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란 무엇인가” 혼란에 빠진 기업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기사입력 2021-04-09 10:25:53
ESG 평가기관마다 천차만별…기준 마련해 일관성 제고해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은 외면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사내에 ESG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고충을 토로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ESG가 대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는 각 기업의 ESG를 평가하는 기관이 여럿인 데다, 그 결과 또한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 때문이다. 국내와 해외 기관의 잣대가 다르고, 어떨 때는 국내 기관들끼리도 다른 평가 결과를 내놓는 탓에 기업들 사이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는 말마저 나온다. 한국형 ESG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해외에서 낙제점 받은 한전, 국내서는 ‘A’
 
  • (표=전경련)
지난 5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눈에 띄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준비실태 및 인식조사' 결과다. 여기서 ESG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관심도는 ‘높다’는 응답이 66.3%(매우 높다 36.6%, 다소 높다 29.7%)로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작 ESG 관련 경영전략 수립은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다. ESG의 개념과 평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이유에서다. ESG 관련 경영전략 수립에 있어 애로요인을 묻는 질문에 29.7%가 'ESG의 모호한 범위와 개념'을 꼽았다. 이어 자사 사업과 낮은 연관성(19.8%), 기관마다 상이한 ESG 평가방식(17.8%), 추가비용 초래(17.8%) 등이 꼽혔다.
 
결국 10명 중 7명의 최고 경영자들은 ESG경영에 큰 관심을 보이지만, 전체의 절반 가까이는 ESG의 모호한 개념 및 상이한 평가방식으로 난감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외의 ESG평가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각 기업에 대한 ESG를 평가하는 곳은 해외 기관만 약 600곳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과 서스틴베스트, 대신경제연구소 등 최소 3곳이 있다. 이들 기관은 통일된 가이드라인 없이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ESG 평가를 하고 있다. 기업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연히 특정 기업에 대한 ESG 평가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국내 대표 공기업 중 한 곳인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세계 최대 ESG 평가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로부터 사실상 낙제점인 통합 ‘C-’ 등급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기관인 KCGS에서는 통합 ‘A등급’을 받아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국내 기관들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올 때도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경우는 작년에 서스틴베스트로부터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KCGS에서는 ‘B등급’을 받아 대조를 이뤘다.
 
문제는 이처럼 판이한 결과의 원인을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은 물론 평가 주체인 기관들마저 서로의 심사기준을 꼼꼼히 비교하지 않는 이상 결과적 차이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ESG 평가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ESG 의미 퇴색할 수도
일관된 평가 기준 마련해야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현상은 자칫 ESG경영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SG에 따른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각 기업들이 자신들에 유리한 평가 결과를 내세우면 정보가 미흡한 투자자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관투자자보다 개인투자자에 더 큰 손실을 안길 수 있다.
 
금융위원회도 이런 점을 현행 ESG평가제도의 한계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는 지난 2월 ‘ESG 국제동향 및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행 ESG 평가 제도는 다양한 내재적 한계를 내포한다”며 “일관성 없고 광범위한 평가범주가 애로점”이라고 명시했다.
 
금융위는 또 “MSCI 등 대표적 ESG 평가 기관들의 지표가 상이하다”면서 “기업의 ESG점수와 재무적 성과, 신용평가등급 등의 사이에서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 ESG 분류와 평가체계 및 통계인프라 관련, 문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국제적 정합성 제고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례로 전기차 선두기업인 테슬라는 최근까지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스톡익스체인지(FTSE)로부터 ESG 최하위 등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많다는 근거에서다. 그러나 MSCI는 완성차의 친환경성에 주목하며 테슬라에 최상위 ESG 점수를 부여했다. ESG 평가의 통일성 마련이 시급한 과제임을 테슬라 사례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ESG평가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른다. ESG가 무엇인지에 관한 원칙이 없다면 기업들은 관련 채권발행 등 투자를 유치할 때 불확실성에 빠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근우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다양한 국내외 ESG 평가 기준이 존재해 기업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며 “현재 ESG를 잘 수행하는 국내 기업들은 여러 해외 기준을 활용하면서도 공정거래, 동반성장과 같이 국내에 특화된 이슈도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실제 상황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ESG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다만 ESG는 세계적 흐름인 만큼, 한국형 지표를 만들더라도 글로벌 기관들 사이에서 흔히 범용되는 지표들을 다수 포섭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형 지표만 따라도 글로벌 무대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 재계에서는 기업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만큼 평가 기준을 정부 주도로 설계해선 안 된다는 요구도 나온다. 송재현 전경련 ESG팀 팀장은 “기업의 ESG 전략은 각 회사가 저마다의 상황을 반영해서 수립하는 것”이라며 “ESG평가 기준을 국가나 정부가 세우면 기업 입장에선 규제로 느낄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서라도 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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