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연인 신분이 됐다. 하지만 그 상태가 지속되진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 전 총장이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현상도 그 연장선이다. 그가 총장 시절부터 차기 대선후보로 언급돼 온 만큼 앞으로 ‘윤석열’의 행보에 정치권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은 관심사는 윤 전 총장의 다음 행선지다. 여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채 결별한 셈이다.국민의힘과는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를 진두지휘한 과거의 악연이 발목을 잡고 있다. 묘한 형국이다. 그래서 윤 전 총장 스스로가 구심점에 서서 세력을 형성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제3지대를 만들어 독자적인 세력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윤 전 총장이 정계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전 총장은 당분간 휴식기를 갖고 진로를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대권주자 후보 윤석열
‘변수’에서 ‘상수’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현직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 자체가 아마 윤 총장 스스로 곤혹스럽고 민망할 것 같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 당시 한 말이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사실상의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그는 이날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의표명을 하기 전까지 치밀함과 신속함을 보여줬다. 평소 기피했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불씨를 당긴 뒤 대구 고검·지검을 찾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는 정제된 신조어로 선명성을 높였다. 급기야 하루만에 사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노련한 정치인의 계산된 행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감각을 보였다.
사실 윤 전 총장은 노 전 실장의 발언이 있기 한 달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계 진출 의향을 묻는 질문에 “퇴임 후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던 것이다. 결국 윤 전 총장은 적어도 지난해 말쯤부터는 정치에 나설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총장의 사의를 표명한 지난 4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그분(윤 전 총장)의 정치 야망은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며 “이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피해자 모양새를 극대화한 다음에 나가려고 계산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로써 차기 대선에서 윤 전 총장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원외 당직자는 “윤 전 총장이 4·7보궐선거 국면에서부터 목소리를 낼지, 다음 대선 때에야 존재감을 드러낼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어떻든 현 정부의 핵심 기조이며 첨예한 갈등을 야기한 검찰개혁의 대척점에 서서 정계 진출을 암시했으니, 그를 바라보는 정치인 혹은 중도 및 보수 지지층들이 생겨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방지법’ 비켜가
절묘한 사퇴 타이밍
윤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시점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대부분 “절묘했다”는 의견이다.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안’과 연관 짓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현재 계류 상태인 이 개정안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했다. 이는 ‘검사가 퇴직한 뒤 1년이 지나지 않으면 대선 등 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이 뼈대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내년 3월 9일이다. 결국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일까지 1년 조금 더 남은 날을 퇴임일로 정한 것은 윤석열 방지법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의 본래 임기는 오는 7월까지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낮아진 것 역시 윤 총장의 사퇴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까지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1~2위를 다퉜던 윤 전 총장은 올해 들어서 지지율 추락을 거듭해 왔다. 지난 1~3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전국 18세 이상 1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윤 전 총장은 한 자릿수 지지율인 9%에 그쳤다. 이런 현실에서 만약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입법을 못 막고 임기를 마쳐봐야 불명예의 멍에만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율 반전을 위한 극적 계기를 찾기가 더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보궐 선거 이후 행보에 귀추
정계 진출 연착륙 시도할 듯
국회.
윤 전 총장이 사실상 정계 진출을 시사하면서 사퇴하자 정치권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에 휩싸였다.
남은 관심사는 ‘정치인 윤석열’의 다음 행선지다. 더불어민주당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국민의힘과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직·간접적 기여를 한 전력이 있다. 거대 양당과는 손잡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의 배경이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은 진보와 보수 등 이념적 색채가 뚜렷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당장 4·7 재보궐 선거에 직접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섣부른 정치권 진입이나 선거판에 나서는 행위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는 공직자 출신의 정치인이 일찍 한계를 보였던 전례도 감안할 것이다.
물론 윤 전 총장을 향한 야권의 동행 요구는 계속 빗발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재보궐 선거 막판에 윤 전 총장의 깜짝 지원 유세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은 유혹을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보선 이후 윤 전 총장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연착륙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강연 등을 통한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정치 활동에 대해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계획을 당장 갖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에게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윤 전 총장 본인은 정작 스스로 정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전했다. 이어 “진보, 보수를 떠나 신념이 잘 맞고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 경청하는 자리는 있을 듯하다”면서 “우선은 적당한 휴식과 함께 숙고하는 시간을 갖지 않겠나”라고 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