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힌 죄' 합헌 나왔지만…'뒤집기' 재시도 이어진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기사입력 2021-03-03 17:28:44
악의적 고소 및 고발 이어질 가능성 커져…합헌 결정 뒤집기 위한 노력 지속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307조 1항’(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을 합헌이라고 결정 내렸으나, 이를 계기로 검찰·경찰의 수사 및 조사 관행에 일부 변화가 따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 “위헌 의견이 절반 4인에 달한 만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따른다.
 
다만 해당 법 폐지를 촉구했던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건 피해자들과 언론계 일각은 당장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맞물린 사안을 다수 지녀왔던 까닭에서다. 당장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재차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국회에 법 개정 등을 촉구하는 등 해당 법 폐지를 위한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기사① : “진실 밝히려다 형사처벌 받을 수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목소리 커져
 
관련기사② : "공익이 목적" 입증 어려운 '진실 밝힌 죄'…"국회가 나서야"
 
“괴롭힘 목적 고소·고발, 이어질 것”
…“실제 처벌 사례는 줄어들 수도”
 
  •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
헌재의 최근 합헌 결정으로 배드파더스 사건 피해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들의 신상을 알렸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재판에 피고로 선 상태다. 지난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 재판에 회부됐고,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헌재 결정을 기다려보자”는 취지로 선고를 연기해 왔다.
 
이런 가운데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배드파더스 피해자들은 지난한 법정공방을 재개해야 할 입장이 되고만 것이다. 이에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는 <주간한국>과의 통화에서 “악의에 따른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본인이 침해받은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사실적시마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끔 한 헌재 결정이 나온 것”이라고 토로했다.
 
구 대표는 “제 경우만 보더라도 양육비를 미지급한 이들로부터 23건의 고소 및 고발을 당했다”면서 “배드파더스 사건에 관한 1심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왔음에도, (가해자측의)고소는 계속 이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의 고소 목적은 피해자들을 괴롭히려는 것인데, 헌재 결정은 이런 상황이 재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은 언론계에서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을 포함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언론단체에서는 일찍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워왔다. 이 법이 존재하는 와중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사실보도와 거짓보도가 전부 법적 처벌 위험에 노출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까닭에서다.
 
김준현 언론개혁시민연대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다 처벌되고 있는 현실인데, 적어도 사실적시에 대해서는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물론 사실적시에 의해 명예훼손이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긴 하나, 이는 여러 민사적 구제방안을 통해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 때문에 법정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부담 자체가 문제 요소로 꼽히는 것이다. 다만 최근 헌재 결정에서 위헌 의견이 9인 중 4인에 달했으므로, 향후에는 이 문제가 소폭 나아질 것이란 전망도 없지는 않다. 비록 소수의견이라고는 하나 절반 가까운 위헌 의견이 나온 만큼 검경이 법 적용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국민의 법 감정이 그렇듯 법조계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수정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가는 추세”라며 “헌재에서도 위헌 의견이 많았던 만큼, 사생활 침해와 그 외 심각한 사안이 아닌 다음에야, 진실을 말한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은 과도하다는 인식이 실제로도 반영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다시 헌법소원, 국회에 법 개정 요구도
이수진 의원실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검토”
 
  • 국회
그렇더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위한 움직임은 이어질 전망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활발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손 변호사는 “헌재 결정을 뒤집기 위한 활동과 입법 운동은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라며 “사생활 침해에 한한 사실적시 명예훼손만 인정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론의 관심을 환기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금 헌재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계류안이 또 있는 상태다. 이는 법무법인 지평 산하의 사단법인 ‘두루’가 제기한 것이다. 이상현 두루 변호사는 “이번 위헌 의견도 사생활 비밀 부분은 유지하자는 뜻이고, 합헌 의견도 공익을 목적으로 한 사실적시의 합리성은 인정한 대목이 있다”며 “여러 사례를 더함으로써 재차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간통죄나 군대 영창제 및 낙태죄도 당초 합헌 결정을 뒤집고 위헌 결정이 나왔다”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역시 같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장만 보더라도 합헌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법원과 검찰 등이 위헌 의견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물론 해당 계류안의 각하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헌재가 한 차례 결정을 내린 데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사건에서 무죄가 다수 나올 경우, 이 법으로 인한 피해자 위험 가능성이 축소된 것으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개의 전례에 비춰봤을 때 헌재는 유사한 사안에 관한 논의를 단기간에 재개하지 않으므로, 계류 기간을 3년 이상 끌 가능성도 있다.
 
입법부가 나서서 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의 배경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최근 헌재 결정과 연관하여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진실한 사실에 대해서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재판관 4인의 소수 의견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며 “이러한 소수의견을 존중하여 국회가 시급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회가 이런 요구를 반영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서울 동작구을)이 관련 법 개정의 방향성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적시의 공익 목적 입증에 관한 사항과 관련 법 폐지 및 처벌수위 완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21대 국회 임기 안에 발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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