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덫’에 걸린 여권, 선거 앞두고 뒤집기 발언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기사입력 2021-04-02 09:24:39
與 연이은 부동산 실책 사과는 ‘악어의 눈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모양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촉발한 공직자 부동산 투기 논란이 오는 보궐선거는 물론 국정운영에도 차질을 빚자, 그동안 고수했던 원칙까지 포기하는 듯한 다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곁에 둬 온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단칼에’ 경질했고, 더불어민주당은 4년 만에 처음으로 부동산 실책을 들어 참회의 고개를 숙였다.
 
정부·여당은 심지어 그간의 원칙마저 내던질 조짐이다. 투기 억제 차원에서 계속 고삐를 조여 왔던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또 검찰개혁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히는 ‘구속 만능주의 타파’는 부동산 투기 문제 앞에서 무력화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차원에서 전원 구속 수사를 요구했고, 검찰은 부동산 투기사범 ‘구속수사 방침’으로 ‘호응’했다. 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정부·여당이 ‘부동산의 덫’에 걸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부동산 대책 효과 없으면 책임져야…”
 
  • 이낙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부동산 정책 실책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들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중 대국민 사과했다.(사진=연합뉴스)
 
현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당시에도 부동산 문제는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그 해 9월 열린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못 보면 책임을 질 것인지’를 묻는 야당측 질의에 “응분의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도 답한 바 있다.
 
이 총리는 그로부터 약 2년여 뒤 집권여당의 수장이 됐다. 그리고 최근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본인을 포함한 정부와 여당 전체라고 털어놓았다.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은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며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기고백의 배경은 단연 코앞에 다가온 보궐선거 때문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여권을 향한 ‘정권 심판론’으로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까지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대부분 야당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바깥에서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또 그 원인은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부동산 정책의 실책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지난달 31일 리얼미터가 YTN·TBS 의뢰로 같은 달 29~30일 서울시민 1039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차기 서울시장의 중점현안을 부동산 시장 안정(37.9%)으로 꼽은 시민이 가장 많았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62.1%로 나타나 28.2%에 그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섰다. (오차범위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상황이 계속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민주당은 ‘필사적 읍소전략’을 취하고 있다. 앞서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꼽히는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잡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25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래 집권여당 지도부의 첫 사과 입장이었다. 앞서 박용진 의원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민주당을 비육지탄(?肉之嘆) 상황으로 비유하면서 자기반성을 했다. 허송세월로 넓적다리가 비대해져 말을 타지 못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를 꺼내 든 것이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민주당이 국민들 바람과 달리 기득화된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선거용 뒷북?…원칙마저 무너진 우왕좌왕 조치
 
  • 청와대
 
현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문 대통령과 계속 호흡해 온 김 전 실장의 경질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김 전 실장은 새 임대차법(전·월세 인상률 상한선 5%로 제한) 시행 직전 본인이 소유한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은 사실이 지난달 28일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그를 경질했다. 청와대가 부동산 관련 문제를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 한 단면이다.
 
야권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관한 여권의 다급함을 꼬집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 전 실장 경질 직후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선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경질했을까 싶다”면서 “선거용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야당의 비판이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그간 원칙으로 내세워왔던 부동산 정책을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언급들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뼈대는 세금과 대출규제 ‘강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세금과 대출규제의 ‘완화’에 되레 힘을 싣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를 거치지도 않고 ‘조건부 대출규제 완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홍 의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 무주택자, 생애최초주택구입자 등 서민 실수요자에 한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추가 허용 혜택을 상향하도록 할 것”이라며 “소득기준과 대상, 주택 기준 등에 관한 것은 아직 협의할 사안으로,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면서 범위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박영선 후보가 공약한 사항들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공시지가 인상률을 10% 이하로 낮추고, 공공 개발지에서도 민간 재개발·재건축을 일부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후보의 공약은 ‘2·4 주택공급대책’의 방향성하고도 배치되는 정책이다.
 
당장 정부는 부동산 투기 근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 수사관을 투입해 부동산 투기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는 목표다. 아울러 재산등록제도의 범위를 모든 공직자로 확대, 9급 공무원이라도 최초 임명 이후부터 각자 재산의 변동사항과 형성 과정을 상시 점검받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정부·여당이 이처럼 입장과 태도를 급선회한 효과는 불투명하다. 원칙을 깨고 급조한 정책이 실효성을 갖출 수 있겠냐는 의심에서다.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재산공개는 이미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9급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모든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처사라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교사들까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재산신고를 해야 한다는 반발도 드세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최근 “부동산 투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감시해야 할 정부가 그 실패의 책임을 전체 교원·공무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교원·공무원 단체와 함께 강력하게 반대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전체 교원과 공무원을 잠재적 투기자로 전제하는 재산등록은 지나친 행정규제”라며 “보여주기식 방안보다는 차명 투기 적발 등 실효성 있는 투기 근절방안을 마련하고, 재산등록은 관련 업무 공직자 등 타당한 기준과 범위를 세워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구속만능주의’를 타개하기 위한 명분으로 검찰개혁이 등장했지만 결국 정부는 부동산 투기사범의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 모든 과정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급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원칙도 없고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수사권을 박탈했던 검찰을 뒤늦게 부동산 투기 수사에 대거 투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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