서 더 끌렸다”고 강조했다.

“제 얼굴과 좀 상반되는 이미지라 쉽게 상상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어요. 도전이었지만 감독님과 장선장의 전사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밑그림을 그렸어요.

특히 감독님께서 ‘우락부락하지 않은 김태리가 선장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시너지가 날 것 같다’고 하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넷플릭스]

10년 가까이 ‘승리호’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창조한 조 감독은 1000여명의 VFX(Visual Effects·시각효과) 전문가와 현실감 넘치는 우주를 구현했다. 2092년 황폐해진 지구와 위성 궤도에 만들어진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 등 우주로 한국인을 쏘아 올린 ‘승리호’의 이야기엔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더욱 새로웠다. 그 덕분일까. ‘승리호’는 지난 2월 5일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와 동시에 최다 스트리밍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모았다.

“저도 SF물은 서양 영화가 익숙해서 ‘우주’ 하면 은색, 차갑고 진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올라요. 근데 ‘승리호’에서는 사람들이 우주복도 아닌 낡은 옷을 입고 지구에서 흔히 보는 음식에 케첩도 뿌려 먹어요. 가족 이야기도 녹아 있고요. 그래서 낯선 SF물 촬영 환경에 더 빨리 적응했던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엔 우주 배경에 발붙이기 힘들었어요. 컴퓨터그래픽 장면이 많아서 감독님이 ‘3시 방향’하면 장애물을 피하는 척 상상해서 연기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근데 선배님들이 ‘우리가 장르에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이야기다’라고 조언해주신 게 도움이 됐어요. 우주라고 해도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과 하등 다를 바가 없거든요. 특히 인간이 환경을 망친다는 전제가 지금과 상당히 닮았어요. ‘인간이 우주로 가면 우주를 망치겠지’ 이런 메시지요. 사실 ‘승리호’가 환경 문제, 계급 사회 등 되게 많은 부분을 터치해요. 그렇게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더 공감하기 쉬웠던 것 같아요.”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는 길지 않지만 알차다. 주연 데뷔작 ‘문영’(2015)을 시작으로 ‘아가씨’(2016), ‘1987’ (2017), ‘리틀 포레스트’ (2018) 등의 연타석 흥행을 이끌었다. 이에 데뷔 후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배우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아무리 운이 절반인 영화계라지만 김태리가 이룬 성과들을 단순히 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아가씨’ 이후엔 부담이 없었어요. 전 제가 못할 걸 알고 있었고 다음 작품도 제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게 당연했어요. 근데 ‘승리호’ 때부터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어요. ‘왜 나를 캐스팅하셨지’ 이러면서 부담을 느꼈는데 그것도 쓸데없는 고민이더라고요.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승리호’로 다시 한번 흥행퀸 면모를 과시한 김태리의 차기작은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다. 고려 말 도사들과 현대 외계인이 벌이는 이야기로 연내 개봉을 준비 중이다. 김태리를 비롯해 류준열, 김우빈 등이 출연해 기대를 모은다.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전체적인 시나리오 안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논리적으로 봐요. 하지만 결국에 어떤 작품을 선택하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에요. ‘아 모르겠어 이거 하고 싶어’ 하면 선택해요. ‘승리호’에 이어서 ‘외계인’도 SF장르인데요,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는 시점에 제가 두 작품에 출연한다는 게 행복해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