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는 다 이렇게 하니까요.” 자가격리를 마치고 SSG 랜더스에 합류한 추신수가 팀에 합류하자마자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등번호 17번을 양도받은 것이다. 원래 투수 이태양이 이 번호를 사용했지만 추신수 입단 소식이 전해지자 이태양은 큰마음 먹고 17번을 양도하기로 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줄곧 번호 17번을 달아왔었기에 애착이 강했다.

SSG랜더스 이태양(왼쪽)과 추신수. 연합뉴스

추신수는 이태양이 등번호를 양보하기로 하자 2000만원 상당의 초고가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로저드뷔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감사를 표했다.

국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시계를 추신수는 미국에서부터 가지고 들어왔고 선물을 받은 이태양은 너무 고가의 시계라 집에서만 차고 다닌다고 한다.

이태양에게 시계를 선물하며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다 이렇게 한다”며 한국에 없던 메이저리그의 훈훈한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말 메이저리그에서는 등번호를 양도받을 때 어떻게 사례를 할까.

리키 헨더슨의 24번 집착

리키 헨더슨. 연합뉴스

야구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1번타자’로 남아 있는 리키 헨더슨.

1979년 20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03년 44세까지 25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통산 출루율이 4할1리였다.

무려 통산 출루율이 4할이 넘는데 여기에 1406개의 도루를 했다. 한 시즌 162경기로 환산할 경우 평균 74도루를 기록했다. 100도루 이상 시즌도 무려 3번이나 있다. 2019시즌 최다 도루는 46개였고 2018시즌은 45도루였다.

1406도루는 역대 2위인 루 브록의 936개에 비해 무려 468개나 많다. 모든 통산 기록 중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기록이 바로 도루다.

“그와 근접한 2등감 1번타자를 본 적도 없다”고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1번타자’ 헨더슨은 그만큼 등번호 24번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1989년 뉴욕 양키스에서는 24번을 달던 선수에게 골프클럽 풀세트와 최고급 정장 한 벌을 해주고 24번을 양도받았다.

199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는 직접 현금 2만5000달러를 주고 24번을 동료에게 구매했다고 한다.

지금 돈으로 쳐도 약 3000만원인데 거의 30년 전이니 얼마나 큰 금액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알아서 양보하니 베이브 루스 사인볼이

통산 188승을 거두고 은퇴한 우완 투수 존 래키는 2014시즌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된다.

메이저리그 15년 커리어 중 2010년을 제외하곤 줄곧 등번호 41번만 단 래키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새 팀으로 갔으니 ‘41번’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세인트루이스에는 팀 핵심 불펜투수였던 팻 네식이 41번을 달고 있었다.

네식은 래키가 트레이드되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선배’에 대한 예우로 래키가 등번호를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41번을 내놓고 시즌 중에 37번으로 바꾼다.

키는 알아서 양보한 네식에 감사 표시로 선물을 생각하다가 마침 그가 야구 기념품 수집을 하는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래키는 수천달러의 가치가 있는 베이브 루스 사인볼을 구해 네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네식은 뜻밖의 선물에 감동해 자신의 SNS에 “등번호를 바꿔준 것에 대해 래키가 나에게 놀라운 선물을 줬다”고 말해 훈훈함을 남겼다.

매덕스에 등번호 넘기겠다고 했다 안 준 페니

매덕스.연합뉴스

명예의 전당에 97.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헌액된 그렉 매덕스. 매덕스 하면 정교한 컨트롤뿐만 아니라 등번호 31번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매덕스는 데뷔 후 21년간 오직 31번만 달고 뛰었을 정도다.

그런 매덕스는 2006년 마흔의 나이에 LA다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처음으로 등번호 36번을 달게 된다. 이미 명예의 전당행이 확정적이었던 매덕스가 등번호 31번을 달지 못한 것은 바로 당시 팀내 2선발이자 통산 121승을 거둔 ‘괜찮은 투수’였던 브래드 페니의 존재 때문이었다.

페니는 매덕스의 트레이드 소식을 듣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왔다”고 말해 등번호를 양보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등번호를 바꾸기 싫었는지 “등번호를 바꾸지 않는 것이 꼭 매덕스에 대한 존경의 부족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난 그가 동료가 돼 기쁘다”면서도 등번호를 양보하지는 않았다. 결국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21년 경력만에 처음으로 다른 등번호를 달고 뛰게 된다. 은퇴할 때까지 2시즌 가량은 다른 등번호를 달고 뛰었지만 그럼에도 매덕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시카고 컵스에서 등번호 31번을 영구결번 하는 영광을 누려 말년의 등번호 변경이 큰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